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명품백 대신 미술품 사는 2030…어떤 그림 샀을까
입력 2021-02-17 10:14  | 수정 2021-02-17 13:38
서울 한남동 갤러리조은에서 작은 그림을 감상하는 젊은 컬렉터들. [한주형 기자]

서울 한남동 갤러리조은 기획전 '소품락희(小品樂喜)'에서 젊은 남녀가 작은 그림들을 꼼꼼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물방울 화백 김창열, 한지 설치 작가 전광영, 숫자 낙서 그림으로 유명한 오세열, 색띠 작가 하태임 등 인기 작가들이 드물게 내놓은 3호~40호 소품(小品·작은 그림)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100호 이상 그림 가격은 수천만~수억원대이지만 소품은 수백만~수천만원대에 팔린다. 이번 전시에는 30만원대 신진 작가의 소품부터 4000만원대 김창열 10호 물방울 그림까지 다양한 가격대 작품 100여점이 나왔다.
풍경화 기준으로 1호 사이즈는 세로 22.7cm, 가로 14㎝로 엽서 크다. 작품 크기가 작아지면 상대적으로 그림 가격도 내려간다. 하지만 작가의 예술 세계를 압축한 소품은 정교한 붓질과 세밀한 구성이 필요해 대작 못지 않은 공력이 들어간다.
미술계 신흥 컬렉터로 부상한 20~40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초부터 2000년대초 사이에 출생한 세대)가 수백만원대 소품을 주로 구입해간다. 그림을 사서 집에 걸고 싶지만 수천만원을 넘기는 대작은 아직 부담스러운 소비층이다. 대부분 평범한 직장인들로 월급을 모아 명품 가방 대신 취미에 투자하는 작은 사치(Small Luxury)를 지향한다.
5년째 소품락희를 기획해온 조인숙 갤러리조은 대표는 "2~3년전부터 젊은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20~40대들은 주로 200만~500만원대 그림을 구입하며 인기 작가만 찾지 않고 다양한 취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소장품을 숨기는 기존 큰 손 고객들과는 달리 신흥 젊은 컬렉터들은 그림을 건 집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당당하게 자랑하는게 특징이다. 조 대표는 "주로 거실 쇼파 위 벽이나 복도, 아이들 방에 설치할 미술품을 많이 구입해갔다"며 "주거 공간 설치용이나 선물용으로 따뜻하고 밝은 그림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작가 38명 작품을 26일까지 펼치는 이번 전시에서는 천진난만한 동심이 담긴 오세열 그림, 밝고 경쾌한 패턴이 반복되는 김영리의 추상화, 오브제 작가 유선태의 새로운 시공간 그림, 생기를 불어넣는 하태임의 색띠 그림, 귀여운 동물이 골프를 치는 우국원 작품, 가족과 연인을 동화처럼 그린 문형태 그림이 인기를 끌었다.
서울 한남동 갤러리조은 `소품락희`전에서 작은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젊은 컬렉터들. [한주형 기자]
왼손 드로잉 작가 윤상윤 작품, 변웅필의 독특한 인물화 '한 사람' 연작, 초현실적인 채지민 그림, 볼링장과 하늘색 고양이를 담은 박지혜 작품, 우병출의 풍경화도 잘 팔렸다. 화병 정물과 창밖 너머 풍경을 그린 영국 출신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폰 드로잉 프린트, 이건용의 신체드로잉 소품도 눈길을 끌었다.
미술 시장 피라미드 하부를 든든하고 받치고 있는 20~40대들은 500만원 이하 소품과 판화가 출품되는 온라인 미술품 경매 시장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 1월 서울옥션 온라인경매에서 80만원에 나온 김창열 물방울 판화 작품이 35회 응찰 끝에 시작가 6배인 480만원에 팔렸다. 지난해 코로나19 타격에도 서울옥션의 500만원 이하 미술품의 온라인 경매 낙찰률은 74%(2030점 판매)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반면 500만원 이상 온라인 경매 낙찰률은 26%(700점)에 불과했다.
케이옥션 위클리 온라인경매에서도 지난 1월 민병헌의 '무제'가 경합 끝에 시작가 50만원의 7배가 넘는 36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지난 8일 위클리 온라인경매에선 베트남 국민 작가 부샹파이의 '스틸 라이프'가 시작가 100만원의 5배가 넘는 550만원에 낙찰됐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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