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등생 글 잘쓰는 비결은 칭찬…빨간 펜은 글쓰기 두려움만 키워"
입력 2021-03-10 14:40  | 수정 2021-03-10 14:54
이은경 작가

"글을 잘 쓰는 초등학생들의 공통점은 글에 대한 칭찬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긍정적 피드백에 아이들은 '내가 글을 쓰면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썼는데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렸다고 빨간 펜으로 지적만 받는다면 아이들은 글쓰기를 점점 두려워할 뿐입니다."
최근 초등학생 글쓰기 교육에 관한 책 '초등 매일 글쓰기의 힘'을 출간한 이은경 작가(40)는 칭찬의 중요성을 이같이 강조했다. 이 작가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없애준다면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은 저절로 는다"며 "초등 시기엔 '잘 쓴 글'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겁 없는 글쓰기'를 목표로 아이들을 지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작가는 초등학교에서 15년간 교사로 근무하다 2년여 전 퇴직하고 현재 초등교육 분야 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이은경TV'를 운영하면서 △새 학년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해주면 좋은 말 △새 학년 공부량을 늘리는 방법 △아이의 글씨체를 개선하는 습관 △글쓰기 공책 선택 기준 등등 깨알 같은 정보를 초등 학부모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 작가에겐 아들이 둘 있다. 올해 각각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이 됐다. 이 작가의 조언은 15년간의 교직생활과 두 아이의 엄마로서 고민하고 깨달은 결과물이다. 그는 "아이를 잘 키우고는 싶지만 경험이나 정보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학부모들을 돕는 일을 제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은경 작가
―초등 글쓰기가 모든 공부의 핵심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글쓰기를 통해 생각하는 근육을 키울 수 있다. 초등 시기에 사고력이 두꺼워지면 똑같은 내용을 배워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진다. 아이가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하지만, 공부 시간과 공부 분량이 비례하지 못하는 이유는 집중력 문제뿐 아니라 얼마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였느냐에 달려 있다. 초등 시기는 중·고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학습할 때를 대비해 공부 내용을 스펀지처럼 잘 흡수할 수 있는, 생각하는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놓는 게 핵심이다. 중학교·고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학습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선 초등 시기의 읽기·쓰기 공부가 중요하다. 읽기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쓰기의 중요성은 쉽게 간과한다.
―교사로 15년간 근무하면서 초등 글쓰기의 중요성을 언제 체감했나.
▷교직에서 경험했던 것 중 학부모님들께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하나 소개해드리고 싶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 만난 아이들을 6학년 때 또 가르치게 된 적이 있다. 읽기·쓰기 기반의 공부를 하던 아이들과 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하던 아이들은 고학년이 됐을 때 확연히 달랐다.
1학년 때 두각을 보인 아이들은 '예습'을 많이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1~2학년 과정의 문제집으로 다 풀고 들어온다. 학부모가 아이의 학습 지도를 열심히 하긴 했는데, 문제풀이 위주로 방향 설정을 잘못한 것이다. 5~6살부터 학습지를 풀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에서 처음 단원평가를 보면 문제를 많이 풀어본 아이들은 100점을 받는다.

반대로, 문제풀이 경험은 없지만 틈만 나면 책 읽고 글 쓰던 아이들의 경우 저학년 성적은 그저 그렇다. 고학년 때 다시 보니 생각의 깊이와 글쓰기 자체가 달라져 있었고, 공부에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학교 공부라는 게 읽기·쓰기를 기반으로 한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읽고 쓰고 난리다. 6학년에 올라가면 더 심해진다. 현재 영상기반의 온라인 수업도 결국 아이들에게 그 영상을 보고 자기가 배운 것과 느낀 점을 다 쓰라고 한다. 이걸 촬영해서 제출하게 하는 게 지금의 온라인 수업이다. 읽기·쓰기가 자유롭고 편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신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툭하면 읽으라고 하고, 툭하면 쓰라고 한다.
초등 시기에 중요한 건 성적에 관한 격차가 아니다. 공부에 대해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 학습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이게 중요하다. 괜히 문제풀이로 힘 빼고, 성적으로 안달할 일이 아니다. 아이가 학습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학부모가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이 시간에 문제풀이보다는 책을 더 읽게 하고, 아이와 많이 대화하면서 아이가 말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끔 하는 게 좋다.
초등 시기 공부의 핵심은 아이가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나는 공부 좀 잘하는 것 같아. 재밌어, 나쁘지 않아. 공부하기는 싫은데 막상 하면 재미있을 때도 있어.' 읽기·쓰기가 편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영상에 익숙하다. 글쓰기는커녕 독서 습관을 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책이 재미없고 싫다는 아이들도 독서 습관을 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초등학생 아이들이 책에 대해 가져야 할 감정은 딱 한 가지다. '책은 재밌지 않지만, 어떤 책의 경우는 책도 재밌더라' 하는 태도다. 이런 경험이 한 번은 있어야 한다. 모든 책이 재밌을 수는 없다. 어른들도 책보다는 넷플릭스가 더 재밌고, 유튜브가 더 재밌다. 아이들에게 책을 좋아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보다 더 재밌는 것들을 제한하지 않고 언제나 볼 수 있는 환경이라면, 아이들이 책을 집어들 이유가 전혀 없다.
책을 펼치게끔 하는 환경 설정이 중요하다. 가족의 원칙은 부모님이 세워줄 수 있다. 항상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고, 언제든지 스마트폰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아이들은 절대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스마트폰 사용, 텔레비전 시청, 게임 등에 관한 가족만의 규칙이 있으면 좋겠다.
규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아이와의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예전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갑자기 제한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아이들은 불만을 가진다. 부모들이 아이와의 갈등이 싫어서 그냥 내버려둔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서 사교육을 해도 비용·시간과 비례하는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규칙을 정할 때는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 스마트폰을 왜 많이 보면 안 좋은지, 유튜브를 왜 하루 종일 보면 안 되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정리하면,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게 일차적 목표다. '책도 재밌을 수 있다. 어떤 책은 재미없지만, 어떤 책은 정말 재밌다. 나는 이 책이 재밌다. 우리 집은 저녁 7~8시에만 텔레비전을 볼 수 있고, 유튜브를 볼 수 있다. 남는 시간엔 심심하니까 책이라도 읽어야지.'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못 하고 텔레비전·유튜브도 못 보는 시간에 그 책을 보게 된다. 환경 설정을 통해 아이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엔 불만 갖고 부모와 갈등을 빚지만, 신기하게도 부모가 1~2주 일관된 태도를 유도하면 응당 그래야 하는 줄 안다.
―글 잘 쓰는 초등학생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공통점은 글을 썼는데 '칭찬'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글을 쓰고 나면 '지적'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두려움이 큰 아이들의 최대 공통점은 늘 글을 쓰고 나면 지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애들은 엄마·아빠나 선생님이 글을 쓰라고 하니까 쓴다. 책 보고 쓰고, 일기에 자신의 느낌을 쓰고, 그림일기도 쓴다.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기껏 썼지만, 어른의 눈으로 보기엔 정말 못 썼다. 부모들은 공감할 것이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니네?'라는 생각까지 든다. 어른들 눈엔 지적할 게 너무나 많이 보인다. 글씨체도 마음에 안 들고, 맞춤법·띄어쓰기 맞는 게 없다. 내용은 당연히 안 좋다.
그러나 아이가 엉망인 글을 썼더라도 칭찬을 받아보고, 긍정적 피드백을 받으면 '내가 글을 쓰면 이런 반응을 받는구나. 이런 칭찬 들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이걸 경험하면 또 다시 글을 쓰는 데 겁이 나지 않는다.
반대로 열심히 썼는데 지적만 받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겠나.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글쓰기는 너무 힘든 일이다. 더구나 아이들은 컴퓨터 키보드도 없이 손으로 쓴다. 어른들은 아이가 "손 아프다"고 해도 믿어주지도 않는다. 핑계 댄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 조금 쓰고 무슨 손이 아프냐는 것이다. 어른들이 이런 수고는 하나도 알아주지 않고, 글 썼더니 지적이나 한다면 아이들은 글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을 수가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긍정적 피드백을 받아본 아이들은 글쓰기에 대한 겁이 없다. 저절로 글쓰기 습관도 형성된다. 글쓰기가 힘들지 않으니까 쓰는 분량도 늘어난다. 분량이 늘어나고 나면 공책 한 쪽을 채우는 건 별로 힘든 일도 아니게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저절로 글의 내용이 정리되고, 논리가 들어간다. 이 단계에 오기까지 '칭찬'이 참 중요하다.
―직접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던 당시 시행착오는 무엇이었나.
▷일기를 검사할 때 선생님들이 빨간 볼펜을 사용한다. 담임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사실 한 명 한 명의 일기장을 검사하는 일이 정말 힘들다. 쌓아놓고 한숨 쉬는 경우도 있다. 마음의 짐인 셈이다.
더 힘들었던 건 빨간 펜으로 열심히 고쳐줘도 애들의 글쓰기가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껏 시간을 들여 띄어쓰기도 봐주고, 맞춤법도 봐주고,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풍부하게 써보라고 코멘트도 남겨주는데 정작 아이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지적'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지적을 통해 달라지는 경우는 한 반에 1~2명 있을까 말까 한다. 굉장히 긍정적인 성정을 지닌 아이들만 달라진다.
아이들은 일기장을 돌려받으면 선생님이 뭐라고 썼는지, 어디에 어떤 표시를 했는지 궁금해 하며 자신의 일기장을 펼친다. 부끄러워서 구석으로 가지고 가서 확인하는 애들도 있다. 그때 일기장을 열어보는 아이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빨간 펜으로 일일이 고쳐주고, 코멘트를 남겨줬음에도 이걸 읽는 아이들의 표정은 안 좋았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방법을 바꿨다. 틀린 것, 부족한 것을 지적하기보다는 일기장 한 쪽에서 가장 좋은 문장을 찾아서 밑줄을 쳐주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는 게 잘 쓰는 거였구나.' '이렇게 쓰니 밑줄을 쳐주시는구나.
애들은 귀엽다. 어른들이 보기엔 별것 아니지만, 밑줄 하나에도 너무 좋아한다. 이렇게 밑줄을 한 번 쳐줬던 문장을 보고, 어느 날엔 아이들이 잘된 문장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물론, 밑줄 칠 게 너무 없는 날도 있다. 그때는 이렇게 했다. 만약 어떤 아이가 놀이공원을 다녀온 일기를 썼는데 내용이 너무 담백하게 써서 도저히 밑줄 칠 게 없다면, 제가 놀이공원에 갔을 때 겪었던 일을 한 문장 적어줬다. 따라해 보라는 의미로 한 문장 남긴 것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 문장과 선생님의 문장이 어떻게 다른지 직접 느끼게 했다.
―첫 문장에서 막히는 아이, 모든 문장의 시작을 '나는'으로밖에 쓸 줄 모르는 아이, 일기를 써도 무엇에 관해 쓸지조차 망설이는 아이... 초등학생들이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다양하다. 아이의 글쓰기를 봐주려는 학부모들에겐 어떤 조언을 해주겠는가.
▷학부모들이 전제조건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못 써도 된다'는 것이다. 글은 쓰면서 는다. 글쓰기 실력은 글을 쓰는 것으로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더 좋은 문장을 쓰게 하는 게 아니다. 못 써도 괜찮으니 그저 글을 쓰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아이들이 쓴 글을 볼 때 내용은 신경 쓰지 않으면 좋겠다. 매일 쓰다보면 내용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본인의 글을 다시 읽어보고, 학교에선 친구들이 쓴 글도 본다. '잘 쓰는 글이 저런 글이구나'라고 차차 알아갈 수밖에 없다. '잘 쓰는 글'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겁 없는 글쓰기'를 목표로 하면 좋겠다. 어떤 주제로 시작해도 한 페이지를 뚝딱 써낼 수 있게 하는 것. 이걸 초등학교 시기의 목표로 잡으면 좋겠다.
―자녀에게 독서·글쓰기를 가르쳐주고픈 학부모들의 흔한 실수는 무엇인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 읽고, 글 쓰도록 유도하면 되는데 부모들은 "책 읽어라" "글 써라" 명령한다. 부모는 분위기만 조성해주면 된다.
아이들은 적극적인 보상을 좋아한다. 열심히 글을 썼는데 부모가 "두고 가~"라고 하면 아이들로서는 충족이 안 된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면, 일주일 중 3일간 일기를 쓰면 주말에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보자고 하는 것이다. 단기든, 장기든 보상을 정하고 그걸 달성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작은 성공'을 지속하는 것이다.
또 부모들의 가장 큰 실수가 아이들에게 잘하라고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못 쓰고 싶어서 못 쓰는 게 아니다. 자꾸 잘하라고 강요하다보면 아이들이 귀를 닫아버릴 수 있다.
그리고 학원부터 보내는 실수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 글쓰기 습관은 집에서 먼저 형성해야 한다. 글쓰기에 자신감을 붙여줘야 한다. 겁 없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습관을 만들어주고 나면 논리나 분량은 저절로 따라온다. 글쓰기 학원에 보내기 전에 집에서 아이들이 글 쓰는 근육을 단련시켜줘야 한다. 집에서 글쓰기를 시켜보다 안 되면 학원부터 보내고 보는데, 읽기와 쓰기 이 두 가지는 가정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읽고 쓰는 습관이 제대로 든 아이들은 학습단계상 발전이 빠르다. 부족하나마 매일 글을 쓸 수 있게 유도해주는 게 첫 단계다.
―그래도 글쓰기 학원에 보내는 게 효과적이지 않겠나.
▷물론 학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업이 많다. 문제는 아이들이 글쓰기 학원만 다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영어학원, 수학학원을 기본으로 다니고 있다. 여기에 글쓰기 학원이 추가되면 아이들 입장에서도, 학부모 입장에서도 부담이 된다. 자칫하면 역효과가 크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체력도 한계가 있다.
늦게까지 학원 다니고 숙제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다. 초등학생들이 4학년만 되면 아이들끼리 서로 학원 개수를 물어본다. "너 오늘 학원 몇 개야?" 쉬는 시간에 애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만약 영어·수학학원은 안 다니고 글쓰기 학원만 보내는 것이라면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다만 글쓰기를 가르친다고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하진 않으면 좋겠다.
돌봄과 보육의 목적으로 아이들을 낮 시간 동안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너무 많이 이동하진 않으면 좋겠다. 오후에 4시간을 보내기 위해 학원셔틀을 타고 '점프'를 반복하면 아이들도 몸과 마음이 지친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오후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소규모 학원·공부방에 보내되, '오늘의 글쓰기'로 단 3줄만이라도 쓰게끔 아이와 약속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글쓰기 습관을 이어가면 좋겠다.
―초등학생 자녀에게 글쓰기 습관을 들이기 위해선 옆에서 함께하는 부모의 역할이 크다. 그러나 맞벌이하느라 아이를 도와줄 시간이 없는 경우엔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맞벌이 부모라도 방법은 있다. 저도 맞벌이하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 게 늘 미안했다. 담임을 맡았던 반 아이들 중 직장 다니는 학부모들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그중엔 아이의 알림장이나 일기장에 몇 줄의 편지를 써주며 정성스럽게 소통하는 분이 있었다. 아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알림장에 메모를 남긴 것이다. 다음날 아이가 알림장을 열었는데 엄마의 글이 거기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학교에 와서 아이들이 좋아서 자랑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기장에 '우리 아들 정말 자랑스러워'라고 한마디씩 적어주면서 아이와 글로 소통해보기를 추천한다.
―평소에 독서·글쓰기와 거리가 먼 학부모들도 본인의 자녀는 독서·글쓰기를 좋아하길 바란다. 방법이 있는가.
▷저도 넷플릭스를 열심히 본다(웃음). 이런 것들을 보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책 읽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게 의미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 글쓰기는 힘들고, 책읽기도 재미없다. 아이들 불만의 핵심은 '왜 나만'이다. 거실에선 뭔가 재밌는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방에 들어가서 일기를 써오라고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글쓰기의 노예가 된 것처럼 느낀다. 자기 방에 들어가서 엄마를 욕하면서 쓴다.
이런 학부모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바로 오늘부터라도 하나씩 달라지셨으면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아이가 공부 잘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부모라면 당연하다. 저도 욕심 많은 학부모다. 우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많이 읽을 것도 없다. 하루에 10분만 읽어도 좋다. 그러면 아이와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다만 책 읽고 나면 "이거 무슨 내용이었어? 요약해봐"라고 검문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요약하고, 줄거리를 설명해보라고 하고, 그래서 무엇을 느꼈는지 말로 설명하라 하고, 또 독서록까지 쓰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가 기껏 재밌게 책을 읽었더라도 부모가 늘 이렇게 확인하려고 하면 책을 좋아할 수가 있겠는가.
물론 엄마는 늘 궁금하다. 아이가 책을 건성으로 읽은 건 아닌지 불안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검문'할 것까지는 없다.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충분히 내용을 잘 정리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이 필요하다. 일단 책에 관한 가벼운 대화를 이어가보기 바란다. "엄마가 이 책을 읽었는데, 보기보다 재밌어. 주인공이 3명인데, 친구끼리 크게 싸웠더라. 어떻게 됐을지 너무 궁금해." 이렇게 주절주절 떠드는 것이다. 이 책을 왜 샀는지 같은 가벼운 대화도 좋다.
아이는 부모가 했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한다. 처음엔 '엄마가 갑자기 왜 저러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날부터는 아이가 부모가 말한 그 모습 그대로 자기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마법 같은 일이다. 애들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육아는 굉장히 어렵지만, 어떤 원리로 생각하면 정말 쉽다. 아이가 따라줬으면 하는 모습으로 부모가 지내면 된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어떤 수업에 넣어줄지, 어떤 문제집을 사줄지 고민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초등 시기엔 급한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읽고 쓰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그 시간에 학부모들도 같은 습관을 가져보면 어떨까.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
―초등학생에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해 글쓰기를 가르치는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은?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남자 아이인 경우 전자기기를 통해 글쓰기에 접근하는 것을 재밌어 한다. 실제 초등학교에서도 컴퓨터 활용 시간이 있는데, 이때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해 컴퓨터로 글쓰기를 경험하게 한다. 집에서도 시도해볼 만하다.
재미를 붙이고 나면 컴퓨터로만 쓰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피해야 한다. 현재 초1 아이들이 아무리 디지털 세대라고 하더라도, 지금 초·중·고교 공부는 다 종이책과 종이공책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 종이에 적힌 문제를 읽고, 종이에 직접 써야 하는 평가 체계를 염두에 둔다면 종이와 연필을 활용한 글쓰기 교육은 여전히 중요하다. 지금 학교에서의 평가는 스마트기기로 다 이뤄지지 않는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글쓰기를 시키는 동안에도 종이에 글 쓰는 활동은 병행해야 한다. 아이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경우에도 종이 글쓰기는 같이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초등학생들이 가정 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자녀와 이 시기를 보다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린다.
▷핀란드는 너무 추워서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가족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정말 많다고 한다.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잘 살린 케이스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들이 어쩔 수 없이 집에 갇히고, 싫으나 좋으나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대화의 시간을 늘리면 좋겠다. 엄마들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 아이가 공부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 아닌가. 그 열쇠는 대화에 있다.
초등학교 3~4학년만 돼도 벌써 사춘기에 접어든다. 사춘기가 된 아이와 대화가 막히기 시작하면 아무리 좋은 수업을 가져와도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 '엄마는 어차피 내 마음과 생각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
어른인 부모가 아이와 취향이 일치해서 항상 기쁘고 즐거울 수는 없다. 그래도 맞춰줄 수는 있다. 아이의 생각·취향·대화 등에 관심이 있고, 아이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이야기할 때 들어줄 수 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코로나19 이전에 함께 보낸 시간은 적고, 눈만 뜨면 학원을 돌아다니느라 바쁘던 시절엔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됐으니 대화를 통해서 책 읽는 습관도, 글쓰기 습관도 잡을 수 있다.
이런 시도를 해보겠다고 문제집 사러, 공책 사러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잠시 멈춰주시기 바란다. 그 모든 것보다 우선할 일은 오늘부터 아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글쓰기도 맨날 한다면 당연히 좋겠다. 그런데 아이 입장에선 얼마나 힘들겠는가. 시작하는 단계에선 일주일에 한 번만 써도 "잘했다. 잘했다" 칭찬해 줘야 한다. 이를 유지하다보면 일주일에 2번도 쓰고, 안 힘들면 3번도 쓰게 된다. 긴 호흡으로 보고 차근차근 갔으면 좋겠다.
초등 매일 글쓰기의 힘 (이은경 지음, 상상아카데미 펴냄)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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