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성윤, 검찰총장 후보서 제외…'피의자 신분'이 발목?
입력 2021-04-29 16:25  | 수정 2021-05-06 17:05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후임이 될 검찰총장 후보를 추천하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후보추천위)가 유력한 차기 총장 후보로 꼽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배제한 최종후보 4인의 명단을 29일 발표했습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조치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 지검장이 피의자 신분임에도 총장 후보에 오를지가 최대 관심사였는데 법무부 장관의 선택을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 지지율이 전에 비해 떨어진 가운데 정권의 지지를 받는 이 지검장이 총장 최종후보가 된다면 여야 대립이 격화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가능성이 원천 차단되면서 예상보다는 조용하게 총장 지명이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성윤, 조직장악력 의구심"…발목 잡은 '피의자 신분'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추천위원장을 맡은 후보추천위는 이날 회의를 열고 심사를 진행해 김오수(58·사법연수원 20기) 전 법무부 차관과 구본선(53·23기) 광주고검장, 배성범(59·23기) 법무연수원장, 조남관(56·24기) 대검찰청 차장검사 등 4명을 최종후보로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 추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추천위는 "심사대상자들의 능력과 인품, 도덕성, 청렴성, 민주적이고 수평적 리더십, 검찰 내·외부의 신망,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 등 검찰총장으로서의 적격성 여부에 대하여 심사했다"고 밝혔습니다.

현 정권의 검찰개혁을 마무리할 적임자로 꼽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낙마한 가운데, 추천위의 발표에서 눈에 띄는 점은 '검찰 내·외부의 신망'을 고려했다는 점입니다.

앞서 대검찰청은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수원지검 형사3부의 의견대로 이 지검장을 기소하기로 결론내렸습니다. 검찰은 후보추천위의 후보 추천 절차가 종료되면 이 지검장을 불구속 기소한다는 방침입니다. 특히 이 지검장의 측근으로 분류된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도 이 지검장의 기소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한 추천위원은 "이 지검장이 기소에 직면하고, 중앙지검 내부에서는 일부 간부들이 항명하고 있어 조직 장악력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는 평가가 있다"며 "정권 말 검찰은 여러 내·외풍에 시달릴 텐데 과연 검찰 조직을 추스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검찰발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면 검찰개혁 마무리 작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도 전했습니다.


다른 추천위원도 "이 지검장 문제로 인선이 지연되고 있다면, 한 사람 때문에 사법 공백 사태가 장기화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검장이 검찰 내부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점은 지난해 말 윤 전 총장 정직 처분 당시에도 드러났습니다. 당시 윤 전 총장이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자 서울중앙지검 35기 부부장검사들은 검찰내부망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5기 부부장검사 입장'이라는 글에서 "징계사유가 부당한 것은 물론 징계위원회 구성부터 의결에 이르기까지 징계 절차 전반에 중대한 절차적 흠결이 존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선 지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윤 전 총장 측근과 가족 비리 수사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부부장검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면서 지난해 말에 이미 이 지검장의 검찰 내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 같은 일들이 누적돼 이 지검장의 검찰 내 리더십 부족이 부각됐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靑, 이성윤 밀었지만…'지지율 하락' 여권 분위기 반영된 듯

이 지검장이 최종후보에서 아예 배제된 것을 놓고 청와대가 이 지검장을 선택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청와대는 이 지검장을 가장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1년까지 임기가 이어지는 만큼 성향이 불분명한 사람이 총장을 맡을 경우 임기 말 불거질 수 있는 각종 스캔들을 근거로 검찰이 정권에 칼을 겨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7 재보궐선거에서 패하고 지지율 하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여권에서는 이 지검장이 총장이 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이라고 불리며 쓴소리를 도맡아온 조응천 의원은 지난 24일 차기 검찰총장 인선 기준으로 '국정 철학'을 언급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향해 "말 잘 듣는 검찰을 원한다는 걸 장관이 너무 쿨하게 인정해버린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질타했습니다.

여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은 그동안 검찰개혁을 앞장서 주도해온 쪽에서도 이 지검장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는 점에서 볼 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는 김용민 의원은 지난 27일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서 "개인적인 역량 혹은 평판 등을 고려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런 구도 하에서는 또 여러 가지 혼란을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우려도 좀 있다"고 밝혔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법개혁 실무를 맡았고 2011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펴냈던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권에서 '검찰개혁 시즌2'를 진행하고 있는 데 대해 "시즌2보다 지금까지 진행된 개혁의 성과를 일단 평가하고 해야 할 일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검찰개혁을 새롭게 하려 한다면 새로운 합의와 대국민 약속이라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채로 검찰개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리더십을 갖기 어렵다"고 말해 검찰개혁의 속도를 높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이 같은 여권 내 분위기가 이 지검장 후보 배제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성윤·양부남 배제…김오수·조남관 등 경합

유력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과 양부남 전 부산고검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가운데 김 전 차관만 최종후보로 살아남게 되자 후보추천위가 김 전 차관을 밀어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하마평에 올랐던 양 전 고검장과 이 지검장이 아예 추천도 받지 못한 것은 의외"라며 "이러면 김 전 차관이 총장이 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세 명 가운데 정권의 말을 잘 듣는 검찰총장으로는 이 지검장이 적임자지만, 정부·여당의 부담이 커지는 것도 고려해야 해 김 전 차관 쪽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양 전 고검장의 경우 과거 강원랜드 수사 당시 검찰총장의 지시를 수사 방해라고 항명한 적도 있어 향후 정부와 각을 세울 수도 있는 인사라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에 김 전 차관이 치우치지 않은 인사였다는 평가입니다.

이 지검장 등이 빠지면서 조남관 대검 차장 등에게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조 차장은 윤 전 총장 사퇴 파동 당시 보여준 '충성심 문제'로 후순위로 밀렸으나 최종후보 4인방 가운데 가장 검찰 조직을 안정시킬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됩니다.

[ 백길종 디지털뉴스부 기자 / 100road@mbn.co.kr ]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