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얀마 청년들 "한국 민주화 역사, 우리에게 큰 힘"
입력 2021-03-20 11:00  | 수정 2021-03-27 11:05

"지금 미얀마 시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어요. '이번에 우리가 이기면 한국이 되고, 지면 북한이 된다.' 민주화에 성공한 한국의 역사가 저희에겐 희망이에요."(재한 미얀마 청년모임 소속 수타진(28)씨)

매주 수요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에서는 '재한 미얀마 청년모임' 회원들이 자국의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1인시위를 합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20∼30대 미얀마 노동자와 유학생 30여명이 만든 모임입니다. 광화문 광장 등 시내 곳곳에서도 팻말을 들고, 주말에는 희생자 추모행사에도 참석합니다.

생계나 학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거리에 서는 이들은 오늘(20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민주화 이전의 미얀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미얀마는 2015년 53년에 걸친 군부 지배를 종식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나 지난달 1일 쿠데타로 정권이 다시 군부로 넘어갔습니다.


◇ "한국은 희망의 상징…민주화 모델 삼아 우리도 해내길"

청년모임 소속인 회사원 준(가명·34)씨는 "제 조카를 포함한 현 세대는 과거처럼 억눌려 살기를 원치 않는다"며 "쿠데타가 성공하면 우리가 민주화 이후 이룬 자유와 발전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은행원 모모(가명·30)씨는 "민주화 이후 언론 자유가 보장된 것은 물론 여러 정당과 정치단체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접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됐는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희는 절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제야 살맛이 난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주화를 먼저 쟁취한 한국이 이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의 6월 민주항쟁 1년 뒤인 1988년 8월 8일 당시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른바 '8888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군경의 유혈 진압으로 약 3천명이 숨졌고 군부독재는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2015년 한국에 온 회사원 수타진씨는 "우리는 그때의 실패로 30년 가까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성공해 오늘의 한국이 됐다"며 "촛불집회처럼 한국인들이 굳은 의지로 이끌어온 민주화의 역사가 우리에겐 큰 힘이 된다. '우리도 꼭 한국처럼 되고 말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습니다.

인천에 사는 준씨는 미얀마 쿠데타 저항 시위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당시 광주도 외국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싸워 피를 흘렸다"며 "그런 노력이 쌓여 결국 민주주의를 얻어낸 점이 우리에게 힘과 용기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 대학원에 유학 중인 윤쉐진(25)씨도 "미얀마 시민들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모델 삼아 잘 싸워 보자'는 이야기가 많이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우리 미얀마도 2021년은 이렇지만 2040∼2050년쯤에는 한국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해요."


◇ 시위 참여하는 가족 안위 걱정…"도와주신 한국 시민들께 감사"

이들은 고향에서 군경에 맞서 싸우는 가족과 친지들의 안전이 무엇보다 걱정입니다. 현재까지 2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숨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청년모임 소속인 에이에이 아웅(31·프리랜서 번역가)씨의 오빠 2명은 양곤에서 시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야간에는 거리에 군경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직접 보초를 서기도 합니다. 그는 "그나마 우리 가족이 사는 지역에는 무력 진압이 거세지는 않았다"면서도 우려를 떨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직 군부나 그 지지자들이 재한 미얀마 청년모임 활동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위협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모모씨는 "한국에 살며 미얀마 시위대 측을 후원한 문민정부 지도자와 사업가의 얼굴과 이름을 군부가 '불법 자금 송금자'라며 신문에 공개하는 일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최근 미얀마에 군용물자 수출을 금지한 것을 반기며 유엔과 다른 나라들이 더 적극적으로 군부를 제재하도록 촉구하는 역할을 맡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나같이 자신들을 응원하는 한국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에이에이 아웅씨는 "1인시위 도중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용돈으로 5만원을 주셨고 커피를 사주며 지지해 주기도 한다"며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따뜻했다"고 말했습니다.

수타진씨는 "자기 일이 아닌데도 도와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더 큰 관심이 생기도록 널리 알려 주신다면 더 많은 피를 흘리기 전에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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