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해자가 없다?' 가습기 살균제 왜 무죄 선고 됐나
입력 2021-02-14 10:48  | 수정 2021-02-14 11:14

지난달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인 SK케미칼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피해자와 환경 관련 시민단체에서 강한 반발이 이어졌을 뿐 아니라 지난달 26일에는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7%가 판결이 불공정하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14일 매일경제는 판결에 대한 비판과 판결문 내용, 각 기관 관계자 의견 등을 검토해 △정부 인정 피해자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 △재판에서 '단독 사용 피해자'로 4명만 검토된 이유 △ 2011년 이후 연구 반영 여부 등을 정리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항소해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윤승은)에서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와 책임자에 무죄가 선고되자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즉각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고 비판했다.
먼저, 검찰이 SK케미칼 관계자 등을 재판에 넘기며 피해자로 인정한 사람은 총 98명이다. 이들 중 94명은 이미 유해성이 인정된 PHMG 성분의 옥시 등 가습기살균제를 함께 사용했다. 재판이 끝난 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증거"라고 했던 피해자 A씨 역시 중복 사용자다.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단독으로 사용한 사람은 4명이다. 피해자로 인정됐으나 공소시효 완성 등으로 법원 판단 범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8명이다. 판결에 따르면, 단독 사용자 4명 가운데 폐질환 피해 인정자는 3명이다. 폐질환 피해자 중 한 명은 하루 12시간동안 청사진 인화작업에 종사하며 암모니아수에 노출됐다는 취지로 기재됐다고 한다. 과거 암모니아 노출로 인한 폐섬유증 사례 또한 있다. 재판부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유다. 나머지 2명은 일란성 쌍둥이로, 가습기살균제 노출 이전에 이미 원인이 분명치 않은 원인의 호흡기질환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폐질환이 유전과 관련 있는지도 쟁점이 됐다. 환경부에서는 "유전자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질환에 대해서만 문제 없다는 소견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천식 피해자는 1명이다. 그는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단독 사용했다고 확실하게 답하지 못했다. 또 그는 가습기살균제 사용 이전부터 앓고 있던 호흡기 질환·심혈관계 질환·피부병 등을 모두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건강 피해로 기재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모두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질병을 얻었다고 증명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정부에서 인정한 피해자를 법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비판도 거셌다. 다만 환경부에서는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어떤 다른 요인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판단하지는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피해 구제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신청에 대해 직업적 요인이나 과거 질환 등을 세세하게 따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1~2단계로 판정된 피해자는 굉장히 특이한 모습이 나타난 상태였다. 피해 신청에 대해 일일이 반증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50만명? 200명? 4명? 피해자 수 다른 이유는

이 사건에서 고려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단독 피해자는 4명이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단독 피해자를 지난달 29일 기준 총 231명으로 집계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이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는 피해자로 신청한 사람을 모두 반영한 반면, 검찰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와 질환의 인과가 인정된다고 판단된 피해자만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검찰이 기소할 때는 1~4단계 피해자 가운데 전문가로 구성된 판정위원회에서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약하다고 판단한 피해자는 제외했다"고 밝혔다.
판정위원회에서는 의사들이 피해 증상(임상)과 영상 사진을 보고 단계를 판단했다. 양측에서 다른 소견이 나왔을 경우에는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본 쪽으로 단계를 정했다. 임상에서 2단계, 영상에서 3단계가 나왔다면 2단계로 판단하는 식이다. 다만 현재는 법 개정에 따라 환경부에 단계를 나누고 있지 않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단계가 폐지돼 이제는 다 똑같은 피해자"라며 "1~2단계만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피해자의 의견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67만명은 사참위에서 지난해 7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추산한 숫자다. 표본 500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대인면접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구학적 가중치를 통해 산출됐다.

2011년 이후 연구가 반영되지 않았나?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전 사참위 부위원장)은 재판부의 결론에 대해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동물실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해서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결문에는 2018년 3월과 8월 환경부에서 추가 연구한 내용 역시 반영돼 있다. 재판부는 CMIT/MIT 실험 결과 가운데 동물에게 기체를 흡입하도록 한 실험에서는 이상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기도에 직접 성분을 떨어트렸을 때만 증상이 나타났다는 점을 가습기살균제와 질병 발생의 인과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로 설명했다.
판결에 따르면 환경부 연구에서 연구진은 권장사용량의 833배에 해당하는 농도로 흡입 실험동물을 노출시켰으나 폐와 코에서 조직학적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진 최저노출군과 중간노출군, 최고노출군을 설정하고 반복해 기체를 흡입시킨 실험에서도 모든 노출군에서 독성적 영향은 관찰되지 않았다. 폐 염증 악화 역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폐섬유증의 경우 기저질환이 있는 상황에서 권장사용량의 277배를 노출시킨 동물에 대해서만 증상이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해 8월 환경부는 유해성이 인정된 PHMG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기도에 넣어 폐섬유화를 일으킨 동물을 대상으로 CMIT/MIT를 흡입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폐질환을 갖고 있는 피해자가 CMIT/MIT 성분 흡입으로 인해 질환이 더욱 악화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에서는 권장사용량의 833배(고농도 시험군)를 흡입시킨 동물이 사망하는 사례가 나왔으나, 이는 고농도 물질 흡입이 원인인 것으로 판단됐다. 빈사에 이른 동물에게서도 폐손상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중농도(권장사용량의 277배), 저농도(권장사용량의 138배)를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는 폐 악화 등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규홍 안전평가연구소 박사는 판결 이후 "쥐 실험에서 CMIT/MIT를 투여하고 관찰한 결과 천식간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쥐 실험을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느냐고 물어 모델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는데, 사람의 천식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 박사의 실험 역시 기도에 투여하는 형태의 실험에서만 유사 천식증상이 발생하거나 이미 있던 천식이 중증으로 악화되는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흡입 실험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최 소장은 다른 연구 결과도 판결문에서 언급된 데 대해 "복잡한 얘기를 방송에서 하기는 어려워 판결문 전체의 취지와 시각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CMIT/MIT 성분(의 유독성)이 이후 실험에서 부분적으로 확인이 됐는데 (재판부가) 2011년 부분만을 빼서 지적을 했다고 요약했다"고 덧붙였다.
기도에 직접 떨어트린 실험만으로 기체를 흡입했을 경우의 유독성이 입증됐다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임상(피해자)가 이미 있다"라며 "피해자가 있고 점적 실험(기도 직접 투입)에서 독성이 나왔으면 흡입독성 실험(기체 노출)을 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이어 "그게 독성학에서 과학자가 판단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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