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년노동자 '평택 대학생' 죽음에도 관심을..."진상 끝까지 밝히겠다"
입력 2021-05-09 19:07  | 수정 2021-08-07 20:05

평택항 부두 야적장에서 적재물 정리 작업을 하던 현장 노동자 이선호(23) 씨가 300kg에 달하는 개방형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지 17일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고(故) 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62) 씨는 여전히 아들의 빈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죽음의 진상을 밝힐 때까지 싸움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입니다.

끔찍한 사고가 본격적으로 전해진 것은 지난 6일 이 씨의 유족들이 평택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고는 전형적인 산업재해다. 원청회사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입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사고가 난 지 보름이 넘었는데 이제야 소식을 알게 됐다"며 조의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뒤늦게나마 이 씨의 끔찍한 사고가 보도되고 주목받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 한강공원에서 있었던 대학생 사망 사건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에 비해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이지만 거대한 구조적 문제에 둔감해졌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개인과실 아닌 구조적 문제…반복된 '故김용균 참사'

고(故) 이선호 씨의 죽음이 지난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故) 김용균 씨의 죽음과 닮았다는 말이 나오는 건 여러 구조적 문제들이 겹쳐 생겨난 인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씨의 친구라고 밝힌 A 씨는 현장의 무리한 인원 감축, 전반적인 안전관리 미흡, 구조물 노후화 등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사고라고 강조했습니다.


A 씨는 "선호는 2월 말까지 항구 내 동식물 검역을 위한 하역 잡업을 했다. 사고가 발생한 개방형 컨테이너 작업은 원래 선호의 일이 아니었다"며 "지난 3월부터 원청 관리자가 바뀌면서 인력 통폐합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선호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작업을 하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선호는 사전에 어떠한 안전교육도 받지 못 했다. 선호에게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줄 안전관리자가 현장에 한 명만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안전장비도 지급되지 않은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작업이 이뤄졌다고 비판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일정한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 등을 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고 당시 현장에는 외국인 노동자 1명이 전부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확한 사고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따져볼 부분은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고(故) 김용균 씨 참사와의 유사성이 드러납니다. 재하청 업체에 맡겨진 가장 위험한 일을,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한 20대 청년이 수행하다가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중대재해법 적용 아직…법 개정 논의 시작될까

이렇게 산업현장에서 사람이 또 죽었지만 아직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에야 시행되기 때문에 아직 적용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과연 시행이 되더라도 이 같은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처음 발의한 정의당은 중대재해법이 실효성 있게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난 1월 제정된 중대재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7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고(故) 이선호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중대재해법을 만들었는데 또다시 꽃다운 청년을 잃었다"고 한 데 대해 "정의당이 제안했던 중대재해처벌법 원안대로 법을 고치는 데 앞장서달라"고 제안했습니다.

류 의원은 "65명이 근무하는 (평택항의) 사업장 '동방'이 만약 50인 미만의 사업장이었다면 2024년부터 적용되는 법을 만드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지난해 말 법안 심사과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배제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바꾼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밖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상한을 줄이고, 하한은 아예 빼버렸다"며 경영책임자의 책임 의무를 축소한 점을 지적한 류 의원은 "국민의 반대는 방패가 될 수 없다. 이낙연 대표가 이끄는 180석 슈퍼여당의 창은 '공수처' 앞에서는 국민의힘의 무제한 반대를 뚫어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같은 시기 동년배의 죽음…비정상에 익숙해진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한편 이 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비슷한 시기 서울 한강공원에서 실종된 뒤 주검으로 발견된 고(故) 손정민 씨의 죽음에 비해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며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지난 6일 트위터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으랴. 동년배 두 청년의 죽음"이라며 "한 청년은 한강에서, 한 청년은 휴학하고 평택항에서 일하다 컨테이너에 깔려 숨졌다"고 운을 뗐습니다.

이어 "죽음마저 외면당한 서럽고 비참한 최후. 노동자의 죽음은 너무 흔하게 널려서일까. 언론이 관심을 갖는다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손 씨가 의대생이 아니었다면, 사고 현장이 반포한강공원이 아니었다면 파장이 달랐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한강 실종 청년은 그가 의대생이어서가 아니라 단순 사고사 같지 않은 게 그렇게 처리될까봐 화가 나고 염려스러운 마음 때문에 이슈가 되는 것"이라며 두 사고를 강남 의대생과 평택항 노동자라는 프레임으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손 씨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또 이러한 풀리지 않는 의혹이 더 큰 관심을 끄는 것을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씨의 경우처럼 산업현장에서 구조적인 결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망사고라는 비정상적 상황이 우리에게 일상화된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더이상 '김용균 씨', '구의역 김군'과 같은 안타깝고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많아지지 않도록 더 많은,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 백길종 기자 / 100road@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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