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체력 바닥난 지 오래"…한계 부닥친 역학조사관들
입력 2020-12-11 15:44  | 수정 2020-12-18 16:03

"온종일 추적하며 막고 막아도, 또 다른 확진자가 쏟아지면 솔직히 맥이 풀립니다."

"이미 체력은 바닥난 지 오래입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나'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지방자치단체 소속 역학조사관들 업무가 폭증했습니다.

확진자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들 노고 못지않게, 코로나19 확산 경로를 파악하고 이를 차단하는 역학조사관들도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 확진자들 감염원·감염경로·동선을 조사해 접촉자 수를 파악하고, 자가격리나 능동감시 조처를 내리는 일을 담당합니다.

또 확진자와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소독과 임시 시설 폐쇄 등 방역과 관련한 업무를 지휘합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센 수도권, 부산, 울산 등지에서는 코로나19 전파 속도를 역학조사가 제대로 따라가기 힘든 지경입니다.


◇ 사상 초유의 감염병 뒤쫓기에 인력 턱없이 부족…"확충 시급"

경기도에는 도 70명, 시·도 87명 등 총 157명이 역학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감염병예방법 개정에 따라 올해 9월부터 인구 10만 명 이상 기초지자체에 역학조사관 1명 이상 배치를 의무화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합니다.

그나마 경기도 31개 시군 중 8곳(인구 10만 이하 4곳 포함)은 아직 역학조사관이 없습니다.

역학조사관 중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근무한 이들은 이미 8∼9월 2차 유행 때 번아웃(탈진·소진) 상태를 겪었고, 최근 3차 유행 본격화로 다시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업무 특성상 근무 여건도 열악합니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시설에 한 번 투입되면 오염·청결 시설 분리, 위험지역 지정, 확진자 동선 파악, 접촉자 분류 등을 위해 레벨D 보호복을 착용한 상태에서 6시간을 집중적으로 근무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식사는커녕 생리현상 해결도 어려워 물도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다가 방광염이나 신우신염에 걸리는가 하면, 수시로 걸려오는 휴대전화 탓에 운전 중 교통사고를 겪는 역학조사관도 있습니다.

4월부터 경기도에서 근무 중인 역학조사관 김모씨는 "지금까지 집에서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며 "특히 최근에는 가족들이 잠자는 시간에 집에 들어가 잠시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들 힘들고 지쳤지만, 책임감 하나로 겨우 버티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희영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역학조사관)은 "통상 역학조사관 1명에 확진자 3명 정도를 배정하는데, 확진자 급증으로 인력이 부족하면 2∼3배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2주째 풀 가동하며 아슬아슬 상황을 버티고 있지만, (현재 발생 상황을 보면)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부산도 시 5명, 구·군 7명 등 역학조사관 12명이 전부입니다.

부산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확진자 수가 많이 늘어남에 따라, 진단검사 물량과 역학조사 대상 등이 이전보다 2∼3배로 늘어났습니다.

각급 학교나 병원, 직장 등 많은 인원이 연관된 집단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데다 접촉자 수도 크게 늘어 검사 물량이 급증했고,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환자 수도 늘어나 역학조사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담당 공무원들은 대부분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12시까지 근무합니다.

부산시 보건당국 관계자는 "부산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 2월 21일부터 10개월 가까이 쉬지도 못하고 일하고 있다"며 "일선 보건소 직원들은 과도한 업무에 지쳐 병가를 내거나 휴직을 낸 경우도 많다"고 전했습니다.

울산은 시에 역학조사관 3명이 있고, 5개 구·군 중에는 남구만 1명이 배치돼 있습니다.

최근 병원과 학교를 중심으로 클러스터(감염자 집단)가 형성됨에 따라 경남권 질병대응센터에서 3명이 파견을 나왔지만, 대응에는 역부족입니다.

이현준 울산시 역학조사관은 "오전 6시에 출근해서 새로운 확진자를 확인한 뒤, 현장에서 밤 10∼11시까지 있다가 사무실에 복귀하는 일과가 반복되고 있다"라면서 "역학조사를 돕는 다른 공무원들 지원 덕에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 감염 위험 안고 '감정노동'까지…처우는 열악

코로나19 감염이 일어난 현장을 찾아다니는 역학조사관들은 항상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고된 업무만큼이나 신경을 기울이고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감정노동'까지 감내하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역학조사관들을 대하는 일부 확진자와 접촉자 등의 태도는 사기마저 떨어뜨립니다.

경기도 역학조사관들에 따르면 역학조사 과정에서 접촉자로 분류되자 "너 따위가 나를 자가격리하라 마라 하느냐"고 위세를 부리거나, "내 일은 내가 더 잘 안다"며 협조하지 않는 의료인도 있습니다.

부산 한 보건소 관계자는 "가정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을 거의 포기한 채 일을 하고 있는데, 정당하지 않은 사유로 막무가내식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힘이 빠진다"며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역학조사를 진행하려면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근무 여건이다 보니 역학조사관들 처우에도 더욱 관심이 쏠립니다.

공무원이 아닌 한시적으로 채용된 역학조사관들은 고용 불안과 수당 미지급 등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도의 경우 전체 역학조사관의 64%인 100명(도 64명, 시·군 34명)이 한시 채용 인력입니다.

이 가운데 시간선택제 인력은 주 35시간 근무조건이지만, 요즘 업무강도라면 이틀이면 기준 기간을 충족하고 이를 넘겨도 따로 수당이 없습니다.

공무원 신분이라도 처우가 크게 나을 것도 없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위험한 현장을 누비며 일해도, 일반적으로 공무원들에게 적용되는 초과근무 수당 외에는 다른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이는 역학조사관들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신규 채용 등에서도 지원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역학조사관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대규모 감염병 확산 때 공무원 중에서라도 역학조사관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대체 인력을 양성하는 준비가 필요하다"라면서 "우수한 인력이 유입되고 역학조사 업무가 자긍심을 갖고 이뤄질 수 있도록 별도 수당을 지급하는 등의 지방공무원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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