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4대문 안을 `문화 보존한 콤팩트시티`로…용적률 거래 허용이 답
입력 2020-12-21 17:34  | 수정 2020-12-21 19:21
서울 4대문 안 세운상가 인근 전경. 역사 도심지인 세운상가는 높이 규제(최대 높이 90m 이하)가 적용돼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층수 규제로 인한 낮은 사업성을 보완하려면 남아도는 용적률을 외부 개발자에게 팔 수 있는 `용적률 거래제`가 필요하다. [이승환 기자]
◆ REbuild 서울 ⑤ ◆
1968년에 지어진 세운상가는 한국 최초 주상복합타운이다. 당시로선 혁신적인 개발 콘셉트를 적용했고, 한때 우리나라 전자 메카로 명성을 누렸다. 하지만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슬럼화의 길을 걷고 있다.
물론 세운상가 일대를 재생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2004년 건축계획안에서 최고 높이 122.3m로 리모델링한다는 청사진이 발표됐지만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역사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종로변은 50m 이하, 청계천변은 70m 이하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사업성이 훼손되면서 개발 속도가 많이 느려졌다.
현재 서울 4대문 안은 역사도심으로 지정돼 높이 90m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한다. 종로구 북촌이나 익선동 등 상업지역도 마찬가지다. 경복궁, 종묘 등 문화재 근처라는 이유로 앙각규제(문화재 건물 높이의 2배 지점에서 문화재 높이를 기준으로 건물 각도를 27도로 제한하는 제도)까지 있어 그나마 '90m'도 적용받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세운상가가 대표적이고 심지어 인사동은 30m 이하 높이의 건물만 지어야 한다.
4대문 안 도심 재생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용적률 거래제'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용적률 거래제와 비슷한 제도가 '결합건축'이란 이름으로 2016년 도입됐다. 하지만 제약 조건이 많아 활용된 적은 거의 없다. 실제로 결합건축은 두 단지 간 거리가 100m 이내면서 동시에 재건축이 돼야 하는 등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지난 10월 국토교통부가 대지 사이 거리 기준을 500m로 늘리고, 동시 재건축 요건도 없앴지만 '거래 후 30년 매매 제한' 등 또 다른 규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내에서는 용적률을 재산권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며 "제한 요소를 최대한 풀어야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처럼 용적률의 적정 가격을 평가하고 거래를 중개할 '용적률 거래 중개은행' 도입이 필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에서 거래된 적이 없는 용적률을 개인 간 협상을 통해 가격을 매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개은행을 통한 용적률 거래가 활성화돼 있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은 "4대문 안 도심 용적률을 용산, 연신내, 창동 등 강북 부도심에서 사가면 해당 지역 개발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용적률 거래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용적률 거래제를 통해 개발성을 확보한다면 4대문 안을 '중밀도 콤팩트시티'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때 역사도심에 맞는 콘셉트를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예를 들어 '힙지로(Hip+을지로)'로 대변되는 세운지구는 1960~1980년대에 특화시키고, 광장시장은 일제시대 경성, 남대문시장은 조선시대 시장을 재현하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식이다. 서울 도심 재개발 방향성을 정하는 '2025 도시환경정비사업 기본계획'에 참여했던 이정형 중앙대 건축학과 교수는 "옛 도시 조직과 흔적을 남기면서도 공연장, 전시장, 호텔, 국제회의 시설 등을 가미해 역사와 현대를 절충해야 한다"며 "현재와 같이 부분 개발을 하지 말고, 일정 부분 통합 개발을 통해 4대문 안의 낙후된 도시 기반 시설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4대문 안을 콤팩트시티로 만드는 과정에서 도심에 부족한 '현대식 주거 기능'을 대거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시에 따르면 역사도심 내 주거지 비율은 47.4%나 되지만, 아파트 등 고급 주거로 대변되는 3종 일반주거 비율은 4.3%에 불과하다. 대부분 연립·다세대 주택 위주여서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4대문 안 도로 교통 체계를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콤팩트시티는 도보와 대중교통 위주 시스템을 만들어 이동 시간을 최소화한다는 특징도 있다. 도심이 자동차 때문에 막히는 '교통지옥'이 아니라 누구나 와서 거닐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2009년 발표된 '서울 U-SMARTWAY(서울 대도시 지하도로)'와 세운상가 녹지축 부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엮는 교통 마스터플랜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창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4대문 아래에 정(井)자형 도로를 파서 물류 기능을 모두 지하로 보내고, 도심을 거닐기 좋은 공원으로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방향도 검토해볼 수 있다"며 "지상에 남아 있는 도로엔 자율주행차로 등을 만들면 도심이 혁신적인 실험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용적률 거래제 : 두 땅 간 용적률을 서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예를 들어 용적률 300%가 적용되는 2개 대지가 있을 때 한 토지주가 용적률 100%를 팔면 매수자는 용적률 400%까지 건축물을 올릴 수 있다.
[손동우 부동산전문기자 / 나현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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