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월세 2천만원 포기한 대구 건물주…"펑펑울고 싶어도 함께 버티자!"
입력 2021-01-05 16:47  | 수정 2021-01-05 16:59
지난해 초부터 지금까지 1년 가까이 세입자들에게 임대료를 인하해 주면서 `착한 건물주`로 불리는 양기환(57) 정다운 사람들 대표가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저보다는 더 어려운 세입자들을 위해 올해도 임대료 인하를 계속 해 줄 겁니다."
지난해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자영업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자 '착한 건물주 운동'을 1년 가까이 펼치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 양기환(57) 정다운 사람들 대표다. 대구에서 스포츠 의류 제조공장을 운영 중인 양 대표는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에 소형 상가 건물을 갖고 있는 일명 '갓물주(건물주와 신의 합성어)'로 불린다.
자신의 회사 매출도 90% 이상 급감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세입자들을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임대료 인하를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나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힘들고 사업장 월세도 내야 되는 상황이지만 우리 세입자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쑥쓰러워했다. 그는 세입자 10명에게 경영 사정에 따라 30~50% 가량 임대료를 감면해 주고 있고 이로 인해 2000만원 가량의 월세 수입도 사라진 상태다.
사실 양 대표는 지난해부터 대구에서 계속되고 있는 '착한 건물주 운동'의 선봉장에 선 인물이다.
지난해 3월 그는 동성로상점가연합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생각에 건물주들을 상대로 '임대료 인하' 동참을 호소해 왔다. 그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서는 모두가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이자 동반자란 생각으로 캠페인 동참을 호소했다"며 "건물주 분들도 힘들지만 역지사지 입장에서 세입자 분들을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고 호소했다"고 말했다.

물론 양 대표도 '착한 건물주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심적이나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건물주들의 따가운 시선과 함께 매출이 급감한 자신도 월세를 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저도 처음에는 남의 재산권인데 다른 건물주들한테 욕을 먹지 않을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고민이 많이 들었다"며 "하지만 욕을 먹더라도 같이 살기 위해서는 임대료 인하 운동을 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양 대표의 용기 있는 결단은 결국 동성로에서 시작돼 대구 전역으로 '착한 건물주 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대구에서는 2732명의 건물주들이 임대료 인하에 동참해 재산세 감면 혜택을 봤고 50억원의 임대료를 인하해 줬다.
양 대표는 "건물주들도 사실 대출이 없는 분들이 거의 없고 각종 비용도 나가는데 월세 감면에 대해 부담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세입자들은 매출 감소로 인해 생활고를 겪는 분들인 만큼 조금이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건물주 분들이 동참해 줬다"고 고마워했다.
그의 선행은 여기서도 그치지 않았다. 양 대표는 한 임차인이 1년째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 5000만원을 돌려 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지만 이 보증금도 보전해 주겠다고 세입자를 안심시켰다. 양 대표는 "월세가 밀린 세입자에게는 잘 되거든 주고, 안 되거든 나중에 천천히 달라고 했다"며 "이런 분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제 일"이라고 했다.
새해를 맞아 그는 '착한 건물주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으면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서로에게 기회를 주고 응원하면서 이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이겨내자는 바람에서다. 양 대표는 "주저앉고 펑펑울고 싶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껏 잘 버텨 온 만큼 더 버텨보자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며 "우리 모두 새해에는 분명 나아지고 괜찮아질 거란 희망을 품고 살아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구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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