경제
탄소중립쇼하러 해외 나갈땐가 [핫이슈]
입력 2021-10-27 09:12  | 수정 2021-10-27 11:22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탄소중립은 우리가 꼭 가야할 길"이라고 강조해왔다. 100% 동의한다. 어느누구도 탄소중립 당위성과 필요성을 시비삼거나 토를 달수는 없다. 전지구적인 기후재앙을 막으려면 온난화 주범인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데 우리만 예외일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강력한 탄소중립 의지에 발맞춰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는 전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더 공격적인 탄소중립안을 확정했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고, 2050년엔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0)로 만든다는게 골자다.
2050년이야 30년뒤 일이니 그렇다치더라도 앞으로 8년내 달성하겠다는 40% 감축목표를 현실로 만들려면 2030년까지 연평균 4.17%씩 탄소배출량을 줄여나가야 한다. 일본(3.56%), 미국·영국(2.81%), EU(1.98%)와 비교하면 버거운 수치다.
사실 불과 두달전까지만해도 목표치는 40%가 아니라 35%였다. 이것도 지난 2017년에 정한 감축목표(26.3%)를 확 높인것이어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거셌었다. 그런데 지난달 대통령이 "(탄소중립에)최대한 의욕 보여달라"고 한마디하자 갑작스레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바로 목표치를 40%로 올려버리는 가속페달을 밟아버린 것이다.

다음달 1~2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대통령이 아마 세계를 놀래켜주고 싶었던것 같다. 어차피 8년뒤 일이니 되든 안되든 '우리는 이만큼이나 확 줄인다'는 식으로 대외에 과시하려면 35%보다는 40%라는 수치가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더 빨리 더 많이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을 갖췄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이같은 목표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몽상에 가깝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상식이 있는 과학자 열이면 열 모두 탄중위 탄소중립안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잘라말한다. 방법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서다.
원천적으로 이정권의 탈원전 오기가 최대 걸림돌이다. 탈원전 정책을 거스를 수 없는 탄중위가 무탄소 에너지원인 원전을 배척한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확 높여 탄소배출을 줄이겠다지만 희망사항일뿐이다.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는게 글로벌 컨센서스다. 전세계 모든 나라중 원전을 뺀 탄소중립 로드맵을 들이미는건 우리밖에 없다.
유럽 10개국 경제·에너지 장관들은 "기후변화와 싸우는데 최상의 무기는 원전"이라고 했다. 문대통령처럼 강력한 탈원전론자였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비중 확대로 돌아섰다. 영국은 북해의 거친 바람을 활용한 풍력 신재생에너지 여건이 탁월하지만 원전 투자확대를 발표했다. 일본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후쿠시마 사태후 가동중지 상태에 있는 30기의 원전 재가동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빨리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했고, 특히 유럽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했다. 신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 달성에 문제가 없고 전력부족 걱정도 없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전 없이는 안된다는 걸 알기때문에 원전비중 확대에 나선것이다.
그런데 신재생에너지 기반도 취약하고, 햇빛과 바람과 같은 기본적인 자연조건도 열악한 우리가 무슨 배짱으로 신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건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70%로 확 올리기위해 전국토를 중국산 태양광 패널로 덮고 남산타워만한 풍력터빈을 산정상과 해안 곳곳에 꽂아넣어야 속이 시원하겠나. 설사 이렇게한다해도 해가 비치고 바람이 불때만 발전이 가능한 간헐성때문에 탄소중립은 물론 전력부족도 해결할수 없다는게 상식이다.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저장하는 전력저장장치(ESS)구축비용만 최대 1248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국가부채가 내년에 사상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선다고 난리인데, 건국이후 70년이상 쌓은 부채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하는 셈이다.
또 이정도 크기의 ESS를 구축하려면 여의도의 76배에 달하는 땅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현실성이 없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의 탈원전 행동대장 노릇을 했던 한수원 사장까지 지난주 국정감사장에서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만시지탄이지만 말은 맞는 말이다.
원전없는 탄소중립안은 탄소중립을 안하겠다는 로드맵이나 마찬가지다. 탄소중립안이 탄소 감축이 목적이 아니라 탈원전 대못을 박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내외 모든 전문가들이 원전없는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통령도 이를 모를리 없다. 그런데도 지난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에도 동참, 2018년 대비 기존 26.3%에서 40%로 상향하기로 했다"며 자랑하듯 말했다.
과학자들의 경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국내외에서 엉터리라는 조롱을 받고 있는 탄소중립안을 누가 뭐라해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선언이다.
대통령은 다음달초 글래스고우에서 목표만 거창하고 실현가능성은 제로인 탄소중립안을 국제사회에 공표하는 탄소중립쇼를 밀어붙일 것이다. 국제사회에 8년내에 탄소배출량을40% 줄이겠다고 약속을 하는것이나 매한가지다.
국가위신을 세우려면 임기 6개월 남은 정권이 던져 놓은 폭탄을 미래정권이 수습해야 한다.
"원전 없이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호언장담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도 가능하다고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며 국민을 기망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사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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