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안전자산" vs "신분상승"…비수도권 거주자 서울 주택 매수 열풍
입력 2021-09-14 09:14  | 수정 2021-09-21 10:05
주택 종류 가리지 않고 매수…"지방 웬만한 부자는 서울 주택 있다"
밀려난 서울 시민, 경기도 주택으로 눈 돌려…매수 비중 17%

지방 거주자들의 서울 주택 매수 열풍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물론 단독 주택, 빌라 등을 가리지 않고 사들입니다. 지방 투자자들의 서울 주택 선호는 안전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높게 보기 때문으로 예상됩니다.

지방 투자자들이 서울 주택을 쓸어가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정작 서울 시민들은 경기도 등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올해 외지인 서울 주택 매수 비중 역대 최고…특히 강남구 선호

14일 한국부동산원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서울에서 거래된 주택 13만 1,996가구 가운데 외지인은 25.3%인 3만 3,460가구를 사들였습니다.


서울에서 거래된 주택의 외지인 매수 비중은 지난 2017년 19.7%에서 2018년 20.3%로 20%를 돌파했습니다. 2019년에는 21.7%, 작년에는 23.2%로 꾸준히 상승 추세를 그리다 올해에는 25%를 넘어섰습니다.

올해 거래된 서울 주택 가운데 아파트는 6만 7,550가구였습니다. 외지인은 이 가운데 20.2%(1만 3,675가구)를 매수해 전체 평균을 밑돌았습니다. 이는 지방투자자들이 아파트뿐만 아니라 단독주택·빌라 등을 가리지 않고 사들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방 부자들의 강남 주택 선호는 여전합니다. 강남 3구 가운데 특히 강남구 주택을 집중 매수했습니다. 강남구에서 올해 거래된 주택 1만 762가구 가운데 외지인 매수 비중은 27.2%에 달했습니다. 이는 지난 2018년 24.5%, 2019년 21.6%, 작년 23.6%보다 훨씬 높습니다. 서초구와 송파구 거래 주택 가운데 외지인 매수 비중은 각각 22.5%, 19.6%였습니다.

올해 들어 계속되는 극심한 거래 절벽 속에서도 지방 거주자들은 치솟은 집값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찰을 쏟아붓습니다.

지방투자자의 서울 주택 매수 열풍이 거센 가운데 정작 서울 거주자들은 경기도 주택 매수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거래된 경기도 주택 29만 234가구 가운데 서울 거주자는 17.3%인 5만 385가구를 사들였습니다. 서울 시민의 올해 경기도 주택 매수 비중은 2018년 15.1%, 2019년 14.5%, 작년 15.6%보다 높습니다.

서울을 제외한 외지인의 올해 경기도 주택 매수 비중이 9.7%임을 고려하면 서울 거주자의 경기도 주택 매입은 두드러집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서울 거주자의 경기도 주택 매입은 비자발적인 경우가 많아 보인다"면서 "서울 집값이 너무 많이 오르자 도저히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게 된 저소득층이나 무주택자, 청년층이 차선책으로 경기도에서 주택을 장만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방 1등급 대신 서울 2·3등급 부동산…안전성 vs 수도권 로망

월간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서울 주택의 평균 매매가격은 8억 6,800만 원,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 7,700만 원입니다.

세금도 많이 내야하고, 대출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외지인은 현금 동원력이 있는 부자가 아니라면 서울에서 집을 사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지방 거주자들의 서울 주택 매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이유는 '일단 투자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굳센 믿음 때문입니다. 유동성이 큰 자산 인플레이션 시대에 코인이나 지방 부동산보다는 서울 부동산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깁니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요즘 지방의 웬만한 부자라면 서울에 집 한 채씩은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지방 부동산은 갖고 있어 봐야 미래 자산가치 유지를 자신할 수 없지만, 서울 주택은 안전자산이라는 학습효과가 크게 작용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몇 년 동안 지방 주요 도시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서울 주택이 오히려 싸 보이는 착시현상이 나타났다"면서 "과거엔 지방 부자들이 서울 반포나 압구정동 같은 강남 핵심 지역 랜드마크 아파트를 많이 샀는데, 요즘은 서울 전역의 중저가 주택까지 가리지 않고 사들이는 특징이 있다"고 했습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플라이트 투 퀄리티(Flight to Quality)'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습니다.

'플라이트 투 퀄리티'를 시장에서는 주로 '안전자산 선호'로 이해하지만 서 교수는 의미를 확장해 '프리미엄 품질로의 비행'이라는 원래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요즘 젊은 층이 명품을 추구하듯 돈을 가진 지방 거주자들이 서울 주택에 열광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안전자산에 대한 욕구도 포함됩니다.

서 교수는 "지금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K자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면서 "과거엔 지방 대도시 부자들이 그 지역 1등급 부동산에 투자했지만 이젠 서울의 2등급·3등급 부동산을 사고 있다"면서 "지방 부유층의 수도권 부동산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외지인들의 서울 주택 매수 열풍은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데 따른 투기 수요라고 봐야 한다"면서도 "서울 주택 소유를 신분 상승으로 착각하는 심리적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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