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플랜트 악몽` 털어낸 조선株, 2007년 수퍼사이클 재현하나
입력 2020-12-29 09:58  | 수정 2020-12-29 10:05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 제공 = 삼성중공업]


한국 조선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4분기 수주 몰아치기를 이어가는 가운데 내년에도 선박 발주 시장의 호황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과거 두 번의 조선업종 강세 국면과 비교하면 올해 4분기의 조선업황은 첫 번째 강세 국면인 지난 2007년과 닮았다. 교역 증가에 따른 선박 발주 증가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지난 2011년의 두 번째 조선업종 강세 국면은 국제유가 고공행진에 따른 해저 유전 개발 붐으로 인한 해양플랜트 수주 증가가 만들었다. 다만 이 때의 수주는 무리한 저가 수주로 인해 지난 2015년 조선업종 몰락의 단초가 됐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은 전일 10만6500원으로 마감됐다. 지난 10월 마지막 거래일의 종가 7만8400원과 비교하면 두달여만에 주가가 35.84% 상승했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주가가 각각 37.03%와 26.46% 올랐다.

이 같은 주가 상승은 올해 들어 지난 3분기까지 수주 부진에 시달리다 4분기 한꺼번에 수주가 몰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 영향으로 올해 3분기까지 조선업체들의 수주 실적은 지지 부진했다. 이런 이유로 연초에 세운 목표치의 절반을 채울지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날 현재 한국 조선 빅3인 현대중공업그룹,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목표 달성률은 각각 91%, 65%, 75%를 기록하고 있다. 4분기 들어 몰아치기 수주를 한 결과다.
특히 삼성중공업의 경우 지난달 초만 해도 수주 목표 달성률이 15%에 불과했지만, 이후 약 두 달 동안 44억달러어치의 일감을 따내며 목표 달성률을 65%까지 끌어올렸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 한국조선해양 역시 4분기에만 모두 54억9000만달러 규모를 수주해 수정한 목표치 110억달러의 절반 가량을 4분기에 채웠다.
같은 기간 대우조선해양도 모두 38억2000만달러어치를 수주했다.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전까지 주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유조선(VLCC)을 수주했다면, 이후에는 컨테이너선 발주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모잠비크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될) LNG운반선, (독일 해운사) 하팍로이드가 발주하는 컨테이너선을 변곡점으로 (조선업체들의) 단기 신규 수주는 피크아웃(Peak-Out·고점 이후 조정)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여전히 건조 문의는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 긍정적인 발주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해운업계는 올해 하반기 들어 선복(컨테이너를 실을 선박 내 공간) 부족에 시달려왔다.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글로벌 교역량의 감소를 예상하고 선복을 줄였지만, 예상보다 물동량이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8일 2411.8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초의 800~900선 수준과 비교하면 3배 가깝게 올랐다.
교역 증가에 따른 해운업 호황 이후 선박 발주 증가로 인한 조선주 강세 흐름은 지난 2007년에도 나타났었다. 당시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면서 교역량이 증가했다.
조선해운 분석 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중국의 WTO에 가입을 전후로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2001년 1872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선박의 건조 난이도를 고려한 무게 단위), 2002년 2064만CGT, 2003년 4252만CGT, 2004년 4528만CGT, 2005년 4515만CGT, 2006년 7417만CGT, 2007년 9197만CGT로 급격히 늘었다.
선박 발주가 급증하자 조선업체들의 주가도 고공행진 하며 지난 2007년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은 11월 7일 50만4082원으로, 삼성중공업은 7월 12일 4만2586으로, 대우조선해양은 10월 16일 32만원으로 각각 고점을 찍었다.
그러나 2007년을 정점으로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2008년 5517만CGT, 2009년 1729만CGT로 급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도 있었지만, 2007년까지 너무 많은 선박이 발주된 탓에 이후에도 2014년을 제외하면 글로벌 선박 발주량이 연간 단위로 5000만CGT를 넘지 못했다.
이에 조선업체들은 해저 유전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될 해양플랜트를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 공격적으로 영업했다. 특히 해저유전에 설치돼 원유를 퍼올리는 설비인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는 1기에 많게는 수조원에 달하는 수주잔고를 채울 수도 있었다. 해저유전을 생산성을 탐색하는 설비인 드릴십도 척당 가격이 5000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상선 중 가장 비싼 선종은 LNG운반선으로 가장 큰 17만4000㎥급이 약 2000억원 수준이다. 해양플랜트 수주 낭보를 잇따라 전하면서 지난 2011년 조선사들의 주가는 2007년과 비슷한 수준까지 다시 치솟았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체들이 경험을 많이 쌓지 못했던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저가 수주는 조선업 몰락의 단초가 됐다.
시작은 유가 하락이었다. 지난 2011~2013년까지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를 기준으로 하방이 배럴당 75달러였다. 그러나 2014년 하반기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하락했고, 2016년 2월에는 배럴당 26.21달러까지 추락했다.
원유업체 입장에서는 해저유전 개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양플랜트 건조 경험이 부족했던 한국 조선업체들이 잦은 설계 변경을 하며 인도 기일을 맞추지 못하자, 원유업체들은 이를 빌미로 계약을 파기하고 거액의 배상금까지 청구했다.
이에 조선업체들은 2015년부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게 됐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015년 1조584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해양플랜트 부문의 손실에 더해 대규모 분식회계까지 드러난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손실 규모는 지난 2015년과 2016년에 각각 2조1245억원과 1조5308억원이었다. 해양플랜트 분야에 특히 공을 들여온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5년 1조501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뒤에도 작년까지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한경우 매경닷컴 기자 case10@mkinternet.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