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집 몇시에 샀나" 별걸 다 조사하는 부동산원
입력 2020-12-14 17:23  | 수정 2020-12-21 17:37
# 올가을 9억원대 서울 강북 20평형대 낡은 아파트로 이사한 A씨(34)는 최근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서 부동산 거래신고 자료 제출을 요청받은 탓에 퇴근 후에도 새벽까지 끙끙거려야만 했다. 매매계약서 사본은 물론 계약을 체결한 장소·시간까지 요구했기 때문이다. A씨는 "인근 중개업소에 문의하니 최근 이 동네에서 집을 산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자료 제출을 요청받았다고 한다"며 "자료를 작성하니 A4 용지 30장이 넘는다. 공인중개사 생년월일까지도 적는 것은 황당했다"고 말했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10월 27일부터 수도권 내 모든 주택을 구매할 때 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이 의무화된 가운데 이상 거래를 색출하기 위한 부동산원의 자료 요청이 과도해 시장에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제출 자료는 매매계약서 사본, 계약금 지급일 2주 전부터 잔금 지급일 2주 후까지 입출금 내역 전체와 통장표지 등이다. 소명 자료를 기한 내에 내지 않거나 불성실하게 답하면 3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거나, 대금 지급 증빙이 미흡할 경우 수사기관에 통보 조치된다.
A씨는 "정부가 집값을 올려놓고, 결국 집을 산 사람을 괴롭히자는 뜻이 아니겠냐"며 "계약금 지급 2주 전부터 잔금 지급 2주 후까지 통장 내역을 다 제출해야 하는데, 대체 부동산원이 이런 건 왜 하는지 어이없다. 공동명의여서 부부 모두 통장 내역을 제출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더 황당한 건 질문지 내용이다. 공인중개사 성명, 상호, 대표자, 생년월일, 연락처, 계약 조건, 소재지를 적어야 하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중개사를 알게 된 경우에는 홈페이지 등 게시 내역도 제출해야 한다. 자료 제출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부동산원 관계자는 "표준 양식 안에서 매수자와 매도자, 중개자별로 해당 항목만 적으면 되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양식을 손보겠다"고 말했다.
물론 부동산원의 이런 행위가 불법은 아니다.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3항과 같은 법 시행령 19조 4항에 따라 부동산원이 해당 업무를 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부동산원이 이런 무리수를 두는 가운데 본연 업무인 부동산 통계 작성 업무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통계청은 이달 말 보고서를 내고 부동산원에 조사 표본 수를 늘리라고 권고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통계청은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등에 관한 품질진단을 5년마다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원의 조사 표본 수가 민간과 비교해 부족하다는 지적과 주간 통계와 월간 통계 간 차이가 큰 부분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부동산원의 아파트 가격 동향 통계는 전국 아파트 중 극히 일부분인 9400가구를 대상으로 집계해 집값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부동산원이 발표하는 매매가격 상승률은 민간 기업인 KB국민은행이 집계하는 수치보다 낮은 편이다.
[김태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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