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MBN이 본 신간] 산돌 키우기 외
입력 2021-04-04 15:51 


올해로 등단 55주년을 맞은 한승원 작가가 소설가로 살아온 일생을 정리한 자서전입니다.

한강과 한규호, 두 작가의 아버지이기도 한 저자는 "나의 마지막 진술이 될지도 모르는 이 책은 내가 이야기를 통해 삶의 빛을 얻고, 순전히 이야기의 힘으로 살아왔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머니가 꾸었던 태몽에서 시작해 고향 장흥에 내려가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하는 이즈음까지 80년 남짓한 세월을 500쪽에 육박하는 페이지에 꾹꾹 담아 채워 넣었습니다.

6·25 당시 인민군에 점령당한 고향에서 반동으로 분류돼 곤욕을 치른 아버지, 인민군이 패퇴하자 좌익 부역자로 총살당한 매형과 당숙 등 이념 전쟁의 쓰라린 추억은 자신을 구원했던 이야기의 힘을 타인과 나누는 '문학'이란 병으로 발현합니다. 이념으로 갈라진 이웃 간의 대립, 대학 진학 전 고향 염전에서 일한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을 목도한 울분은 특히 큰 영향을 미쳤는데 전쟁의 원초적 야만과 노동의 경험은 작가의 리얼리즘 작품의 기반이 됐고, 광주의 울분은 '불의 딸'로 시작된 연작 중편소설의 씨앗이 됐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푸른 산'이라 쓰면 절망한다. '쪽물을 들여놓은 듯싶은 하늘' '청남색 잉크를 가득 채워놓은 듯한 바다' '진한 쑥물을 뒤집어쓴 듯한 산'이라 해야 절망에서 벗어난다"는 구절에서 글쓰기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도 드러나는데 노작가는 "이념이나 정의를 위해 글을 쓰지 말고 진리를 위해" 쓰는 작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힙니다.

작가의 딸인 소설가 한강은 추천사에서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어떤 경우에도 문학을 삶 앞에 두지 않겠다고. 다만 반짝이는 석영 같은 이 페이지들 사이를 서성이고 미끄러지며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전합니다.



재치 있는 입담과 소통 철학으로 사랑받는 방송인 김제동이 신간 평범한 일상에서 여전히 길을 몰라 답답하고 불안한 수많은 이들을 대신해 이 시대 가장 주목받는 전문가 7인을 만나서 얻은 답변을 소개한 인터뷰집입니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건축가 유현준 교수,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 경제전문가 이원재 대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 대중문화평론가 김창남 교수까지 7인의 전문가를 만나, 양자 세계와 인간 세계, 부동산 정책과 건축, 달 탐사 프로젝트, 기본소득과 일자리, 뇌 과학과 인공지능, 핵과 기후 위기 그리고 대중문화의 힘까지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어렵고 딱딱해질 수 있는 주제들을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부드럽게 어루만져 풀어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길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각자의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지난해 10월 '히스테리아' 영역본으로 세계적 권위의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 수상한 김이듬 시인이 '책방이듬'을 운영하며 겪은 여러 에피소드와 치열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해낸 시적 사유와 단상들을 모았습니다.

주변에서 작은 동네서점은 필연적으로 망하리라 만류하지만, 저자는 "심상이 두근거리며 온몸이 뜨겁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기분을 잃어버리고 살게 될까 봐"라며 계획을 강행하고 '책방이듬'은 편안하고 익숙했던 삶을 넘어뜨리고 그 자리에 타인을 들이는 진정한 환대의 공간이 됩니다.

학창시절 문학소녀였던 세탁소 아주머니부터 직장에 묶여 책방에 오지 못하는 약사, 이별하고 괴로워하는 청년까지. 책방에서 마주한 만남과 날들을 통해 젊음이나 행복, 만남 등 긍정적 대상의 의미를 되짚어보기도, 폭력과 절망 등을 다루며 힘겨움 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시를 통해 약자를 향한 폭력에 문제를 제기하며, 거침없는 언어로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저자가 '책방'이라는 공간에서 진솔한 언어와 문학이라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법을 보여줍니다.



저자가 14세기 이후 유럽의 명화를 다양한 반전 요소들을 통해 재해석한 서양미술 입문서입니다.

렘브란트의 '야경'이 제목처럼 밤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닌 낮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인데 렘브란트가 그림을 그린 후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 표면에 바른 니스가 검게 변했고 그림의 배경이 밤이라 착각한 이들이 작품 제목을 '야경'이라고 바꿔 부른 겁니다. 또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속 모델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 프랑스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림 속에서 평소 독서를 즐기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평생 읽은 책이 4~5권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 등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 시리즈는 '죄와 벌'처럼 작가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방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데 고흐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까지 머문 프랑스 아를의 자기 방을 거의 같은 구도로 3장 그렸습니다. 세 작품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데 벽지와 바닥, 사물의 색상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3장의 그림에서 고흐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데 저자는 '풍경에 숨은 반전'으로 꼽으며 고흐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 대상에 얽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나타내려 했다고 설명합니다.

거장들의 그림 속에 숨겨진 101가지 반전이 125점의 명화들과 함께 수록돼 있는데 미술을 잘 모르는 독자들도 그림 속 진실과 거짓말, 유명 작가들의 인생과 작품의 탄생 배경, 당대의 사회·역사까지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사회상과 미래 방향성을 독일 현대 철학의 아이콘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가 분석하고 비평한 책입니다.

저자는 디지털 거대 기업의 무제한 팽창과 이에 따른 독점을 우려했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거대 기업들이 기존의 위계질서를 광범위하게 무너뜨리는 동시에 불평등도 심화시킨다고 설명합니다. 대신 저자는 생업으로서의 노동과 자유로운 활동으로서의 노동을 분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만드는 게 '인간의 얼굴을 한 디지털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유토피아에 대한 구상을 디지털 시대로 옮겨놓은 셈입니다.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소 떼를 돌보며 저녁 후에는 비평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것도 내가 단지 그렇게 하고 싶어서이므로 사냥꾼, 어부, 목동, 비평가 등등이 돼야 할 필요가 없다"가 유토피아의 삶인데 책의 제목은 바로 이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디스토피아'의 가능성이 큰 미래지만 저자 프레히트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고민하고, 진로를 올바로 설정한다면 기술이 아닌 인간 중심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좋은 성적을 갖으려고 하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 감성 학습·도덕 학습을 동반한 창의력 교육을 하자고 말합니다.

시민의 시간과 에너지를 호기심과 내적 욕구의 충족을 위한 자기계발에 써야 디스토피아로 가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기술적으로 조율할 수 없는 디지털화의 사회적 문제를 풀어낼 수단으로 '정치'를 강조합니다. 부제는 '디지털 거대 기업에 맞서 인간적 삶을 지키는 법'처럼 중요한 것은 얼마나 기술적으로 편리한 사회에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고(故) 이민아 목사 9주기 기념 개정판입니다. 새롭게 출간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떠나간 딸에게 전하는 아버지 이 교수의 생각과 생전 딸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묶었습니다. 이 교수가 딸을 생각하며 새로 쓴 서문과 초판에 실렸던 시들 대신 그림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딸의 출생부터 이별까지 짧은 생애를 회상하며, 그녀가 이 땅에 남긴 자취를 하나 둘 되짚어봅니다. 또 마지막까지 미숙하기만 했던 아버지로서 딸을 위한다고 했던 일들이 오히려 아이를 외롭게 하지는 않았는지 그는 뒤늦게나마 아쉽고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굿나잇 키스를 기대하며 서재 앞을 서성이던 딸을 안아주지 못한 일, 미용실에서 깜빡 잠이 들어 딸의 신부 입장을 늦춘 일, 떠나기 며칠 전 딸이 호텔에서 하룻밤을 더 묵어도 될지 조심스레 묻던 일 등 애도를 위해 딸의 생애를 되짚습니다.

딸을 잃은 슬픔을 딛고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쓰인 이 글은 독자로 하여금 상실의 고통과 좌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다정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에게만 닥쳐온 비극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겪는다. 나와 똑같은 슬픔과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당신도 그랬냐고. 그때 그 골목을 지나다가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느냐고. 그게 죽음인데도 오히려 그 애가 태어나던 때 생각이 나더냐고."



저자는 이십 대 중반까지 '수포자'로 살다가 미국 오클랜드대 공학부 교수가 됐습니다. 수학·과학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학생들에게는 상상 속 인물 같은 존재입니다.

부제는 '수학 근육을 만드는 10가지 방법'으로 저자는 누구나 연습하면 '수학 근육'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 십수 년간 체득한 학습법을 소개할 뿐 아니라 교수강의평가 사이트 '레이트마이프로세서'에 이름을 올린 유명 교수들이나 이과생 수백 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노하우는 물론 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 등 이론적 근거도 담았습니다.

가장 강조하는 건 집중모드와 분산모드의 활용인데 집중모드는 고도로 집중한 상태, 분산모드는 일종의 휴식 상태입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수학계 전설로 꼽히지만, 수학 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휴가를 즐기며 반짝 해답을 찾곤 했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나 토머스 에디슨 등 과학자,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천재들도 집중과 분산을 잘 활용한 케이스입니다.

또 수학과 과학을 잘하려고 개념적인 '기억 덩어리'를 형성하라고 설명하는데 정보를 덩어리로 만들어 놓을 경우, 핵심개념만 잘 기억하면 자연스럽게 디테일이 떠오르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입니다. 비유와 은유 활용, 시각 이미지로 구성, 기억의 궁전법, 암기용 문장이나 노래 만들기 등을 통해 머릿속에 기억 덩어리를 쉽게 구축할 수 있습니다.

책은 시험 잘 보는 법도 소개하는데 '어려운 문제에서 쉬운 문제로 넘어가기'로 출제된 시험 문제들을 빠르게 훑어보고 가장 어려워 보이는 문제부터 손대 보는 것입니다. 정 못 풀겠으면 빨리 손을 떼고 좀 쉬운 문제로 넘어가는데 비교적 쉬운 문제를 먼저 풀다 보면 분산모드의 도움으로 어려운 문제의 실마리를 의외로 쉽게 찾을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MBN 문화부 이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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