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워런 버핏 '비밀 투자 종목' 공개…금 관련 주식은 전부 매도
입력 2021-02-17 11:20  | 수정 2021-02-18 13:38

'오마하의 현인'으로 통하는 가치 투자자 워런 버핏(90)의 투자 종목이 공개됐다. 게임스톱과 이항테크놀로지로 대표되는 단기 투자 쏠림의 시대,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테퍼 애팔루사매니지먼트 회장은 에너지 유틸리티와 제약·헬스케어 주식을 사들였다.
16일(현지시간)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신고를 통해 지난 해 4분기(10~12월) 비밀 투자 총 3개 종목을 공개했다. 금액 상으로는 5G시대(차세대 통신 네트워크)를 준비하는 '미국 대형 통신사' 버라이즌 주식 총 86억달러(약 9조5322억원·1억4670만주), 친환경 시대 이행을 선언한 '석유 공룡' 셰브론 주식 총 41억달러(4800만주)어치를 추가 매수했다. 이밖에 보험가입 열풍 '보험중개업체' 마시앤드맥클레넌 주식 총 4억9900만 달러 어치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버크셔같은 대형 기관투자자와 공공 연기금 등은 특정 기업 지분 5% 미만을 보유하는 경우 공시 의무를 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난 해 말 버크셔가 110억 달러 어치 이상을 공시하지 않고 투자하던 당시 해당 종목이 테슬라인 것 아니냐는 시장 추측이 나온 바 있다.
한편 버크셔는 "은행은 큰 사고를 치지 않아 안전하다"는 이유로 버핏 회장이 선호해온 은행 주식을 줄줄이 매도했다. 대표적으로 월가 대형 투자은행 JP모건을 비롯해 기타 PNC파이낸셜과 M&T뱅크 주식을 전량 매도했고, 웰스파고 보유 주식도 60%를 내다 팔았다. 다만 버크셔는 지난해 골드만삭스 등 은행주를 꾸준히 팔아왔다.
금 채굴업체로 유명한 배릭골드 지분도 전부 매도했다. 버핏 회장은 금·은 등 귀금속 투자를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지난해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 탓에 금 값이 사상 처음으로 1트로이온스당 2000달러를 넘는 등 고공행진하자 배릭골드 주식을 사들여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버크셔는 제약업체 지분 늘리기에 나섰다. 당뇨 등 만성 질환 전문 제약업체인 머크와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 류마티스 등 난치성 질환 전문 제약업체인 애브비 주식을 매수한 반면 '코로나19 백신 개발사' 화이자 주식은 전부 내다 팔았다.
다만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의 투자가 정답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지난 해 이후 월가에서는 부쩍 '버핏의 시대가 한 물 갔다'는 평이 나온다.

버크셔가 정확히 어느 시점에 매매에 나섰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난 4분기 이후부터 이달 16일 현재 관련 종목 주가 수익률을 보면, 버크셔가 판 종목 주가가 오히려 오르고 사들인 종목 주가는 떨어진 경우가 눈에 띈다. 일례로 버크셔가 보유 주식 수를 줄인 미국 대표 자동차 제조업체 제네럴모터스(GM) 주식은 지난 해 9월 30일 이후 현재까지 주가가 80.66% 뛰었다. 주식을 전부 내다 판 JP모건 주가도 같은 기간 50.25% 오른 상태다.
반면 버크셔가 주식을 추가로 사들인 버라이즌은 주가가 8.97% 떨어졌고 머크도 10.48% 하락했다. 애브비(18.96%)와 셰브런(29.34%)은 시세가 올랐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보는 사람마다 엇갈릴 수 있다. 버크셔의 비밀투자가 공개된 날인 16일 뉴욕증시에서 버크셔 B주는 직전 거래일보다 1.15%올라 1주당 245.2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월가의 '투자 구루' 하워드 막스(74) 오크트리 캐피탈 매니지먼트 공동 창업자는 지난 달 "버핏 식 가치투자의 시대는 갔다"고 선언해 시장 눈길을 끈 바 있다. 막스는 투자 메모를 통해 "워런 버핏과 (그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이 가치 투자자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과 지금처럼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혁신의 시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가치 투자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면서 "시장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무한대로 확장 중이고 투자자들은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평가된 가치주'를 찾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투자의 귀재 뿐 아니라 '오마하(버크셔 본사 소재지)의 현인'으로 불려온 버핏 회장은 성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기업 주식을 까다롭게 선별해 사들인 후 좀처럼 팔지 않고 장기 보유하는 보수적인 투자방식, 즉 '가치 투자'로 유명한데 이 방식이 요즘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부실 채권 투자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막스의 투자 메모는 버핏 회장도 일부러 챙겨읽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막스는 "더이상 성장주와 가치주 구분이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면서 "요즘 들어 성장주 주가가 많이 올랐으니 가치주에 투자하면 어떨 지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하지만 내 생각에는 성장주와 가치주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적었다. 가치주란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싼 주식을 말한다. 성장주는 회사의 현재 실적이 아닌 미래 성장 가능성을 반영해 당장의 기업 가치 대비 주가가 더 비싼 주식을 뜻한다.
한때 '리틀 버핏'으로 불리던 퍼싱스퀘어캐피털의 빌 애크먼(54) 회장도 지난 해 5월 투자자들과의 전화 회의를 통해 회사가 1년 정도 보유해온 버크셔 주식(퍼싱스퀘어 보유 주식 비중 10%에 해당)을 내다 팔았다고 밝힌 바 있다. 버크셔 주식 매도 배경에 대해 퍼싱스퀘어 측은 "버크셔가 자체 보유 현금으로 매력적인 투자처를 찾아 투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버핏 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동안 우리는 다른 곳에 투자해 수익을 내려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시장에서도 코로나19 시대에는 버핏식 보수적 투자보다 애크먼식 유연한 투자가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헤지펀드인 퍼싱스퀘어의 올해 투자 수익률은 이달 9일까지를 기준으로 5.3%다.
유연한 투자가 더 시대에 맞는다고 해서 최근 부쩍 유행하는 '모멘텀 투자'(강세인 종목을 집중 매수하는 투자 쏠림에 가세해 추가 상승을 이끌어내는 투자법)가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기업 실적·미래 경영 전략 등 펀더멘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미국 비디오게임업체 게임스톱이나 중국 드론 업체 이항테크놀로지 처럼 하루 새 주가가 폭락해 손실을 볼 수 있다.
16일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에서 이항테크놀로즈(EH)은 하루 새 주가가 62.69% 폭락해 1주당 46.30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6배 뛴 이 회사 주식은 '서학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최근 매수인기를 끌면서 2월 1~16일 기준 매수결제 6위(총 1억9238만달러)에 올라선 종목이다. 다만 이날 울프팩리서치가 '추락으로 향하는 이항의 주가폭등'이라는 제목의 33쪽 짜리 공매도 보고서를 내면서 드론 택시 사업을 주력으로 내건 이항이 거액의 가짜 계약을 맺었을 뿐 아니라 제품 생산을 위한 기본 조립라인도 없다고 폭로해 주가가 폭락했다. 울프팩리서치는 '중국판 넷플릭스' 아이치이의 매출 부풀리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미국 대형 온라인커뮤니티 레딧을 중심으로 뭉친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언했던 게임스톱(GME)도 16일 하루새 주가가 5.51% 떨어져 1주당 49.5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공매도와의 전쟁으로 사상 최고가를 달린 지난 달 27일(347.51달러) 대비 86% 떨어졌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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