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스물스물] 학생들과 동고동락…대학가엔 '스타 냥이'들이 산다
입력 2020-12-09 14:36  | 수정 2021-02-16 15:02
연세대 모짜

※ 스물스물은 '20년대를 살아가는 20대'라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사회 진출을 준비하거나 첫 발을 내딛고 스멀스멀 꿈을 펼치는 청년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매일경제 사회부가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 20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참신한 소식에서부터 굵직한 이슈, 정보까지 살펴보기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대학 캠퍼스엔 '묘왕(猫王)'들이 살고 있다. 학생이나 교수를 뜻하는 게 아니다. 넓디넓은 캠퍼스에서 건물 사이사이 숲길과 잔디밭을 누비고 다니는 길 고양이(길냥이)에 관한 얘기다. 어느 누구에게도 속한 존재는 아니지만 학생들은 캠퍼스 길냥이들을 가족, 친구처럼 대해줬고 이름을 지어 주거나 집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긴 동고동락의 시간 동안 학생들과 정을 나누며 캠퍼스 스타로 군림해왔던 길냥이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그 흔적을 찾기 위해 대학가를 찾았다.
◆ 사람 냄새 났던 서강대 '킹 레오'
일찍이 서강대에선 누구보다 명성 높은 왕이 있었다. 바로 갈색 털을 가진 길냥이 '레오'다. 서강대 학생들은 레오에 대해 "길냥이 중의 길냥이"라며 왕의 호칭을 부여했다. 실제 레오의 일상 모습을 다룬 페이스북 계정 '레오 킹(Leo King)'도 따로 있다.
학생들에 따르면 레오는 어떤 길냥이들보다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고 한다. 어느 순간엔 학생들이 주는 간식 등을 잘 받아먹은 레오가 살이 통통 오르자 앉아 있는 자태가 마치 왕과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졸업생 임 모씨(29)는 "레오는 학생들을 엄숙하게 바라보면서도 막상 학생들이 다가가면 애교를 보였다. 귀여운 행동에 푹 빠진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레오는 지난해쯤부터 돌연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학생들 사이에선 레오가 세상을 떠났다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는 등의 소문이 무성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서강대 관계자 역시 "레오의 존재는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며 "아직까지도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캠퍼스에서 레오를 볼 순 없지만 아직까지 그를 추억하는 이들은 많다. 서강대 커뮤니티엔 과거 레오를 찍었던 사진을 올린 후 그립다는 글을 남기는 학생들이 많다. 최 모씨(26)는 "로욜라 언덕을 지날 때마다 활기차게 움직이던 레오를 본 게 엊그제 같다. 언제, 어디에서든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서강대 학생들이 만든 '서강 고양이 모임(서고모)'은 지난해 레오를 추모하기 위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 건강 악화로 입양된 학생회관 마스코트
연세대 신촌캠퍼스엔 학생회관에 주로 서식해 '학꽈니'란 이름을 얻은 길냥이가 있었다고 한다. 학꽈니 역시 사람 손길을 좋아해서 많은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김 모씨(25)는 "지나갈 때마다 귀여운 행동을 해서 지켜보면서 멍 하니 앉아 있었던 적도 많다"며 "길거리에서 보일 때마다 많은 학생들이 자주 쓰다듬어 줬던 추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꽈니는 지난 2018년 고양이 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걸려 건강이 악화됐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모여 연세대 길냥이들을 보호하는 동아리인 '연세대 냥이는 심심해(연냥심)'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하꽈니가 남은 생을 길거리에서 보낼 수 없다고 판단해 입양을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하꽈니를 입양한 주인은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학꽈니의 소식을 올리며 아직까지 그를 추억하는 학생들에게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고 한다.
학꽈니는 교정을 떠났지만 연세대엔 그의 빈자리를 채우는 수많은 길냥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공학 대학 주변에 거주하는 '모짜'가 있다. 주로 공학관 주변에서 나타나 학생들 사이에선 '공대 지킴이'란 말까지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모짜를 실제로 마주하기는 쉽지 않았다. 실제 취재진이 모짜가 주로 출몰한다는 연세대 공학관 주변을 탐문했지만 모짜를 찾을 순 없었다. 연냥심 관계자는 "모짜의 경우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잘 숨는다"며 "길냥이들이 매번 고정된 장소, 시간에 나타나진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연냥심은 우연히 길냥이들을 발견한 학생들이 길냥이들 사진을 찍어 제보를 하게 되면 사진을 SNS 계정에 올려 모든 학생이 공유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갑작스레 사라진 서울대 '모아냥이'…하지만 '스누덕'이 있다.
서울대에서도 이 같은 스타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서울대 학생, 졸업생들에 따르면 학생들이 미술관 주변을 거닐 때마다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던 이 고양이에겐 자연스레 서울대 미술관을 뜻하는 '모아(MoA)'와 고양이를 뜻하는 '냥이'가 합쳐진 '모아냥이'란 이름표가 붙여졌다고 한다. 흰색 털을 바탕으로 갈색, 검은색의 털도 가진 모아냥이는 그 모습이 우아하고 고급스러워 많은 학생들이 눈 여겨 봤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아냥이는 지난해부터 자취를 감췄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선 모아냥이가 세상을 떠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대 관계자도 "(모아냥이가) 어디에 있는지 후속 상황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학생들은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모아냥이가 살아 있을 때 더 아껴주지 못하고 많은 사진을 찍지 못해 후회된다는 의견도 있다.
모아냥이가 떠난 빈자리에 서울대 학생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또 하나의 동물이 있다. 바로 서울대 캠퍼스 내 연못에 살고 있는 오리 친구들이다. 서울대와 오리의 합성어인 스누덕이라고도 불리는 이 오리들은 살고 있는 연못의 이름을 따 흔히 '자하연 오리'라고도 알려져 있다.
한양대 토미
◆ 학교 도움 없이도 길냥이 지킴이로 나선 학생들
한양대 서울캠퍼스에도 학생들의 관리를 받는 길냥이들이 무려 35마리에 달한다. 지난 2016년 한양대 학생들 일부는 "열 사람이 힙을 합쳐 한 고양이를 살리자"며 '십시일냥'이란 동아리를 만들었다. 십시일냥 공식 SNS 계정을 보면 '토미', '곰이', '라이언' 등 수많은 길냥이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한양대 십시일냥 관계자는 "길냥이들은 교내 곳곳에 각자의 영역에 살고 있어서 캠퍼스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며 "학교 축제 시즌이 되면 십시일냥 굿즈를 자체 제작해 수익금을 내고 순수익금은 모두 기부금으로 처리해 사료 등 필요한 물품을 사는 데 활용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대학가 길냥이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동아리, 단체 등을 통해 보살핌을 받고 있다. 이들은 캠퍼스 길냥이들을 보살펴주고 의무급식소를 설치해 먹이를 주기도 한다. 교정에 설치된 길냥이 급식소만 10개소에 달할 정도다. 길냥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맡기는 것도 이들 몫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길냥이 관리를 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은 어떤 게 있을까. 한 학생은 "대학본부가 별도로 하는 일은 없고 우리가 특별히 학교 측의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하면 검토해보고 들어주시는 편"이라고 밝혔다. 대학 관계자들에게 문의해보니 대체로 "별도로 길냥이들을 위해 규정된 업무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연세대 연냥심 관계자는 "우리의 활동은 모두 자원봉사이고 학교 측에서 어떠한 도움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며 "자금 운영이 100% 후원금이란 점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밝혔다.
한양대 십시일냥 관계자도 "가끔식 특정 급식소 주변에 누군가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고 가는 경우가 있다. 고양이가 간이 된 음식을 먹으면 신장에 좋지 않아 건강이 염려된다"며 무단으로 음식물을 버리고 가는 행위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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