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떠나는 베이조스.."아마존 넘어 우주서 만납시다"
입력 2021-02-24 12:08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 2019년 워싱턴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57)는 지난 2일 깜짝 발표를 했다. 올 3분기 CEO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다. 1994년 7월 미국 시애틀 인근의 집 차고에서 아마존을 세운 지 27년만이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대신 아마존 이사회 의장직을 맡으며 중장기 사업 전략이나 신생 사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국내 번역 출간된 '제프 베조스, 발명과 방황'(위즈덤하우스)은 퇴임 이후 베이조스가 전념할 일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베이조스가 지난 30여년간 강연과 인터뷰, 주주서한에서 밝힌 내용을 엮은 것으로 직접 쓴 유일한 책이다. 스티브 잡스 전기로 유명한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다빈치, 아인슈타인, 잡스 같은 혁신가가 요즘 누구인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제프 베이조스"라고 단언한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지난 2019년 6월 한 컨벤션에 참석해 우주 개발에 대한 비전을 밝히고 있다.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유는 책 제목 '발명과 방황'에 응축돼 있다. 어린시절부터 제2의 에디슨을 꿈꾸는 발명가였던 그는 직원들에게 퇴임 계획을 밝히는 서한에서도 "끊임없이 발명하세요. 아이디어가 처음에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절망하지 마세요. 방황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라고 당부했다.
[사진 = 연합뉴스]
우주는 그의 발명 DNA의 뿌리이자 종착지다. 1969년 다섯 살 때 그는 아폴로 11호 달 착륙을 TV로 시청하고 있었다. 거실에서 TV를 보던 부모는 흥분하고 있었다.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꼈죠. 그것이 제 열정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우주에 대한 흥분은 그 뒤로도 식지 않았다. '스타트렉' 전편을 섭렵한 그는 고등학교 졸업생 대표가 돼 연설하던 와중에도 우주에 대한 야심을 내비쳤다. 지구와 다른 행성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주 호텔을 지으며, 제조업을 옮길 다른 장소를 물색해서 우리의 연약한 행성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이런 말로 끝맺었다. "우주, 그 마지막 개척지에서 만납시다."
제프 베이조스가 직접 쓴 책.
2000년 그가 은밀하게 세운 우주개발업체 '블루오리진'은 고등학생 때 꾸었던 꿈을 하나씩 실현시키고 있다. 2019년 5월 달착륙선 블루문 공개 행사에서 베이조스는 "블루 오리진은 제가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저는 이 일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주에 대한 열정이 계속 커질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는 지구가 파괴돼 대체지를 찾아야 한다는 '플랜B'가 아니라 유한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주자원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주관광용 로켓 '뉴셰퍼드'의 재활용 횟수를 늘려 접근 비용을 낮추는 것이 관건이다.
책은 괴짜 베이조스의 찬란한 기록만 적지 않고 있다. 프린스턴대에서 전 과목 A학점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던 그는 편미분방정식 문제를 풀지 못해 끙끙댔는데 스리랑카 출신 친구가 간단하게 답을 찾아내자 곧바로 물리학자의 길을 접고 컴퓨터공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없다면 최고가 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처럼 베이조스 역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17세 고등학생 때 그를 임신해 퇴학 위기까지 갔다. 베이조스 성도 어머니가 재혼한 쿠바 망명자 출신의 양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런 그가 세계 최고 부자가 된 데는 '고객에 집착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 시각'이라는 일관된 경영철학 덕분이라는 평가다. 2000년 닷컴 버블이 터지며 아마존 주가는 주당 6달러로 떨어졌다. 그해 베이조스의 주주서한은 '어이쿠(Ouch)'로 시작된다. 하지만 현재 아마존 주가는 3000달러가 넘었으며 시가총액도 1조6000억달러에 달한다. 이혼 후에도 그의 보유 지분은 11%에 달한다.
그는 "결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칭호에 욕심을 내본적이 없다"며 "그보다는 발명가, 기업가로 알려지는 편이 훨씬 마음에 든다"고 고백했다. 질 좋은 소수의 결정을 위해 8시간 수면을 지키고, 오전 10시가 돼서야 첫 회의를 연다는 루틴도 눈길을 끈다.
[이향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