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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시멘트 없나요…대구 건설현장 150곳이 멈췄다
입력 2021-06-21 17:52  | 수정 2021-06-21 22:52
◆ 건설업계 아우성 ◆
21일 대구광역시 중구의 A아파트 건설현장. 평소 같으면 하루 수십 대의 레미콘 차량이 드나들었겠지만 이날은 차량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공사현장 인부 100여 명도 일감이 없어 쉬고 있었다.
지난 10일부터 대구지역 레미콘운송노조가 운송 거부에 돌입하면서 11일째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중단된 탓이다. A아파트 시공사 관계자는 "아파트를 층별로 올리기 위해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려고 다 준비해 놨는데 레미콘이 없으니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구 중구 인근의 다른 아파트 공사현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곳 역시 레미콘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서 하루 임차료가 수백만 원인 대형 크레인도 10여 일째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B아파트 시공사 관계자는 "100t짜리 크레인 하루 임차료가 250만원인데 공사가 중단되면서 그대로 세워두고 임차료만 내고 있다"며 "장마철까지 다가오는데 파업까지 계속되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구지역 건설현장이 레미콘운송노조의 운송 거부 사태로 셧다운 위기에 처했다. 한국노총 전국레미콘운송노동조합 대구지부(레미콘운송노조 대구지부)가 10일부터 750여 대의 레미콘 운송을 전면 중단한 탓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레미콘 운송 전면 중단으로 공사 지연이나 중단 등의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아파트와 오피스텔 건설현장 등 150곳에 달한다. 철근 대란에 이어 레미콘 파업까지 겹치며 전국 어느 지역보다 자재대란의 여파를 혹독하게 겪고 있는 것이다.

레미콘노조 대구지부가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은 현재 1㎡당 3만3000원인 대구지역 회당 운송단가를 전국 평균(4만8000원)으로 인상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대구지역 회당 운송단가는 전국 최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 울산의 경우 레미콘 회당 운송단가는 평균 5만원이다. 청주와 세종 등은 하반기부터 1㎡당 5만원 중반 수준이던 레미콘 회당 운송단가를 6만5600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권용현 레미콘운송노조 대구지부장은 "운송료가 현실화할 때까지 대구지부 노조원 750여 명은 무기한 파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철근 대란도 이어지고 있다. 잠시 안정을 되찾는 듯했던 철근 가격은 최근 국내 철스크랩 유통물량이 급감하면서 다시 들썩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18일 경고파업을 한 화물연대가 본격적으로 파업에 돌입할 경우 전국 시멘트 유통이 멈출 수 있다. 타워크레인노조 역시 소형 타워크레인의 안전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언제든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김동은 기자 / 대구 = 우성덕 기자]
"철근·시멘트값 올라 작업할수록 손해"…전국서 공사중단 속출

자재부족에 노조파업까지…멈춰버린 건설현장

철스크랩 절반이상 폐철근인데
붕괴참사로 전국 철거작업 중단

톤당 65만원 하던것이 155만원
5월 반짝 안정세 또다시 흔들려

레미콘 운임단가 협상 결렬땐
시멘트 등 건설자재 물류대란
회복조짐 지역건설 경기에 찬물
"t당 65만원에 납품받던 철근값이 t당 155만원으로 폭등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중소 건설업체들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2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신축 공사장. 철근을 가득 실은 트럭이 현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현장 관리 직원 A씨는 "어렵게 철근을 구해 공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는 웃돈을 주고도 철근을 구할 수 없어 20여 일간 공사가 중단됐다"며 "공사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급등한 철근 가격은 부담스럽다. A씨는 "철근값이 예전의 2.5배 정도 올랐다"며 "발주 업체가 공사비를 올려줄 것 같지도 않고 결국 시공업체가 손실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푸념했다.
전국 곳곳의 건설 현장이 멈춰 서거나 막대한 비용 부담에 고통받고 있다. 건설 자재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다 건설 관련 노조 파업까지 잇따르면서다. 특히 자금력이 약한 중소 건설업체들의 피해가 커질 전망이다. 21일 대구광역시에 따르면 현재 철근 부족으로 인해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는 대구시내 공공발주 공사 현장은 7곳에 이른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죽전역 서편 출입구 공사는 올 1월부터 3개월간 철근 공급이 중단돼 준공 예정일이 당초 5월에서 9월로 4개월이나 미뤄졌고 신천생태하천 복원 공사도 지난 4월 말부터 최근까지 철근 공급이 중단돼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민간 대형 건설업체들은 연간 계약 등으로 철근을 수급받고 있지만 공공발주 공사는 납품 단가가 낮다 보니 철근 공급업체로부터 철근을 구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금처럼 멈춰서는 공사 현장이 늘어나면 결국 지역경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런 문제는 대구뿐만이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6월 초 기준 철근 납품 지연으로 공공발주 공사가 지연된 사례는 전라남도 72곳, 경상남도 50곳, 전라북도 47곳, 강원도 46곳 등 전국적으로 338곳에 이른다. 공사 기간이 연장된다는 것은 결국 중소 하도급업체들이 이자비용과 임대료 등을 모두 떠안게 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전북 지역의 한 중소 건설사 대표B씨는 "공사 중단 현황을 밝히지 않은 소규모 건설 현장들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현장이 철근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철근값 급등으로 처음 계약한 공사비대로 공사를 할 경우 수지 타산을 맞출 수가 없다"며 "공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여서 중도에 포기하는 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상승세를 멈췄던 철근값이 다시 들썩일 조짐을 보이는 점도 문제다. 지난주부터 철근 제조에 사용되는 '철스크랩', 즉 고철의 국내 유통 물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난주 발생한 광주 철거 현장 붕괴 참사로 전국 철거 현장들이 관리감독 강화 전까지 모든 철거 작업을 일시 중단하면서 국내에 유통되는 철스크랩 물량이 뚝 끊겼다"며 "실제로 철근을 구하지 못하거나 높은 철근값을 감당하지 못해 작업을 멈춘 건설 현장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기준 국내에 공급된 철스크랩 물량은 약 3000만t 규모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건물 철거 현장과 폐차장에서 나온다. 따라서 광주 사고 이후 정부가 대규모 철거 현장의 작업을 일시 중지시키자 철스크랩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한건설협회는 내부 보고서를 통해 "당분간 신규 철거 대상 지역의 작업 승인이 지연될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중국의 철스크랩 수입 확대로 국제적인 철스크랩 부족 현상도 이어질 것"이라며 "사재기 단속 등 정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철근·형강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설 관련 노조들의 파업 예고도 건설업체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앞서 레미콘 노조는 정부가 레미콘 믹서 차량의 신규 시장 진입을 허용할 경우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와 동시에 레미콘 노조는 지역별로 해당 지역 레미콘 회사들과 운임단가 조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운임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언제든 파업이 가능한 상황이다. 화물연대 역시 노조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에 나설 예정인데 이 경우 시멘트 등 건설 자재 유통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자금 여력이 풍부한 대형 건설사들은 큰 문제가 없지만 중소 건설사들은 자재값 급등에 파업으로 인한 공기 지연 문제까지 겹치면 버텨낼 방법이 없다"며 "자재값 안정과 건설 관련 노조의 파업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철강 업체의 철근 생산을 최대한 늘리고 공공 공사가 철근 수급 문제로 지연될 경우 지체보상금을 면제하는 등의 조치를 내놨다. 하지만 노조 파업 등의 문제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레미콘 노조 파업 등은 노조와 회사의 협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진행 상황을 주시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 이축복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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