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유산슬`처럼 부캐는 기본…"대기업보다 `N잡러` 꿈꿉니다"
입력 2020-12-21 10:03  | 수정 2020-12-28 10:06

※스물스물은 '20년대를 살아가는 20대'라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사회 진출을 준비하거나 첫 발을 내딛고 스멀스멀 꿈을 펼치는 청년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매일경제 사회부가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 20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참신한 소식에서부터 굵직한 이슈, 정보까지 살펴보기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직업의 세계가 달라지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1인 방송을 하나의 직업으로 삼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생계 수단이자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1인 방송에 뛰어든 이들이 부쩍 늘었다.
유튜버, 1인 크리에이터, 온라인 콘텐츠 창작자, BJ, 스트리머 등 명칭은 다르지만 보통 동영상 플랫폼에 영상을 올리거나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직접 광고나 영상 도중 PPL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인지도나 명성을 쌓은 후엔 외부 활동을 병행해 별도 이윤을 창출하기도 한다. 가령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한다면, 구독자 수와 영상 조회 수 등에 따라 수익은 천차만별이다. 월 5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거두는 유튜버가 있는가 하면, 5만원도 채 못버는 경우도 있는 등 직업의 소득 격차가 큰 편이다.
◆나는 전업 유튜버입니다
인터넷상에서 20대 전후 젊은 층의 활동이 단연 돋보이는 영역은 '여행 유튜버'다. 해외여행이나 워킹홀리데이, 교환학생 등이 보편화된 세대인 만큼 제3국에서 살아보고 경험하는 일상을 1인 방송을 통해 공유하면서 '유튜버'로 첫 발을 떼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재미삼아 시작했던 일이 직업이 된 경우다.
구독자 20만8000여명과 소통하는 'Soy the World'의 크리에이터 이소연 씨는 본래 전업 유튜버가 되기 전 노무사 일을 했다.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해 남들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지만, 그는 입사 7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취업을 하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행의 연속었다. 하루하루 일에 치이는 날들을 보내면서, 누구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여러 나라를 누비며 생생한 여행기를 전하고 있는 이소연 씨. 그는 대학 졸업 후 노무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벗어 던지고 온라인콘텐츠창작자라는 새로운 꿈에 도전했다. 현재는 20만8000여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파워 유튜버다. <사진제공=이소연 씨>
그는 2018년 무작정 네팔 히말라야로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세계여행 속에서 그는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었다고 했다. 취미로 올린 여행 영상들로 구독자가 7만명이 되자, 그는 전업 유튜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
올해 여름엔 책도 냈다. 코로나19로 활동이 많이 위축된 와중에 그는 시간적인 여유를 책을 쓰는데 활용했다.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을 풀어낸 책 '지금, 행복하고 싶어'를 통해 그는 젊은 세대의 시각에서 바라본 행복을 얘기했다.
책에서 그는 "23살에 공인노무사가 되어 취업도 어렵지 않았지만 이대로 살다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미래를 위해 현재에 행복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여행은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걸어 다니면서 행복을 느끼고, 언제 행복한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게 여행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됐다"
세나 집순이의 세계여행 유튜브 채널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관련 영상 썸네일. 해당 채널을 운영 중인 김세은 씨는 여행 중 북한 사람을 만난 영상들이 인터넷 상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유튜버의 길로 들어섰다.
전업 유튜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어쩔 수 없이 생계와 직결할 수밖에 없다 보니 불안정한 미래도 감당해야 한다.
회계 관련 일을 하다가 유튜버로 전향한 김세은 씨는 "처음부터 수익을 바라고 시작하면 좌절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계속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께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고 처음 말한 날 '그런 건 편집 잘하는 사람이나 하는 거다'라고 말리셨어요. 지금은 직업으로 인정해 주시죠"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과의 영상으로 인터넷상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그는 유튜버 외에도 강연이나 인터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 주위에서도 유튜브 시작 방법을 묻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아무래도 내 흥미 분야를 직접 영상으로 제작하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게 매력이기 때문이죠"
◆ 'N잡러'들의 필수 코스
1인 크리에이터는 N잡러들이 선택하는 필수 코스 중 하나다. 평생 직업이 아닌 여러 '부캐'를 만들며 자신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캐란 흔히 게임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본캐릭터' 외에 추가적으로 만든 '부캐릭터'의 줄임말이다. 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유재석 씨가 트롯 가수 '유산슬', 아이돌 그룹 멤버 '유두래곤' 연예인 기획사 대표 '지미유' 등으로 변신한 게 대중에 많이 알려진 계기가 됐다.
1인 방송을 하는 크리에어티 중에선 직업이 여러개인 경우가 많다. 불안정한 수입을 만회하기 위해 부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경제적인 목적 외에 'N잡'을 하는 사람도 많다.
일상의 다양한 기록들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1인 크리에이터 이원지 씨. 그는 첫 직업으로 건축 관련 일을 하다가 아프리카 대륙 종단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우간다에서 유튜버를 양성하는 회사를 설립·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에서 영상 제작 일을 하다가 지금의 전업 크리에이터가 됐다. <사진제공=이원지...
유튜브 채널 '원지의 하루'를 운영하고 있는 전업 크리에이터 이원지 씨도 직업이 다양한 편이다. 현재 온라인 콘텐츠 창작가 그의 본업이지만,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부업으로 그래픽 디자인 프리랜서도 틈틈이 하고 있다. 1인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엔 건축사무소에서도 일을 했고, 해외에서 창업을 해본 경험도 있다. 지금은 평소 관심 분야였던 목수에도 도전하며 집 만들기 콘텐츠 등으로 구독자와 만나고 있다.
작년엔 20대, 30대를 지나면서 겪는 청춘의 고민이 담겨 있는 책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현실은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썼다.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했던 일, 회사에서 겪었던 박봉과 야근의 고난,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 사이에서의 선택의 연속 등에 관한 자신의 경험담을 녹여냈다. "프리랜서의 특성상 수익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정한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자유로운 삶을 택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1인 방송 매개체를 통해 대중에 알리는 경우도 있다. 한 법무법인에서 사무직으로 근무 중인 박민영(가명) 씨는 평소 동물을 좋아해 애견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영상으로 만들고 있다. "회사에선 제가 유튜브를 하는지 몰라요. 취미로 시작한 일인데 지금은 채널이 많이 성장해서 본업을 바꿔야 하나 고민까지 하고 있어요"
통계청이 지난 16일 발표한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실업률이 3.4%인 가운데 청년층 실업률은 8.1%에 달했다. 체감 실업률을 보여주는 고용 보조지표3(확장실업률)에서 청년층의 확장실업률은 24.4%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에 따른 고용시장 충격 등으로 올해 청년 구직 시장은 더 얼어붙은 분위기다....
◆청년실업과 '전업 BJ'
1인 크리에이터가 되는 젊은 세대 중에는 떠밀리듯 방송 카메라 앞에 서는 이들도 있다.
"제가 '1인 크리에이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그게 뭐냐고 했죠"
코로나19로 집콕 생활이 많았던 올해. 대학교 4학년인 이정원 씨(가명·서울 거주)는 일생일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재미 삼아 올렸던 대학생활 브이로그를 경험 삼아 그는 '전업 BJ(유튜버)'가 되는 길을 택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로 말씀드렸죠. 취업은 내 길이 아닌거 같다고. 그랬더니..."
사실 이 씨는 취업을 준비했다. 나름 대학 생활을 나쁘지 않게 보냈다고 자부했던 그는 서류부터 '광탈'하는 자신을 보고 자존감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취업을 하고 싶었죠. 그런데 코로나 때문인지 생각보다 공채도 많이 안떴고, 뜬 곳도 쓰면 1차도 못 가고 떨어지기 일쑤다 보니 살 길을 찾아야 했어요"
그는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미뤘다. 아니 1년을 더 미룰 수도 있다. "일부러 졸업을 유예한거에요. 유튜버로 먹고 살 수 있을지 판단이 안 서는데,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작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간담회에서 엄창환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년실업 등의 발언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재훈기자>
실시간 방송에서 '별풍선'이라는 후원을 받아 수익을 얻는 BJ 중에서도 어쩔 수 없이 1인 방송을 택한 사례가 적지 않다. 대개는 취미가 아닌 생계형으로 자극적인 소재와 영상으로 후원을 유도하는 BJ가 그러하다. 아프리카TV에서 BJ로 활동하고 있는 20대 A씨는 "아무래도 다른 직업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빨리 벌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시작한 게 맞다"면서 "직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보니 1인 방송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1인 크리에이터를 하나의 직업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짙은 편이다. 활자보단 영상에 익숙할 세대일수록 매스컴 등에 나온 성공한 유튜버, BJ의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난해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초·중·고교 1200곳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교육 현황을 조사한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유튜버 등 크리에이터는 초등학생 희망직업조사에서 의사를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참고로 1위는 운동선수, 2위는 교사였다. 유튜버는 2018년 조사에서 5위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한 데 이어 한 해 만에 두 계단 상승했다.
1인 크리에이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이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교육 기관도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현재 다수의 사이버대학에는 1인 미디어와 관련된 학과들이 개설돼 운영 중이다. 일부 특성화고에도 1인 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학과가 최근 나오고 있다. 아울러 영상 촬영부터 편집, 콘텐츠 기획 등을 배울 수 있는 전문학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고민서 기자 / 권오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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