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미나리 같은 생명력의 배우 윤여정…아카데미 당도한 그의 반세기
입력 2021-04-26 11:55  | 수정 2021-05-03 12:05
배우 윤여정 / 사진 = 판씨네마
데뷔 55년 만에 아카데미 당도한 윤여정의 여정
살기 위해 연기한 ‘생계형 배우…오스카 들어올리다
70대 노배우 품격·젊은층과 호흡하는 감각 겸비


◆ 반세기 연기인생…돈 필요했던 ‘생계형 배우

배우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습니다. 55년 전입니다. 한양대에 다니던 시절 등록금을 벌려고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탤런트 시험을 보라는 제안을 받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연기를 한 이른바 생계형 배우였습니다.

오스카를 수상한 지금도 전성기라 할 수 있지만, 1971∼1972년도 그의 전성기 중 하나로 꼽힙니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와 ‘충녀, 드라마 ‘장희빈 등으로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이름을 떨쳤습니다. 드라마 ‘장희빈에서는 악녀 연기가 워낙 뛰어나 사람들이 욕설을 하기까지 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가수 조영남과 결혼생활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13년 만에 이혼 이후에는 아이들 양육을 위해 역할을 가리지 않고 연기에 몰두했습니다. 윤여정은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시절을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하더라. 그래서 예술은 잔인하다.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가장 잘한다"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 바람난 가족·하녀·여배우들…빛나는 필모그래피

여러 작품 가운데 본격적인 복귀를 알린 작품은 임상수 감독이 연출한 2003년 작 ‘바람난 가족으로 꼽힙니다. 투병 중인 남편을 두고 불륜을 선언하는 배역을 선뜻 맡았습니다. 이후 임상수 감독과 '그때 그 사람들'(2005), '오래된 정원'(2006), '하녀'(2010), '돈의 맛'(2012), '나의 절친 악당들'(2015), '헤븐:행복의 나라로'(2021)까지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습니다.

2009년작 '여배우들'(2009)에서는 당대 내로라하는 여배우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존재감을 나타냈습니다. 이미숙과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등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종로 일대에서 이뤄지는 노년층 성매매,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한 2016년작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연기의 스펙트럼을 새로운 지평까지 넓혔습니다. 칸국제영화제에는 두 차례 초청을 받았습니다.


◆ 젊은 감각 겸비한 원로배우…자연스러운 존재감

최근에도 윤여정은 활발한 연기활동으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2016년 정유미와 함께한 영화 '산나물 처녀', 2019년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에서는 젊은 배우나 제작자와 호흡을 맞추며 평단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미나리에 대해서도 "교포 2세들이 만드는 작은 영화에 힘들지만 보람 있게 참가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독립영화라 고생할 게 뻔해서 하기 싫었다"면서도 "정이삭 감독과는 다시 한번 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최근 TV 예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매력을 알리고 있습니다. 원로 노배우의 품격을 지키는 동시에 까마득한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함께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은 젊은 층이 배우 윤여정에게 빠져드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오랜 연륜에서 배어나오는 재치와 통찰은 다른 이가 흉내내기 어려운 윤여정 만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기대 저버리지 않은 수상 소감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린 윤여정은 수상 소감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현지시간 25일 영화 ‘미나리 제작사인 A24 설립자인 배우 브래드 피트가 자신을 호명하자 윤여정은 무대에 오르며 "드디어 브래드 피트를 만났다.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디 있었나?"라고 농담을 건넸습니다.

그는 "유럽 분들은 제 이름을 여여라고 하거나 그냥 정이라고 부르는데, 제 이름은 윤여정이다. 오늘만은 여러분 모두 용서해드리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아카데미 관계자와 '미나리' 제작진에 감사를 전하면서 "정이삭 감독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다. 우리의 선장이자 나의 감독이었다"고 애틋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 모두에 찬사를 보낸 윤여정은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스 같은 대배우와 경쟁을 하느냐"면서 "그저 내가 운이 좀 더 좋았거나, 미국인들이 한국 배우를 특별히 환대해 주는 것 같다"고 자세를 낮췄습니다. 원로배우의 품격이 돋보이는 수상 소감이었습니다.

[ 신동규 디지털뉴스부 기자 / easternk@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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