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韓기업이 천문학적 변호사비 써가며 美ITC 달려가는 이유는?
입력 2020-12-19 15:20  | 수정 2020-12-26 15:36

한국에서 발생한 기업간 영업비밀 침해 분쟁의 해결사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부상하고 있다. 국내외의 다른 재판보다 빠르게 결론을 내주며, 이를 위해 강력한 증거개시(Discovery)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한국 기업끼리 미 ITC에서 소송전을 벌이면서 미국 로펌들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서 벌어진 행위에 대한 판정을 미 ITC에 맡기면서 국내 기업들이 매월 수십억원 수준의 변호사 비용을 지출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벌어진 영업비밀 침해 행위에 대해 판단해달라며 미 ITC에 제기된 소송은 모두 3건이다. 이중 2건이 한국 기업 사이의 분쟁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이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툴리눔톡신 제제(일명 보톡스) 균주·제조공정 도용 혐의 관련 소송이다.
미 ITC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이 자사의 보툴리눔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해 보툴리눔톡신 제제 나보타(미국 판매명 주보)를 개발했다고 작년 1월 제기한 소송에서 나보타의 미국 수입을 21개월동안 금지하라는 최종 판결을 지난 16일(현지시간) 내렸다. 앞선 예비판결에서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균주와 제조공정을 모두 도용했다고 판단해 나보타의 수입금지 기간을 10년으로 했지만, 최종 판결에서는 균주가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대웅제약 측 주장을 받아들여 수입금지 기간이 21개월로 줄었다.

메디톡스는 수년 전부터 대웅제약의 보툴리눔톡신 제제 나보타가 자사 보툴리눔균주와 제조기술의 도용을 통해 개발됐다며 국내외 법원에서 소송전을 벌이다 작년 1월 대웅제약을 미 ITC에 제소했다.
이번 최종판결에 따라 수년째 이어진 보툴리눔균주 출처 분쟁이 일단락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소송전은 당분간 더 이어지게 됐다. 대웅제약은 이번 소송으로 균주 도용 혐의를 벗었다고 주장하며, 제조공정 도용 혐의까지 벗기 위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메디톡스는 균주 도용 혐의가 인정됐으며, 균주를 영업비밀로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해 항소하겠다는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은 자사 출신 직원들을 SK이노베이션이 영입하면서 이들을 통해 영업비밀을 빼갓다고 주장하며 작년 4월 미 ITC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ITC 재판부는 SK이노베이션이 증거개시 프로그램에 의한 포렌식 명령을 어겼다는 LG에너지솔루션 측 주장을 받아들여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져 재심의가 이뤄졌다. 최종 판결은 세 차례 연기돼 오는 2월 10일 나올 예정이다.
경쟁 기업의 영업비밀 침해로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기업들이 미 ITC 제소를 선택하는 이유는 증거개시 프로그램 때문이다. 미 ITC는 소송 당사자들이 증거로 신청한 상대 측 자료를 소송 대리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는 각 기업의 기밀 자료도 포함돼 자료의 열람은 미 ITC 관계자, 상대 측 당사자의 외부 변호사, 전문가 증인으로만 제한되며, 기밀 정보에 대한 강력한 보호가 제공된다. ITC 소송을 제기한 기업들은 이 같은 증거개시 프로그램을 활용해 실체적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분쟁을 벌이는 기업들은 미 ITC의 판결이 국내외 다른 법원에서 진행되는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 ITC 법 규정에는 재판을 '가능한 빨리(at the earliest practicable time)' 끝내라고 규정돼 있어 보통 16~18개월 안에 결론을 내준다. 미국 연방지방법원에서의 특허 소송의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통상 2~4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소송 비용이다. 미 ITC에 대웅제약을 제소하기 전인 지난 2018년 연간으로 85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메디톡스는 작년 영업이익 규모가 257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소송 절차가 본격화된 뒤 작년 4분기부터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3분기엔 손실 규모가 114억원으로 커졌다. 대웅제약 역시 올해 2분기 별도 기준으로 4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경우 매경닷컴 기자 case10@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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