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가계빚 사상최대 폭증…금융위기 `경보`
입력 2020-12-09 18:04  | 수정 2020-12-10 00:09
◆ 민간부채 빨간불 ◆
가계와 기업의 부채 신호등에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달 전체 금융권에서 가계대출이 역대 최대 폭으로 늘어났고, 은행의 기업대출 역시 11월 기준 사상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기업 부채와 가계 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국제결제은행(BIS)은 우리나라 민간 부문 빚 위험도를 11년 만에 '주의'에서 '경보'로 단계를 격상했다.
9일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가계가 전체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18조3000억원 늘어났다. 이 같은 증가는 월별 기준 사상 최대 증가 폭이다. 11월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은 7.9%를 기록해 연초 대비 꾸준한 증가세가 이어졌다. 올 1월 가계대출 증가율(4.3%) 대비 2배 가까이 오른 수치다.
지난달 가계대출 확대는 신용대출이 견인했다. 가계대출 증가액 18조3000억원을 성격별로 나눠보면 신용대출 7조6000억원, 주택담보대출 6조8000억원, 기타 대출 3조9000억원이다. 특히 신용대출은 올해 10월(증가액 4조원)보다 3조6000억원 더 늘어나며 사상 최대 증가 폭을 보였다.
가계와 기업 부채가 급팽창함에 따라 BIS 집계 결과 민간 부문 빚 위험도가 11년 만에 '주의'에서 '경보' 단계로 높아졌다. 9일 BIS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한국의 신용갭(Credit-to-GDP gap)은 전 분기(9.4%포인트)보다 4.4%포인트 높은 13.8%포인트로 집계됐다. BIS가 집계하는 신용갭은 1991년부터 현재까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가계 부채+기업 부채)이 차지하는 비율이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보여주는 부채위험 평가지표다. 신용갭이 10%포인트를 초과하면 '경보' 단계로 분류된다.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이 금융권을 부실화시키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듯이 가계가 대규모로 파산하면 가계대출을 해준 금융회사들도 부실해지고 이들과 연결된 수많은 기업도 자금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윤원섭 기자 / 양연호 기자]

대출규제가 '영끌' 부채질…가계 신용대출 한달새 7.6조 폭증
무섭게 늘어나는 가계빚

정부 잇단 대출규제 내놓자
"일단 받고보자" 가수요 늘어
빚투·코로나 생활대출도 여전

가계대출 증가율 두달째 7%대
금리 인상땐 연쇄 디폴트 우려
지난달 가계대출이 정부의 잇따른 규제 도입에도 한 달만에 사상 최대 규모인 18조3000억원이나 늘어난 원인을 두고 정부의 규제 강화가 오히려 가수요를 불러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 가격 상승으로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자금 수요 역시 원인 중 하나지만 이를 촉발시킨 게 정부 정책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경우 향후 코로나19 위기 종료 시 경제에 엄청난 리스크를 담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13일 고소득자가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을 받은 뒤 1년 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에 있는 주택을 구입할 경우 30일부터 대출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가계대출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2주간 '일단 받아 놓고 보자'는 식의 신용대출 수요가 몰렸다. 실제로 지난달 모든 금융권 신용대출 증가액은 7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었다. 10월 증가액(4조원)보다 거의 2배나 늘었다.
이에 대해 정부가 규제 계획을 너무 앞서 발표해 '대출러시'에 부채질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것이란 기대가 낮은 상황에서 시행을 2주일 앞서 규제 계획이 발표됐다"며 "규제 계획 발표 시점이 일렀던 것이 시장 참여자들 불안감을 키웠다"고 말했다.
지난달 기업들의 공모주 청약도 역대급 가계부채 요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실제 지난 7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한 명신산업의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 마감일(11월 30일) 신용대출 증가액은 은행에서만 2조1000억원에 달했다. 하루 뒤인 이달 1일 기업공개(IPO)가 확정되자 은행권 신용대출 규모는 1조2000억원 감소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10월 빅히트 공모주 청약에 이어 11월에도 일부 기업의 공모주 청약이 있었다"며 "공모주 청약에 필요한 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계의 신용대출 수요도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대출 등 각종 대출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달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액이 역대 최대 규모인 18조3000억원을 기록하며 대출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전세난과 빚을 내 주식·부동산에 투자하는 `빚투`,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대출 수요까지 겹쳤다는 분석이다. 9일 서울 여의도 한 금융사에 대출 관련 문구가 적혀 있고 대출 수요자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김호영 기자]
부동산 거래 확대에 따른 자금 수요도 빠질 수 없다. 한은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지난 6월 10만6000가구에서 7월 7만4000가구, 8월 5만가구로 점차 줄었지만 9월 5만1000가구, 10월 6만8000가구로 다시 활발해진 분위기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 거래량도 9월 2만가구에서 10월 2만5000가구로 늘어났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충격이 지속되면서 가계의 생활자금 수요가 이어진 점도 부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중소기업에서도 경영상황 악화로 인한 대출 수요가 지속되면서 은행 대출이 7조원 늘었다. 11월 증가액 기준으로는 가장 큰 폭이다. 개인사업자·중소법인의 대출수요가 여전한 데다 은행과 정책 금융기관의 금융지원이 이어지면서 대출 증가세가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가계부채가 역대급으로 늘었으며 속도까지 빨라짐에 따라 향후 빚을 못 갚는 디폴트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11월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은 7.9%인데, 금융당국이 생각하는 심리적 저항선인 7%를 10월(7.1%)에 이어 두 달 연속 넘겼다.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회의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부채 증가 속도에 비해 채무상환능력 개선이 더디게 진행되는 경우 실물경제는 물론 금융건전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 부위원장은 내년 1분기에 실제 상환능력을 감안한 대출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재영 서울대 교수는 "부채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반드시 위기가 찾아온다는 게 역대 글로벌 경제위기의 공통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향후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 정책기조를 바꿀 경우 국내에도 부채 문제가 악화되고 금융 부문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그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원섭 기자 / 김희래 기자 /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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