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우리도 1억 드릴테니 입사 좀"…연봉인상 경쟁에 스타트업 비상
입력 2021-03-22 21:58 
지하철 판교역에 붙은 구인광고

'최대 1억 사이닝(연봉 외 보너스)' '원격근무지원금 제공'
요즘 경기도 판교 지하철 역사 곳곳에는 이같은 문구가 담긴 스타트업들의 구인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테크노밸리로 가는 길목에만 이미 4곳의 IT업체에서 직원 채용 광고를 하는 중이다. 전국에서 최다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서울 강남역 지하철 스크린도어에도 한 게임업체의 구인광고가 내걸려 있다. 서버, 데이터분석 등 다양한 IT관련 모집 분야를 적어놓은 채용 광고에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쉽게 고정이 됐다.
IT 및 게임업계에서 시작한 '개발자 영입전'에 다양한 스타트업과 유통업체들이 가세하며 그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그 결과 전문 개발 인력의 몸값은 그야말로 '금값'이 돼 후발주자격인 스타트업 등에서는 더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개발자 모시기에 나섰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자책 플랫폼 회사 '리디'는 올 상반기 소프트웨어 개발 직군의 신입 초봉으로 5000만원을 적용키로 했다. 코로나 사태 속 폭풍 성장한 당근마켓 역시 개발자의 최저 연봉으로 5000만원을 내걸었다.
'억소리' 나는 보너스 제안도 줄을 잇는다. 부동산 정보 관련 플랫폼 회사 '직방'에서는 개발자의 초봉으로 6000만원을 제시한데 이어 경력직 개발자에게는 '사이닝 보너스'로 최대 1억원을 주기로 했다. 사이닝 보너스란 수 년간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않는 조건으로 받는 보너스를 말한다.
올해 신입 및 경력 개발자 공개채용을 진행하는 카카오커머스는 아예 합격자에게 1억원 상당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지급하기로 했다. 한 중견 IT기업 임원은 "1~2년 사이 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이나 대기업에서 IT 인재확보에 열을 올리며 개발자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면서 "하지만 향후 개발 분야가 세분화될수록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져 업체별로 경쟁사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잇따른 연봉 인상 소식에 IT기업 신입 직원들의 경쟁률은 올라가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로 위축된 취업 시장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개발자 자리를 노리는 수요가 많아서다. 15년차 IT개발자는 "최근 2명 뽑는 개발자 모집에 500여통의 지원서가 도착해 깜짝 놀랐다"며 "작년만해도 100명 가량 지원을 했는데 IT업계의 연봉 인상 소식 등이 널리 알려지면서 취준생들 사이 관심이 정말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한 지하철 역사 내 붙은 구인광고
하지만 신입 직원들이 대거 몰리는 곳 역시 높은 연봉과 보너스를 제시하는 곳들이다. 이에 따라 지나친 연봉 인상과 보너스 경쟁이 결국 IT업계에서 '개발자 양극화' 현상을 낳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스타트업 웹개발자 A씨는 "요즘 개발자들 몸값이 뛰고 있다는데 그것은 대기업과 일부 개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라며 "여전히 중소기업에서는 개발 인력을 제 때 구하지 못하는 회사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초봉 3000만원을 받으며 개발업무를 시작했다는 한 개발자는 "4년만에 연봉 4000만원 수준을 맞췄는데 요즘 5000만원 이상의 초봉으로 일을 시작한다는 신입 직원 모집 소식을 들으면 허탈하다"며 "경력직임에도 대기업 신입직원과의 연봉 격차가 더 나면 어쩌나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인재 확보의 악순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곧장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는 등 규모가 적은 기업일수록 인력 이탈이 더욱 심해져서다.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들에서 사이닝 보너스를 주기로 한 것 자체가 대기업에 인력을 뺏기지 안으려는 고육지책의 일환"이라며 "안 그래도 신입 직원을 뽑아 3~4년간 열심히 교육시켜 일좀 하겠다 싶으면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봉을 올려주지 못한 회사들은 갈수록 인재 확보에 애를 먹게 생겼다"고 걱정했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byd@mk.co.kr / 김승한 매경닷컴 기자 winon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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