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엄마가 장관이었으면 달랐을 것"…열사병 순직 병사 모친의 편지
입력 2021-07-25 17:21  | 수정 2021-10-23 18:05
"백신 접종 일주일 만에 작전 투입"
"사인은 열사병 아닌 무관심…이런 일 없어야"

강원도 고성의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수색 작전 임무를 수행하다 열사병으로 갑자기 쓰러져 순직한 병사의 어머니가 "엄마가 장관이었거나 아빠가 국회의원이나 별을 단 장성이었다고 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라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어제(24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는 열사병으로 숨진 육군 22사단 소속 의무병 심준용 상병 어머니의 편지가 공개됐습니다.

심 상병의 어머니는 "제 아들은 6월 24일 코로나19 1차 접종을 하고 6월 30일 GP로 올라갔다.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7월 1일 오전 8시, 일반 의무병임에도 수색대원들과 함께 작전에 투입됐다고 하더라"라고 운을 뗐습니다.

어머니는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모를 쓰고 등에는 군장을 앞에는 아이스패드가 든 박스를 메고 경사가 34~42도인 가파른 산길을, 혼자 걷기도 힘든 수풀이 우거진 길을 내려갔단다"라며 "방탄조끼에 방탄모에 앞뒤로 둘러싸인 군장과 박스에 몸 어디로도 열이 발산되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여갔을 거다. 웬만하면 힘들다는 얘기도 안 하는 아이인데 힘들다는 말을 세 번이나 했고, 귀대과정 오르막에선 이상증세도 보였다고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잠시 후 아들이 12시 30분쯤 쓰러졌다. 작전 지역이 너무 험해 헬기 이송이 불가능해 결국 같이 작전 중이던 대원들이 아이를 업고 물을 뿌리며 2시 55분 GP까지 간신히 도착했다. 이후 강릉 국군병원을 거쳐 강릉 아산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 15분이나 됐다"며 "병원에 도착한 아들 체온은 40도가 넘었다. 뇌는 주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있었고, 혈압은 70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병원에서 병명은 열사병이 맞다고 하더라"라고 전했습니다.


어머니는 "백신 맞은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아이를, GP도착하고 24시간도 안 된 아이를, 훈련소에서 행군해 본 것이 다였을 아이를 최소한의 훈련도 없이, 헬기로 구조도 안 되는 지형으로 작전에 투입했다. 왜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나"라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서 "제 아이의 사인은 열사병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제 아이의 엄마가 장관이었거나 제 아이의 아빠가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이나 별을 단 장성이었다고 해도 같은 결과였을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아울러 "자신의 청춘을 국가에 헌납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하는 이 땅의 모든 아들들, 이 아이들이 또 무관심 속에 쓰러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이런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22사단 의무병이었던 심 상병은 지난 1일 DMZ 작전 중 쓰러져 8일 오후 숨졌습니다.

군 당국은 병원에서 심 상병의 사망 원인을 열사병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상청 관측자료에 따르면 지난 1일 고성 지역의 낮 최고 기온은 27도로, 장병들의 복장 등을 감안하면 체감 온도는 기록된 기온 이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군 당국은 "고인의 명예로운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최고의 예를 갖추어 필요한 후속 조치를 하는 가운데 정확한 사고 경위와 원인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사고 경위 등에 대해서는 현장 검증한 내용을 토대로 군단 군사경찰에서 고인의 부모께 당시 현장 상황 등을 설명해 드렸다"며 "유가족께서 질의하시고 수사한 사항들을 종합해 다음 주 중에 중간 수사 결과를 설명해 드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심 상병은 순직 후 일병에서 상병으로 추서됐으며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육군은 사이버 추모관 홈페이지에 심 상병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차유채 디지털뉴스 기자 jejuflower@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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