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외환위기때 막혔던 '태국 금융빗장' 풀려
입력 2021-02-01 17:12  | 수정 2021-02-01 19:18
"현지인 한 명만이라도 남겨놓으면 은행업을 유지시켜주겠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바트화 폭락 당시 태국 정부의 애달픈 절규에도 한국 금융사들은 줄줄이 철수하기 바빴다. 그렇게 태국을 떠났던 한국 금융사들도 결국 외환위기를 겪었다. 1997년의 기억 때문에 한국 금융사들은 좀처럼 태국에 발을 내디디기 힘들었다. 태국은 동남아시아의 맹주이면서 아세안 핵심 국가다. 태국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기준 5436억달러이며 세계 23위로 동남아 지역에선 상위권에 속한다. 태국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가전제품 공장을 비롯해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지만 경제활동의 동맥 역할을 하는 한국계 은행이 단 한 곳도 없다.
이에 따라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한국 기업들의 진출도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금융사가 진출해야 자금 조달 등을 할 수 있는데 그런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이 아닌 여신전문금융회사지만 KB국민카드가 이번에 태국에 진출하면서 핀테크 등 결제 사업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동남아 시장에서 확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태국 빗장이 외환위기 후 20년이 넘어 본격적으로 풀리고 있다. 태국 진출 선봉에는 KB국민카드가 섰다. 이 회사가 여신금융기관 중 처음으로 태국에 진출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국내 다른 금융사도 태국 등 동남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동안 태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금융사는 KDB산업은행, 삼성생명, KTB투자증권뿐이다. 유일한 은행인 산업은행도 법인이 아닌 사무소 형태다.
KB국민카드는 1일 오후 서울과 태국 방콕을 온라인 영상회의 방식으로 연결해 태국 여신전문금융회사 '제이핀테크(J Fintech)' 인수 계약을 마무리하는 딜 클로징 행사를 열었다. 이번 태국 여신전문금융회사 인수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국 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가 신규 인허가 또는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태국 소비자금융 시장에 진출하는 최초 사례다. KB국민카드는 2018년 캄보디아 'KB대한 특수은행'과 2020년 인도네시아 'KB 파이낸시아 멀티파이낸스'에 이은 세 번째 해외 자회사를 보유하게 됐다. 이번 총인수대금은 약 240억원이다. KB국민카드와 태국 '제이마트(Jaymart)그룹'이 각각 지분 50%에 참여하며 경영권은 제이핀테크의 의결권 지분 50.99%를 보유한 KB국민카드가 가진다.

이번에 인수한 회사는 태국 내 휴대폰 유통과 채권 추심 1위 업체를 계열사로 보유한 제이마트그룹의 금융 자회사다.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1392억원, 당기순이익 39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이 회사는 개인신용대출, 자동차대출 등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제이마트그룹 자회사인 '제이마트모바일'이 보유한 휴대폰 유통 채널 등 태국 전역의 400여 개 지점을 전속 시장으로 활용해 금융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앞선 해외 시장 진출의 성공 경험과 유전자를 바탕으로 태국법인을 현지 최상위 여신전문금융회사로 성장시키겠다"며 "이번 태국 진출이 KB금융그룹 다른 계열사들의 태국 시장 진출을 위한 마중물 역할과 함께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어려웠던 한국 금융회사들의 태국 진출 교두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 한상헌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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