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건물주도 눈물 "월세 135만원으로 생계…임대료 더 깎으라고?"
입력 2020-12-16 17:44  | 수정 2020-12-18 09:12
"아파트로는 수억 원대 시세 차익을 보게끔 만들어놓고, 고작 15평짜리 상가 하나를 구해 세 놓는 내가 자산가랍니다. 세입자가 힘들어 임대료를 멈추자는데, 당장 제가 쓸 생활 자금은 누가 내주나요."
부산 강서구에서 상가 1층 점포를 보유한 박 모씨(64)는 여당이 밀어붙이는 급작스러운 임대료 강제 인하 방침에 밤잠을 설쳤다. 대기업 엔지니어 출신으로 정년 퇴직한 박씨는 퇴직금 등 노후 자금 2억4000만원에 대출 4억6000만원을 끼고 올해 초 상가 하나를 분양받았다.
박씨는 월 300만원가량을 또박또박 월세로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냉큼 물건을 잡았다. 월세에 이자비용과 세금을 제하면 135만원 정도 남는데, 은퇴 생활에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이 섰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지난 9월부터 세를 내준 카페로부터 3개월째 임대료를 받지 못했다. 퇴직 후 마땅한 소득이 없는데도 월 126만원 이자는 박씨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은행 이자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달에는 카드 현금서비스까지 신청했다.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임대료 강제 인하 방안(이동주 의원 법안 기준)이 현실화하면 카페(집합제한업종)로부터 받는 월세는 절반만 받을 수 있어 150만원으로 줄어든다.
박씨는 "그동안 월세가 안 들어와도 보증금에서 제한다고 생각하고 그나마 버틸 만했다"며 "법안이 시행되면 월 30만원으로 생활을 유지하라는 것인데, 이제는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코로나19 여파가 세입자에 이어 상가 주인들까지 뒤흔들고 있다. 박씨처럼 은퇴 자금을 활용해 상가 투자에 나선 '생계형 건물주'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박씨는 "자영업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돕자는 정부와 여당의 선의에는 동감한다"면서도 "임대인을 강자, 임차인을 약자로 나눠 편 가르지 말고, 노후 자금을 투자해 월세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도 생존 위기에 내몰렸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박씨 주변에선 "임대인이든 세입자든 모두 살 수 있게 차라리 세금 폭탄을 감면해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생계형 건물주뿐만 아니라 서울 핵심 상권의 '갓물주(건물주를 신에 빗댄 합성어)' 역시 사정은 녹록지 않다. 최근 가파르게 오른 공시지가는 상가 소유주의 발목을 잡고 있다.

명동 유니클로가 입점한 하이해리엇 상가는 국내에서 공시지가가 두 번째로 높다. 토지재산세와 건물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더하면 1년에 1층에서 부담하는 비용만 2억원이 넘는다. 1년 새 오른 세금만 1억원 이상이다. 하이해리엇 상가 5층과 6층은 공실 상태다. 임대 수익이 전혀 없지만 해당 층수 소유주들은 세금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 건물 상가 소유주 300명은 지난 9월 재산세가 폭증하자 중구청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세입자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점도 상가 주인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난달 소상공인연합회가 소상공인 13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은 폐업을 고민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 폐업은 결국 상가 공실로 연결되고, 임대인의 소득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올해 3분기 전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2.4%로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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