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적 약자 위해 일하고 싶다"…로펌 박차고 국선변호인 선택한 이유
입력 2021-02-13 21:02  | 수정 2021-02-14 09:18
오수미 서울고법 국선전담변호사 [사진 = 정희영 기자]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
-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4항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모든 국민에게 변호인을 찾아가 사건을 의뢰할 여력이 있지는 않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이들을 위해 일한다. 연간 수억원을 벌어들이는 고소득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때로는 흉악범을 변호하며 "어떻게 저런 사람을 옹호하느냐"며 손가락질 받기도 한다. 그래도 헌법 가치 실현을 위해, 전문 지식을 갖춘 법률가로 일한다.
오수미 국선전담변호사는 과거 로펌과 공기업 사내변호사로도 근무한 경력이 있다.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해 온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2011년부터 서울고법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하기 시작해 10년째 항소심 법정에서 국선을 찾는 피고인들을 위해 변론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오 변호사를 만나 국선전담변호사의 삶과 갈등, 즐거움에 대해 들어봤다. 아래는 1문1답
-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
= 여자친구로부터 감금 등 혐의로 고소당한 피고인이 있었다. 그는 여자친구와 모텔에 여러 날 묵으며 함께 지내다, 여자친구가 집에 돌아간 뒤 다툼이 생겼다고 했다. 1심에서는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상태였다. 실형을 선고받고 나니 항소를 했지만 자포자기 상태였다. 죄를 인정하면 감형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만 했다.
저에게는 진실만을 얘기해야 한다고 다짐을 받고 여러 차례 얘기를 나눴는데도 정말 억울하다고 했다.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니 감금이라고 하긴 어려운 정황들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감금 등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아낼 수 있었다.
최근에는 1심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피고인도 있었다. 접견을 갔을 때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매우 억울해하고 있었다. 관련 증거를 더 모아 제출하고, 충실하게 변론해 살인의 고의가 없다고 인정되고 과잉방위도 인정돼 징역 1년으로 감형을 받았다. 그런데 그 분의 누나가 암투병 중이었다. 선고일이 구속된 지 1년이 다 돼가는 시점이어서 곧 집으로 갔다. 암 투병 중이던 누나가 고맙다고 문자를 보내온 게 기억에 남는다.

- 본인도 포기한 사건에서 무죄를 이끌어내면 뿌듯하겠다
= 피고인들에게 처음부터 얘기를 한다. 저희는 국선이어서 아무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감사하다는 편지나 전화 주면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저희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들으면 밤을 새도 피곤하지 않다. 다른 사건을 위해 접견을 갔는데, 제가 변호했던 분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들었다며 수줍게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 누구도 맡고 싶지 않아하는 흉악범의 변호도 했을 것 같다
= 서울고법에는 무거운 사건들이 많이 들어온다. 징역 20년이나 30년,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사건도 종종 접한다. 서울고법 국선전담변호사에게 흉악범 변론은 종종 있는 일이다.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 흉악범을 변론한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사건이 있었다. 편견 없이 그들에게도 방어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차분히 말을 듣다 보면 그들이 범죄까지 내몰리기의 과정이 정말 가슴 아픈 경우가 많다. 죄를 지은 건 정말 큰 잘못이다. 불행한 사건이 생긴 게 안타까운 마음이다. 피해자를 생각하면 더 안타깝다.
맡았던 사건은 결국 항소 기각 판결(1심 판단 유지)를 받았다. 피고인이 반성하는 것은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하지만 사건이 중대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듯 하다.
- 다른 변호사에 비해 국선전담변호인만의 장점이 있나?
= 사선 변호사에 비해 의뢰인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보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소신껏 변론할 수 있다
-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의뢰인이 많을 것 같다
= 아무래도 불우한 환경에 처한 분들이 많다. 의지할 가족도 없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소통에 미숙한 사람도 많다. 알콜 중독이나 정신과적 문제로 자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사건을 주로 처리한다. 피고인과 충분히 소통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변호사 업무라는 게, 사건을 대충하려면 대충할 수 있고 정말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끝이 없다. 한 피고인은 접견에서 얘기를 나눠 보니 내용을 믿기 어려웠다.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고 집에서 기록을 봤는데 볼수록 함부로 넘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결국 밤을 샜다. 1시간만 자고 다음날 다시 접견을 갔다. 억울한 사람 억울함 풀어주려 사건 열심히 하다 보면 몸살이 나는 경우도 흔하다.
- '공짜'라는 생각에 막 대하지는 않나
= 가족으로부터도 외면 받고, 세상에 혼자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피고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단 한사람이 국선변호인이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스스럼없이 다 얘기하며 진심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국선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 "내가 김앤장 선임할 돈이 없어 국선 변호인으로부터 변호를 받았다 징역형을 살고 있다"며 비난하는 경우도 있고, 무리한 요구를 하며 함부로 대하는 사례도 없는 건 아니다.
- 어떻게 국선전담변호사를 시작하게 됐나?
= 사회 경제적 약자를 위해 변론하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때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변호사는 저년차 때가 아니면 일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얻기 어렵다. 일단 기본적인 업무부터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로펌과 EBS에서 일했다.
사내변호사로 일하다 보니 변호사 본연의 업무와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법정에 가셔 변론하고싶다는 마음이 생기며 국선전담변호사에 지원했다.
- 로펌·사내변호사와 국선전담은 업무 형태가 많이 다를 것 같다
= 대하는 사람이 가장 다르다. 로펌에서는 주로 공무원이나 회사 관계자, 수임료를 지급할 자력이 있는 의뢰인을 주로 대한다. 사내변호사로 일할 때는 회사 임직원이나 로펌 관계자를 주로 접했다.
- 앞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 하루 빨리 형사사건에도 전자소송이 도입됐으면 한다. 아직 우리는 기록 복사를 흑백으로밖에 할 수 없다. 흑백으로는 문제없어 보이던 사진을 칼라로 보니 다른 법을 적용해야 하는 사건도 있었다.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서는 중요한 문제다. 무거운 기록을 들고 다니다 보니 어깨도 좀 망가진 것 같다(웃음)
[정희영 기자]
※스물스물은 '20년대를 살아가는 20대'라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사회 진출을 준비하거나 첫 발을 내딛고 스멀스멀 꿈을 펼치는 청년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매일경제 사회부가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 20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참신한 소식에서부터 굵직한 이슈, 정보까지 살펴보기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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