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달 美증시 풍향타? 바로 고용시장의 '슬랙(Slack)’
입력 2021-06-02 13:48  | 수정 2021-06-02 14:02
미국 공식 실업률(U3)과 광의 실업률(U6) 간 격차(주황색 표시)가 2008~2009년 금융위기 때 최대치를 기록한 뒤 지난 10년 간 서서히 격차를 줄여오고 있다. 그런데 2020년 발발한 팬데믹으로 인해 최근 다시 괴리도가 커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고용시장에서 왜곡된 수급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들을...

미국 언론에서는 연일 팬데믹을 극복한 미국 사회상이 보도된다.
지난 메모리얼데이 연휴 동안 북새통을 이룬 공항과 차량 여행, 막대한 연료 소비 등이 대표적이다.
재택근무를 벗어나 회사로 출근하고, 타 지역으로 비즈니스 출장을 가는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원자재값 폭등으로 불거진 인플레이션 상승 압박을 최근 바이든 행정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인사들이 인식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논의도 가열차다. 일러야 내년에나 검토될 것 같았던 테이퍼링 논의가 올 하반기에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그런데 인플레이션 이슈를 걷어내고 보면 바이든 행정부와 연준, 미국 재계가 걱정하는 공통의 화두는 하나로 모아진다.
바로 슬랙(Slack), 즉 고용시장의 '유휴인력' 문제다. 일할 능력은 있는데 일자리를 찾지 않는 이들이다.
5월 초 발표된 미국 4월 실업률은 전월 대비 0.1%포인트 증가한 6.1%에 그쳤다. 시장 컨센서스(예상치 100만 개)를 크게 밑도는 27만 개의 신규 일자리는 '쇼크'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날 이날 뉴욕 증시는 일제히 상승했다. 심지어 다우존스 지수와 S&P500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대 고용시장 달성을 지상과제로 하는 연준이 테이퍼링을 천천히 시작할 것"이라는 안도감이 시장에 작용한 것이다.
시장 기대치를 못 맞추는(그런데 저조한 지표가 나와도 증시가 안도감에 상승하는) 미국의 실업률 업데이트(5월)는 한국시간으로 이번 주 금요일 밤 발표된다.
이날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는 건 일자리를 찾지 않는 유휴인력 이슈가 지난 4월 실업률 발표 때보다 더 비중있는 화두로 부상할 것이라는 점이다.
1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노동시장 유휴인력의 혼재된 신호들'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를 요약하면 "미국의 고용시장 실체는 기대보다 훨씬 나쁘다. 팬데믹 전 30년래 가장 높은 변동성"이라는 것이다.
종전 연준이 고용시장 환경을 들여다보는 26개 지표의 정합성이 떨어져 자칫 고용시장 상황을 오판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종전까지 유휴인력 문제는 경기활력이 떨어져서 발생하거나 구직자와 구인자 간 치열한 '탐색·매칭' 등 고용시장의 구조적 요인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초유의 팬데믹 사태로 고용시장에 '새로운 왜곡'이 생겼다.
모든 근로활동이 일시에 정지되는 팬데믹으로 인해 여성 근로자들은 집으로 복귀한 뒤 막대한 육아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샌프란시스코 연은은 △27주 이상 장기 실업자 △고용 참여율 △흑인·히스패닉·라틴계 실업률 등의 다른 지표를 예전보다 면밀히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같은 날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인 닐 카시카리는 CNN과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노동시장을 재건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환기시켰다.
이 역시 '유휴인력'과 연관된 문제로, 금융위기 당시 인플레 매파들은 외형적 고용지표와 인플레 상승에만 혈안이 돼 노동시장에 제대로 복귀하지 못한 수 백만명의 근로자들을 외면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카시카리 총재는 "(금융위기 때처럼) 지금 여성들이 사이드라인에 소외돼 있다. 우리는 이들을 과거처럼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육아 부담으로 일자리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여성 인력 문제를 무시하고 인플레 지표를 읽을 경우 "경기가 과열되고 있다"는 착각과 '때이른 긴축'이라는 오판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휴인력을 둘러싼 또 하나의 문제는 팬데믹발 욜로족의 출현이다.
정부가 뿌린 실업수당과 각종 현금성 지원은 일할 능력과 자질이 충분한 시민들의 노동시장 참여 욕구를 떨어뜨리고 있다.
유휴인력의 증가는 가뜩이나 원자재 부족으로 고통받는 산업계의 공급망 위기를 부추기고 미래 임금인상 등 인플레 압박으로 악순환을 일으킨다.
예컨대, 지난달 러시아발 해킹 사태로 미국 동부지역 송유시설이 일시 가동중단에 돌입하면서 동부지역 일대에 기름값 대란이 벌어졌다.
대부분 언론이 일제히 시민들의 사재기(패닉바잉)를 문제로 지목했지만 여기에도 유휴인력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송유관을 타고 들어오는 기름을 저유소에서 소매 주유소로 배달할 트럭기사들이 해킹 사태 이전부터 직장에 복귀하지 않아 이미 물류망이 빠듯한 상태였다.
이처럼 미국 근로자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기다리며 탐색전을 벌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미국 경제의 공급망 관리 리스크와 인건비 인상 압박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번 주 발표될 5월 고용지표에서 유휴인력 리스크가 완화하려면 무엇보다 신규 일자리 규모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넘어서야 한다.
문제는 이 지표가 양호하게 나와도, 반대로 쇼크 수준으로 나와도 앞에 언급했듯이 증시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테이퍼링의 빠른 도래를 걱정하면서 어떻게든 증시 과열을 연장하고 싶은 투자자들의 욜로 심리가 이번 주 금요일 뉴욕 주가지수를 어떻게 만들지 주목된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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