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현대중공업, 6년 만에 첫 대기업 빅딜 호재 삼아 도약 하나
입력 2021-02-14 09:44 

두산인프라코어 거래 본계약이 지난 5일 체결됐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이번 거래는 2015년 10월 있었던 삼성·롯데 간 화학계열사 빅딜(매각측 삼성, 인수측 롯데) 이후 첫 대기업간 제조업 빅딜이다.
왜 그간 대기업간 제조업 빅딜이 없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중후장대산업으로 불리는 제조업에 대한 투자 메리트가 점점 떨어졌기 때문이다.
주식시장만 봐도 알 수 있다. 전통 제조업 주가는 10년째 제자리에서 도돌이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4차산업혁명 관련 성장주로 일컬어지는 IT, 전기차 등 관련 기업 주가는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고공행진을 나타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등 잇단 경제 위기 국면이 이어지고 2015년에는 글로벌 성장엔진 중국 내수경기가 침체되며 제조업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잇단 악재속에 전세계 중후장대 기업 대부분은 '이익 창출력 저하->신용등급 강등->금융비용 증가'라는 악순환에 빠졌다. 경기 사이클을 많이 타는 업종 속성상 "올해는 괜찮겠지…"라고 했던 바램이 매해 "올해도 또…"라는 한숨으로 반복돼왔다. 그리고 2020년에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까지 맞았다.

하지만 2021년 현대중공업그룹은 다시 한번 중후장대기업 포트폴리오 기업을 추가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 시계를 글로벌 금융위기 전으로 돌려 현대중공업그룹의 최근 20년을 돌아보면 답이 나온다. 경기순환과 그룹 재무구조가 동행하는 구조다. 시간이 돌고돌아 다시 현대중공업그룹의 편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2007년 현대중공업그룹은 거칠것이 없었다. 그룹 핵심 계열사 현대중공업 주가는 2004년 2만원에서 불과 3년만에 27배인 54만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가장 핫하다는 미국 테슬라 주가 상승률이 우스워보일 지경이다. (테슬라 주가는 3년전 70달러에서 현재 860달러로 고작(?) 12배 올랐을 뿐이다) 중국 경제 급성장으로 글로벌 무역이 활황세를 나타냈고 때문에 뱃삯이 치솟으며 글로벌 선주로부터 선박 주문이 물밀듯 들어왔다. 현대중공업은 2002년 이후 무차입 경영도 이어나갔다. 주체할 수 없을만큼 현금이 쏟아져들어왔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 모든 것을 단숨에 폐허로 만들었다.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며 선박 발주를 지탱하던 대출인 선박금융 금리가 치솟은 반면 금융위기의 실물경제 전이로 글로벌 운임은 급락했다. 발주처인 해운사들이 일제히 궤멸했다. 신규 선박수주는 커녕 기존 발주 물량마저 줄줄이 취소됐다.
금융위기가 진정되는 시기였던 2011년 발발한 유럽 재정위기는 계속된 시련이었다. 글로벌 선박 발주를 이끄는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일제히 재정 위기로 인해 집단 불황에 돌입했다. 여기에 경제성장과정에서 힘을 비축한 중국 조선사들의 덤핑 수주 공세까지 가세하며 시련의 계절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그런 현대중공업그룹이 버틸 수 있던 원동력은 현대오일뱅크였다.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여파로 중동 아부다비국영석유사에 매각했던 오일뱅크 지분과 경영권을 콜옵션 행사로 2010년 이를 되사왔다. 금융위기의 여진이 남아있던 시기였지만 현대중공업그룹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일뱅크는 반드시 되찾아와야한다"고 강조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재계의 정설이다. 오일뱅크 전신 극동정유는 정주영 회장의 사돈기업이었다. 젊은 나이에 일찍 타계한 정주영 회장 막냇동생 고 정신영 동아일보 기자의 처가가 극동정유다. 막냇동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경영난에 처했던 극동정유를 1993년 인수했고 IMF 위기로 매각할 때에도 콜옵션 조항을 계약서에 담아 이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장치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같은 정주영 회장의 유산은 현대중공업그룹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오일뱅크는 2010년 이후 매해 연평균 5000억원 안팎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그룹의 주요 캐시카우로 버팀목이 됐다.
2016년 현대중공업그룹은 3조원 넘는 자구안을 발표하며 마지막 재무구조 개선 퍼즐을 맞추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듬해 하이투자증권 등 금융계열사와 현대호텔 등을 매각하는 한편 1조3000억원 규모 현대중공업 유상증자까지 성사시키며 재무구조 개편을 완료했다.
그리고 2021년. 현대중공업 기업공개를 통해 1조원 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친환경선박 등 신사업투자에 활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8500억원을 들여 두산인프라코어도 인수해 건설기계 분야 강화에도 나선다.
기업공개 배경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과거 10년 넘게 어렵던 조선업 시황이 이제는 바닥을 치고 반등할 수 있다는 신호가 감지됐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사업 확장 기조를 완연히 하고 전사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현대중공업그룹호라는 거함이 암초 지대를 벗어나 파도가 잔잔한 대양을 순항할 지 여부가 주목된다. 중후장대산업은 한번 시동이 걸리면 폭발적인 이익이 나는 사업구조를 지닌다. 2007년,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달러 환전 물량 때문에 달러당 원화값 900원선을 무너트린 주역 중 하나로 지목될 정도였던 '거함' 현대중공업의 재림이 눈앞에 있다.
[한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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