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은 "전금법 개정안, 가정폭력 예방 위해 각 가정에 CCTV 설치하는 셈"
입력 2021-02-17 14:52  | 수정 2021-02-24 15:08

한국은행이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에 거듭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한은은 전금법 개정안이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빅브라더법(정보를 독점하고 이를 이용해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또는 사회체계)'이라며, 개인정보 보호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관련 조항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금법 개정안은 네이버·카카오·토스 등 빅테크 업체의 모든 거래정보를 금융결제원(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에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면서도 개인정보보호 3법의 적용을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정보 남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한은은 17일 '전금법 개정안의 빅브라더 이슈에 대한 입장'을 내고 "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금융위가 사실상 금융결제원을 통해 네이버와 같은 빅테크 업체들의 모든 거래정보를 별다른 제한 없이 수집하게 된다며 명백한 빅브라더법"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빅테크 업체들의 거래정보 수집의 이유로 이용자 보호와 거래 투명화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한은은 "이는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모든 가정에 CCTV를 설치해 놓고 지켜보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특정 기관이 개인의 거래정보를 과도하게 취득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제3조에 따른 '필요 최소한의 수집 원칙'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이 의견은 한은이 국내 법무법인 2곳에 해당 사안에 대한 법률 검토를 받은 답변이다.
한은은 또, 헌법 제17조 및 제10조에 근거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도 침해한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한은 관계자는 "중국인민은행을 통해 확인한 결과 중국 정부도 빅테크 업체의 내부거래를 들여다 보지는 않는 것으로 확인됐고, 세계 어느 정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전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빅테크 업체들은 고객의 모든 거래정보를 금융결제원에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수익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내는 조항도 담겼다. 그러면서도 개정안은 빅테크 업체들의 이런 정보 제공에 대해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률의 적용을 면제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전금법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금융위는 금융결제원에 수집된 빅테크 업체들의 거래정보에 대해 별다른 제한없이 접근할 수 있다. 금융위는 금융결제원에 대해 허가권은 물론 감시·감독·규제 권한을 갖게 되며 자료 제출을 명령하거나 직접 검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도 전금법 개정안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양기진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4일 '2021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금융정보학회 세미나' 발표자료를 통해 "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자지급거래 관련 개인정보가 관련 법들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무제한 집중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네이버페이포인트를 이용해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경우 네이버는 모든 거래정보를 고객의 개인정보 제공·활용 동의도 없이 금융결제원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목적외 이용·제공 제한도 받지 않게 된다.
양 교수는 "청산기관(금융결제원)에 과도하게 개인정보가 쏠리게 되고 이 데이터베이스를 누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정보 남용 우려도 크다"며 "빅브라더 논란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거래정보를 집중시키면 해킹에도 취약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한은 관계자는 "지급결제시스템은 경제주체들의 채권이나 채무 관계를 해소함으로써 원활한 경제활동을 뒷받침해주는 금융시스템의 근간이며, 무엇보다 안전성이 중요하다"며 "이 때문에 대부분 국가에서 독점적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운영해 관리하고 있는 만큼 중앙은행 지급결제망을 빅브라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전금법 개정안에 빅브라더 관련 조항 삭제를 촉구했다.
[전종헌 매경닷컴 기자 cap@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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