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버스 타고 방방곡곡 - 매력 & 팁] 몸과 마음 맡기면 그곳은 '안방'
입력 2021-02-13 05:00 
대전-옥천-보은-상주행 시외버스

1985년 봄, 고교시절 수학여행, 10대의 버스 군단은 울진 동해를 끼고 설악을 향해 달린다. 지금은 '기러기 행렬'이 불법이지만, 과거에는 규모를 자랑할 수 있는 표현 역할을 했다. 버스 안에서는 친구 이진욱이 이선희의 '누가 나를 알까요'를 불렀다.

누가 나를 알까요, 님이 모르는 마음
야속타 원망해도 커지는 그리움 덩이
파도에 씻긴 자리 풀잎도 시들건만
눈물에 씻긴 자리 꽃이 되신 님이시여

파란 바다를 친구 삼아 달리는 버스 행렬에, 분위기 돋는 노래, 그 위를 날아 찍은 드론 영상. 요즘의 상황에 빗대어도 참 안락하고 차분했던 버스여행의 기억이다.

옥천 안남행 시내버스 안

▲ 나만의 공간에서 잠과 음악,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버스여행의 묘미는 버스회사 영업이 잘 안돼야 더 잘 찾을 수 있다. 차 안 빈자리가 많아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조용한 분위기에서 잠도 자고, 음악도 듣고, 생각도 하고, 또 다른 나만의 공간이 되는 거다.

사실 요즘 버스 타는 사람이 많이 줄기는 했다. 배차 간격이 늘어난 가운데서도 평일이나 주말, 휴일에도 2인석에 같이 앉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말, 대전 등 대도시에서 서울로 가는 막차가 꽉 차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 넓은 공간에서 옆자리에는 가방을, 노트북을 두기도 하고, 두꺼운 외투를 던져두기도 하는, 이동하는 시간만큼은 내 땅인 거다. 거기서 느끼는 독립감과 외부로부터의 단절은 묘한 들뜸을 준다.

특히 버스 안에서는 잠이 잘 오는데, 통로에 오가는 사람이 없고, 요즘은 창을 여닫을 수 없는 밀폐형이다 보니 산소가 상대적으로 부족, 그래서 잠이 잘 온다는 글을 어디에서 읽은 것 같다. 밖은 차디차고 안은 따뜻한 나만의 공간, 가끔은 가져볼 만한 독립이다.

홍천 화양강휴게소

▲ 속도와 리듬감, 그리고 휴게소…….

개인적으로는 버스여행의 매력 가운데 '속도와 리듬감'을 크게 친다. 90년대 수도권 도심은 곳곳에서 전철과 도로공사, 외곽으로 나가면 2차선 도로에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 공사로 막히고. 요즘은 도심을 빠져나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막힘도 없고, 전용차로가 있어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계령이나 미시령, 문경새재나 죽령과 같은 꾸불꾸불 고개를 느릿느릿 덜컹덜컹 넘지 않아도 되니 속도감에 리듬감, 잠이 오고 음악도 정겹고, 밖을 보는 풍경도 시원해진다.

버스회사의 정확한 기준은 모르겠지만, 도착지까지 걸리는 시간이 2시간 30분이 넘으면 휴게소에서 한 번 쉬는 것 같다. 휴게소에서 즐기는 별미도 좋지만, 버스 트랩을 밟고 내리면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 그리고 이국적까지는 아니지만 새로운 곳에 대한 이질감이 묘한 기분을 안긴다. 그렇게 10여 분 마음과 머리 세탁을 하고 다시 시작하는 질주, 휴게소는 에너지다.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 도시의 민낯을 가장 먼저 접하다

도시와 읍내의 분위기는 버스터미널에서 나온다? 나에게는 그렇다. 팽창하는 도시, 사람이 줄어가는 도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도시. 제각기 풍기는 이미지는 버스터미널에서부터 온다. 깔끔한 터미널 건물 주변에 잘 정돈된 숙소, 정갈한 식당들. 반대로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곳은 옛 간판 그대로, 주변은 아무래도 덜 정돈되기 마련이다. 첫인상을 머릿속에 담고 20분 정도 그 도시를, 읍내를 걷다보면 고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도시가 살아 있다. 사람들이 정겹다, 읍내가 힘을 잃어간다. 등등등.

고속버스 예매 어플

▲ '버스앱'을 깔고, 나만의 고정석을 만들고…….

요즘은 스마트 세상. 버스여행도 마찬가지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표를 예매할 수 있는 앱을 깔아라' 실시간으로 예매, 환승과 시간을 변경할 때는 취소하고 다시 구매. 버스여행의 표구하기 방법이다. 자리는 비교적 넉넉하다. 자기만의 자리를, 영역을 구획해 두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일단 13번 좌석이다. 버스 중간 창 쪽인데, 그냥 박지성의 등번호 13번 때문에 선택을 했는데, 그보다 좋은 명당이 없다. 중간에서 즐기는 넓음의 미학.

용량이 큰 보조배터리

장거리 버스여행에서 용량이 큰 보조배터리는 필수다.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 여행, 사진 정리, 음악 듣기 등. 넉넉한 보조배터리가 없으면 마음이 조급해져 리듬을 잃기 쉽다. 5만 원 정도 하는 2센티미터 두께의 보조배터리가 있으면 배낭 무게는 좀 늘어나지만,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물과 간식은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 가방 무게와 부피가 느는 것도 문제지만, 여행지에서 사는 천 원짜리 물이더라도 '현지식'을 사는 맛도 있고, 사람 만나는 맛도 있고.


▲ 함양과 함평, 함안을 정확하게 '찍을 수' 있는가?

빈 한반도 지도를 펼쳐 놓고 함양과 함평, 함안 위치를 비슷하게라도 찍을 수 있을까? 버스여행의 시작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됐다. 먼 세계 여행도 좋지만, 가까운 우리의 이웃, 우리의 부모님들이 살고 있는, 같은 듯 다른 듯한 곳은 과연 어떨까. 이런 궁금함을 발로 옮겨 확인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함평과 함안, 함양의 위치를 비슷하게나마 찍고, 그곳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을 내 나이에 담고. 그런 이유로 꿈의 버스에 나를 싣는다.

버스는 꿈이다
꿈을 옮기는 공기다

산소를 만나기도 하고
스모그를 보기도 하고

안에서 울기도 하고
속에서 웃기도 하고

아스팔트 찍은 바퀴는 앞으로 가고
마음도 따라 향한다

나를 담아, 나를 옮기는
고마운 버스

표 한 장을 또 끊는다
기대하시라
내일은 출발이다

버스는 꿈이다
꿈을 고맙게 옮기는 공기다.

[ 구본철 전국부장 / koosfe@naver.com ]

#버스여행 #휴게소 #버스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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