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6천년 전 매장지서 드러난 학살
입력 2021-03-11 16:19  | 수정 2021-03-11 18:14
크로아티아 포토차니 고대 집단학살 현장 / 사진=Jacqueline Balen, Archaeological Museum of Zagreb 제공

약 6천200년 전 고대 집단 매장지에서 발굴된 유해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무차별 학살 정황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PLoS)과 과학전문 매체 등에 따르면 크로아티아 인류학연구소의 마리오 노박 박사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크로아티나 동부 포토차니 마을에서 무더기로 발굴된 고대 유해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를 개방형 정보열람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을 통해 발표했습니다.

이 유해들은 지난 2007년 차고 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됐습니다. 깊이 약 1m, 너비 약 2.1m 구덩이에서 41구의 유해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2차대전이나 인종청소가 벌어진 1990년대 발칸반도 내전 때 일어난 집단학살 희생자일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탄환 등 현대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일부 유골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서는 약 6천200년 전 것으로 밝혀지면서 청동기 시대에 일어난 고대 집단학살로 추정돼 왔습니다.


연구팀은 41구의 유해 중 38구에서 게놈 물질을 확보해 유전자 분석을 진행했으며 형태학적 분석도 병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학살 희생자들이 성별로는 남성 21명, 여성 20명이며 연령별로는 2~5세 2명, 6~10세 9명, 11~17세 10명 등으로 17세 이하가 절반을 넘었습니다. 성인은 18~35세 14명, 36~50세 5명 등 19명에다 나이를 특정하기 어려운 1명을 포함해 20명이었습니다.

유전자 분석에서 성인 남성 1명과 그의 두 딸 및 조카 1명을 비롯해 일부가 친족 관계로 밝혀졌지만 학살 희생자의 약 70%는 서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서유럽 수렵·채집인 혈통이 약 9% 섞인 아나톨리아 신석기인을 공통 조상으로 가졌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의 터키인 아나톨리아 지역 신석기인들은 약 8천500년 전에 유럽에 농업을 보급했으며 이후 일부가 발칸반도의 목초지를 옮겨 다니며 유목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토차니 집단학살 희생자 두개골에 난 상처 / 사진=Mario Novak, Institute for Anthropological Research 제공

학살 희생자 중 성인 남성 3명과 여성 4명, 아동 6명은 두개골 측면이나 뒷면에 돌도끼나 몽둥이 등 둔기에 맞아 손상된 부위가 있었으며, 일부 두개골은 최대 네 곳까지 상처가 있어 학살이 광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연구팀은 피해자 중에 여성과 어린이가 포함된 점으로 미뤄 부족 간 싸움 뒤 집단 매장한 것은 아닌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또 희생자의 얼굴 부위와 팔 등에 상처가 없었던 것은 두 손이 묶여 방어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학살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연구팀은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는 집단학살의 동기를 확인할 수 없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부족이나 심각한 인구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고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차별적 집단학살이 현대 사회나 역사시대 뿐만 아니라 선사시대 사회에서도 심각하게 진행됐다"며 "이런 폭력사태가 얼마나 자주 발생했는지 알려면 다른 집단학살 현장의 유해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유전자 분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노박 박사는 한 매체와의 회견에서 포토차니와 같은 고대 집단학살 현장이 말해주는 것은 "인간이 지난 1만년간 변하지 않았으며, 변한 것이 있다면 더 악화한 것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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