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연봉 1억 받아도…8년 한푼도 안써야 강북 아파트 산다
입력 2020-12-29 17:28  | 수정 2020-12-29 20:22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백련산힐스테이트 아파트전경. 2017년 5월만 해도 4억원가량(59㎡기준)에 거래됐던 이 아파트의 최근 매매가는 8억원을 돌파했다. [사진 제공 = 현대건설]
서울 강북 아파트 중간값인 중위가격이 처음으로 8억원을 넘어섰다. 현 정부 취임 초인 2017년 5월 4억원대였던 강북 아파트 중위가격이 올해 12월까지 두 배 가까이 솟아오른 것이다. 정부의 잇따른 정책 실패와 전세난에 지친 무주택자들이 강북 중저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수에 나선 영향이다.
29일 KB국민은행의 '12월 월간 주택시장 동향'에 따르면 서울 강북 14개 구 지역의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전월(7억9732만원)보다 2338만원(2.93%) 오른 8억2070만원을 기록하며 8억원을 넘어섰다.
강북 아파트 중위가격이 8억원을 넘은 것은 KB부동산이 해당 조사를 시작한 2008년 12월 이래 처음이다. 중위가격은 아파트값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앙에 위치한 가격을 말한다.
강북 아파트 중위가격은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인 2017년 5월만 해도 4억3552만원으로 현재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후 상승세를 거듭해 2018년 4월 5억원대에 처음 진입했고, 2019년 1월 6억원을 넘어섰다. 본격적으로 서울 전체 아파트 중위가격 상승률을 뛰어넘은 건 올해 임대차보호법(7월 31일) 시행 이후다. 올해 5월 6억5036만원이었던 강북 아파트 중위가격은 12월 8억2070만원으로 1억원 이상 껑충 뛰었다.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2~3개월 만에 수억 원씩 오르자 결국 참다 못한 무주택자들은 강북 중저가 주택 위주로 집을 사기 시작했고, 매도 우위에 선 집주인들이 호가를 계속 올리면서 집값이 오르는 악순환을 지속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2013만원에서 9억4741만원으로 큰 변동이 없었다.
문제는 내년이 되더라도 이런 상황이 호전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아파트 입주 물량 감소, 세입자에게 세 부담 전가, 분양 대기 수요, 저금리 등 다양한 이슈가 맞물리며 전세가격 안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하방경직성을 받쳐주고 일부 지역은 자가 이전 수요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세원 내외주건 상무는 "서울 지역은 입주 물량 급감과 전월세가격 상승이 연쇄적으로 매매시장을 자극해 이것이 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요소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더 암울한 점은 매매가격 급등보다 전셋값 급등 폭이 더 크다는 점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은 56.1%로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가율은 4개월 연속 상승했는데 이 기간 매매가격보다 전셋값이 빨리 올랐다는 얘기다.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도 67.1%를 기록해 지난 1월(66.9%) 수치를 넘어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가율이 높아지면서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투자 방식)를 통한 매매도 쉬워졌다. 심지어 전셋값과 매매가격 차이가 없는 '무갭투자' 사례도 나타났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탄현2단지삼익' 전용면적 59㎡는 지난 8일 2억1500만원(17층)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이 물건은 지난달 25일 2억500만원에 매매 계약서를 썼다.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1000만원 더 비싸 자기 자본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집을 산 셈이다.
일산서구 일대는 매매가격과 전셋값이 같거나 가격 차이가 5000만원 이하인 단지가 최근 3개월간 54곳에 달했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일산서구 전세가율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달(80.1%) 80%를 넘은 데 이어 이달 80.6%까지 상승했다.
[김태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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