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파운드리 점유율 대만 64 對 한국 18…격차 줄이려면 올해 兆단위 투자 시급
입력 2021-01-17 16:59 

대만 64% 대 한국 18%.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가 지난달 전망한 올해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업계의 국가별 점유율이다. 대만과 한국이 1, 2등이지만 격차가 압도적이다. 삼성전자(점유율 17%)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와 초미세 공정 기술에서 대등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설비 규모는 TSMC가 훨씬 크다. 여기에 대만은 UMC·파워칩테크놀로지·밴가드국제반도체그룹(VIS) 등 다른 파운드리 기업이 생태계 저변을 이루지만 한국은 삼성전자를 빼면 DB하이텍 정도만 버티고 있다.
올해 세계 파운드리 업계 전체 매출액은 896억8800만달러(약 98조9700억원)로 전년대비 5.9%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차량용 반도체와 생활가전·정보기술(IT) 기기용 반도체는 물론 비대면 경제 활성화로 인한 서버·클라우드 센터용 반도체 수요는 급증하지만 칩을 생산할 파운드리 기업의 설비는 한정돼 오히려 매출 증가폭이 제한되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골든 타임이 얼마남지 않았다"며 올해 과감한 조(兆) 단위 파운드리 투자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만과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면서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자는 얘기다.
아직까지 국내 파운드리 기업은 투자에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투자를 이끄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발목을 잡는다.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파운드리 포함 시스템 반도체에 약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1위에 오른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 인근에 부지 약 104만4088㎡를 사들였다. 이르면 2022년께 파운드리 공장을 착공한다는 업계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공식 투자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당장 18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뒀다. 실형을 선고받으면 오스틴을 비롯해 그간 검토 중이던 대형 투자가 줄줄이 스톱될 수밖에 없다"며 "삼성전자가 급속히 커지는 시장을 보면서도 투자 결단을 못 내리는 이유"라고 했다.
세계 10위 파운드리 기업인 DB하이텍은 충북 음성공장의 증설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구형인 8인치(200mm) 웨이퍼로 TV용 구동칩을 만드는 DB하이텍은 음성공장에 8인치 설비를 추가하거나 신형인 12인치(300mm) 반도체 라인을 신설하는 방안을 모두 고민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장비 기업 대부분이 8인치용 장비를 만들지 않는데다 미래 성장성을 고려하면 12인치 라인 신설이 낫다는 의견이 많다.
문제는 돈이다. DB하이텍은 8인치 설비 증설을 선택하면 약 7000억원, 12인치 신설은 1조2000억~1조4000억원이 들어간다고 추산한다. 지난해 약 1조원의 매출을 거둔 것으로 파악되는 DB하이텍은 투자를 위해 자본유치가 절실하다. DB그룹은 지분 희석으로 DB하이텍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하는 상황을 고려해 머뭇거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DB하이텍의 증설 투자는 DB 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파격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SK하이닉스도 지난달 12월부터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중국 우시 공장에서 파운드리 생산에 돌입하면서 파운드리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매그너스 사모투자합자회사(PEF)를 통해 옛 식구였던 매그나칩반도체의 파운드리 사업부(약 5300억원 규모)에도 출자했다. 다만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사업은 아직 대대적 투자를 단행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는 통상 고객을 먼저 유치하고 설비에 투자한다"며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 기술을 끌어올리며 대형 고객사를 유치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대만 기업은 앞다퉈 파운드리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국내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의 54%를 장악한 TSMC는 올해 250억~280억달러를 설비투자에 쏟는다고 선언했다. 전년대비 62% 증액한 수치로, 최대 30조원을 부어 삼성전자를 완전히 따돌리겠다는 의지다. TSMC는 지난해 5월 12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5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1m) 이하 최첨단 초미세 공정 기반 반도체를 생산하는 신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일본에서도 현지 장비 업체와 협업하면서 키타큐슈에 공장 신설을 검토 중이다.
대만의 중위권 파운드리 기업도 투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세계 3위 파운드리인 UMC는 올해 12인치 설비 증설에 1조1000억원을 투자하고 8인치 공장을 추가로 인수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파워칩은 올해 하반기에 대만 통루오산업단지에 12인치 라인 2곳을 착공한다고 발표했다. 투자 규모는 약 10조4000억원이다. VIS 역시 싱가포르 공장의 8인치 설비를 늘리면서 반도체 공장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이종혁 기자 / 박재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