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노원명 칼럼] `세금도 걷지 마라`
입력 2020-12-20 08:59  | 수정 2020-12-27 09:06
여권이 소위 '임대료 멈춤법'을 속속 발의하고 있다는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이 눈을 사로잡는다. '세금도 걷지 마라.' 너무 핵심을 질러 통쾌한 기분이 다 든다. 임차인이 어려우니 임대료를 멈추라 한다. 국민도 어렵다. 세금 징수도 멈춰야 한다. 여권은 이 말 반박할 수 있는가.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8.9% 늘어난 558조원, 규모는 당연히 사상 최대이고 지난 10년 연평균 증가율 5.8%를 훌쩍 뛰어넘었다. 경제는 역성장하는데 정부 살림은 는다. 당장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국채발행이라는 한도 무제한의 마이너스 통장이 있다. 차기 정부 출범 첫해인 2022년 국가채무는 1070조원이 넘을 것으로 기재부는 추산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660조2000억원) 대비 410조원 불어난 것이다. 차기 정부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마구 그은 카드빚을 정산하느라 세금을 더 걷든가, '다음에 갚자'고 또 미루거나, '자국통화로 낸 빚은 안 갚아도 된다'는 현대화폐이론같은 걸 끌어와 빚을 더 늘리거나. 빚은 마약같아서 절제가 한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국가신용 위기, 국민들이 길거리로 나앉는 사태를 걱정한다.
어쨌거나 정부는 자기가 갚지 않아도 되는 큰 마이너스 통장 하나를 들고 있다. 임대인들은 그런거 없다. 수입 끊기면 생활이 안되고 대출금 상환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영업이 제한 또는 금지되는 경우,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인지 뼈 아프다." 지난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고 난 후 임대료 멈춤법 발의가 줄을 잇는다. 이게 '공정'의 문제인가. 그러면 아무리 경제가 안좋아도 세금을 걷고 그에 더해 무한정 빚까지 끌어다쓰는 정부와 유일한 수입 원천인 임대료를 깎아야 하는 임대인의 관계는 공정한가, 불공정한가.
임대료 문제는 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생계와 시장의 문제이다. 임대인에는 부모로부터 빌딩 물려받아 연 수억원 불로소득 올리고 까짓 임대료 1~2년 안받아도 생활에 아무 지장없는 도련님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대통령과 여당이 상정하는 임대인은 이런 사람들로 보인다). 임대료 끊기면 당장 공과금 내기도 벅찬, 임차인보다 딱히 형편이 나을 것도 없는 임대인들이 훨씬 더 많다. 노후 대책으로 상가 몇평 지분 가진 것이 전부인 사람들을 '있는 자'로 분류하고 불공정한 시스템의 수혜자로 몰아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공정한 정부가 할 일인가.

임대료는 시장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임대료는 움직이고 있다. 폐업 자영업자가 속출하면서 명동 상가 공실률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공실률이 늘면 임대료는 내려간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차료를 낮추거나 유예해 달라고 했을때 임대인은 판단한다. 현재 임대료에 새로운 임차인을 구할수 있다고 생각하면 거부할 것이고 공실 확률이 크다고 판단되면 응할 것이다. 시장은 이렇게 굴러간다. 정부가 나서 '임대료 받지 마라'고 하면 환호하는 사람이 있고 절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시장은 확실히 무너진다.
임차인들의 형편은 딱하다. 존망 기로에 선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물어보자. 정부는 이들을 구제해 줄 수 있는가. 나는 인류 역사상 가난을 구제한 정부 성공사례를 알지 못한다. 정부는 좋은 정책으로 경제위기를 예방하거나 그 기간을 단축시킬수는 있다. 또한 어쩔수없이 나오게 되는 희생자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가동해야 한다. 안전망 수준이 그때그때 사회 수준에 따라 달라질 뿐 본질적으로 정부는 개인의 운명에 개입하지 못한다. 안되는 걸 무리하게 시도했다가 역풍에 휘말려 나라가 망가진 사례는 무수히 많다. 포퓰리즘으로 망한 나라들 말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운명과 다투며 살아가고 있다. 운명은 위기 국면에서 다수에게 난폭해진다. 그 와중에서도 누구는 운이 좋고 누구는 운이 나쁘다. 운 좋은 사람이 운 나쁜 사람을 보듬고 일으켜 세우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정부가 나서 '더 운이 좋은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갈등을 조장하고 인위적으로 형평을 기하려 했던 사회는 모두 불행해졌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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