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헌재 "사실 얘기해도 명예훼손 처벌받아"…첫 합헌 결정
입력 2021-02-25 16:22  | 수정 2021-03-04 17:05


헌법재판소는 오늘(25일)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307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헌재는 이날 오후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선고기일에서 청구인들이 "형법 제307조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청구를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기각하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헌재가 '사실적시 명예훼손' 법률이 합헌이라고 선언한 최초의 판결입니다.

앞서 청구인 이 모 씨는 지난 2017년 자신의 반려견을 진료했던 수의사가 불필요한 수술을 하고 실명 위기까지 초래했다고 생각해 수의사의 실명과 진료행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형사처벌하라'고 규정한 형법 제307호 제1항으로 인해 가로막히자 같은 해 10월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또다른 청구인 김 모 씨도 지난 2016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부산지방법원에서 5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자 지난 2018년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헌재는 청구인들이 심판의 대상으로 제기한 형법 제307조 제1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선고하며 "오늘날 사실 적시 매체가 매우 다양해짐에 따라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 속도와 파급 효과는 광범위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조항이 "개인의 명예, 즉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이러한 금지 의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명예훼손적 표현행위에 대해 상당한 억지효과를 가질 것이므로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어 "명예는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므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우열은 쉽게 단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외국의 입법례와 달리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이나 위하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헌재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이러한 형법 제310조의 적용범위를 넓게 해석함으로써 심판대상조항(제307조)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며 합헌 결정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형법 제310조는 '심판대상조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입니다. 헌재는 "(오히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전부 위헌으로 결정하면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이나 성적지향, 가정사 등이 침해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반면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일부 위헌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유 재판관 등은 해당 조항의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하며 헌법이 명예훼손의 구제수단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명시할 뿐 형사처벌까지 예정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적시된 사실이 진실인 경우'에는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개인의 명예보다 진실한 사실에 관한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둘 필요성이 있다"며 "'적시된 사실이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것이 아닌 경우'에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개인의 명예보다 진실한 사실에 관한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일부 위헌' 의견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헌재 관계자는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사유와 그에 대한 헌법재판소·대법원의 해석을 통해 명예훼손죄가 공적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음을 고려해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음을 선언한 최초의 결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백길종 디지털뉴스부 기자 / 100road@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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