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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산실 합숙소, 프로스포츠에 왜 필요하나?
입력 2021-02-18 10:52  | 수정 2021-02-18 16:36
배구는 남녀, 아마추어/프로를 불문하고 아직도 합숙 문화가 남아있는 스포츠다. 사진=MK스포츠DB
매경닷컴 MK스포츠 박찬형 기자
인기 프로배구선수가 상습적인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과거가 밝혀져 큰 충격파를 던졌다. 그러나 스타 플레이어가 그랬다는 화제성이 스포츠 인권, 나아가 한국 체육계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는 '합숙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리고 있어 우려된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중 아직도 합숙소 생활을 하고 있는 종목은 남녀배구와 여자농구다. 프로야구는 출범 때부터 출퇴근을 하고 있으며, 프로축구와 남자프로농구도 차례로 합숙소를 없앴다.
잊을만하면 드러나는 스포츠계 폭력, 체벌, 성추행 등 인권 유린은 대부분 합숙 현장에서 이뤄지거나 시작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학교 폭력 폭로가 잇따르는 배구는 남/여, 아마추어/프로를 불문하고 여전히 합숙 문화가 유지 중이다. 가해자 중 일부는 프로 데뷔 후에도 숙소에서 잡음을 일으켰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함께 먹고 자며 팀워크를 높인다는 표면적인 목적 이면에는 ‘요즘은 군대도 안 그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도자가 선수, 선배가 후배를, 심지어 또래끼리도 주전이 비주전에게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인권 유린이 자행된다.
합숙은 선수를 일상과 격리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부모, 가족, 친구와 떨어져 지도자·팀원하고만 생활하다 보니 숙소에서 인권 유린을 당해도 은폐되거나 즉각적인 대처가 어렵다.
지난해 한 프로배구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후에야 생전 우울증, 수면장애 등 정신적인 문제를 호소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것도 폐쇄적인 합숙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선수단 내 갈등, 계약 문제 등 삶을 포기한 이유 역시 고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외부에 알려졌다.
지금도 지도자들은 개개인 기량을 극대화하고 조직력을 키우기 위해 학교 운동부 합숙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구시대적 발상이 국내 프로스포츠에도 남아있는 것이다. 프로선수가 되면 ‘공인으로 여겨질 정도로 많은 관심과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르지만, 아직도 합숙 문화가 남아있는 배구와 여자농구 등 일부 프로스포츠 선수의 사회성은 학창 시절과 다를 것이 없다.

즐기는 팬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프로스포츠는 태생적으로 사회 공헌에 대한 책임이 요구된다. 그러나 외부와 격리된 채 살아가는 일부 종목 선수들은 연고지 지역사회와 자발적인 교류가 어렵다.
한국은 2010년부터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work-life balance) 등 일과 일상의 균형이 강조되고 있다. 이제 프로스포츠도 365일 운동에 매진해야 개인·팀 성적이 향상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배구·여자농구 선수들을 합숙에서 해방해줄 때가 됐다. 개인 생활도 할 수 없는 종목과 선수를 어떻게 프로스포츠라 할 수 있을까.
경기 및 훈련 시간 외에도 동료, 선배, 지도자와 함께 있다 보면 없는 스트레스도 생길 수밖에 없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합숙을 폐지하면 아마추어 종목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
언제까지 스포츠선수들이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니 새롭게 보이는 것이 정말 많더라는 말을 해야 할까. 합숙 폐지는 은퇴 후 사회적응 부담도 덜어줄 수 있다. chanyu2@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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