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017년 5월 방문 않으셨더라면…" 인천공항 실직자의 눈물
입력 2021-03-20 14:04  | 수정 2021-03-22 21:04


[청와대 앞 사람들]
서울 종로구 효자동 139, 청와대 앞 분수대에는 매일 갖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습니다. 집회금지구역인 이곳에서 피켓을 하나씩 들고 청와대를 향해 '1인시위'를 합니다. 종종 노숙농성이 벌이기도 합니다. 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 매주 토요일, 청와대 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이 2017년 5월,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하지 않으셨더라면 어땠을까요."
지난 5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만난 민주노총 인천지역일반노조 인천공항소방대 분회장 한명석 씨(56)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는 '실직자 양산하는 정규직화, 문재인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피켓을 든 1인시위에 이날 참여했습니다.
한 분회장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직접고용 전환 과정에서 직장을 잃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 12일, 취임 사흘 만에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한 사실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한씨 역시 이 전환 계획에 희망을 품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또는 '직고용'은 기본적으로 2017년 5월 12일 기준 이전 입사자는 직고용 적격심사, 이후 입사자는 공채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소방대원 관리직 근로자는 기준일 이전 입사자라도 공채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평균나이 51세의 소방대 관리직 직원들은 때아닌 NCS(국가직무능력표준)를 공부하며 공개채용 절차에 임했지만 결국 관리직 직원 19명 중 7명은 직장을 잃었습니다. 이들을 포함해 소방대·야생동물통제요원 47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한씨는 1인시위를 하며 자신이 이 회사에 몸 담아 일해온 지난 20년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2000년에 인천공항 시설관리 회사에 입사해 20년을 공항 소방대원으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공항에서 벌어지는 구급 활동과 인명 구조가 주 업무였는데, 업무 성과를 인정받아 공항소방대 관리자가 됐다고 하네요.
한씨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한다는 사명감이 대단했다"며 "야간수당도 나오지 않지만 기쁜 마음으로 야근하곤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대화는 해고통지를 받던 날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20년을 일한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잘리고, 다음날 아침에 우편으로 해고통지서가 배달됐을 때의 심정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었다"며 "뭐 때문에 그렇게 일했나 싶다"고 푸념했습니다. 한씨를 포함한 47명의 해고자 중 45명이 노조 차원에서 대응을 하고 있고, 나머지 2명은 개인 자격으로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좋은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7일 "인천공항소방대 관리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위한 공개경쟁 채용과정에서 탈락해 실직된 신청인들에 대한 구제대책을 마련한 것을 시정권고 한다"고 의결했습니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도 지난달 이들에 대한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인용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공사 자회사인 인천공항시설관리는 판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해고자들을 복직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인천공항 측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노사간의 싸움이 길어지게 됐습니다. 이들은 중노위에서 패소할 시 근로자지위확인소송도 할 계획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한씨는 "나는 정년이 4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지만 복직해서 (공채에서 떨어졌다는) 불명예를 떨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정부 정책인 '공정채용'의 원칙을 지키고 노사전합의에 의해 진행된 채용절차이나 안타깝게도 탈락한 소방대 직원이 발생했다"며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취지 및 채용공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적인 구제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윤식 기자 / 신화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