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빚내는집,빛나는집] 소소하지만 행복한 빌라살이
입력 2020-12-06 11:58 
[추적자 추기자]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노력한다'는 분투(奮鬪). 현재 30대는 내 집 마련 분투기를 써나가고 있습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과 빠져나갈 카드값을 계산하고 캐시플로를 꼼꼼하게 따져, 그렇게 한푼한푼 아낀 돈을 내 집 마련밑천이 되도록 노력 중이죠. 가점이 낮은 그들은 순위에 뒤져 청약제도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비싼 프리미엄을 얹혀서라도 아파트 거래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30대 아파트 구입은 서울, 경기, 대전 등 수도권과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서울에선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30대가 40대보다 아파트를 더 많이 매입했습니다. 경기도로 넘어가 보면, 올해 9월 30대 아파트 거래는 4767건으로 40대(4762건)를 처음으로 뛰어넘었습니다. 2019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20개월간 서울 아파트 거래 건수 중 30~40대 매수 비율이 60.8%로, 50대 이상(30.6%)의 두 배가량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30대 약진은 눈에 띄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2030세대는 어떤 주택을 구입했을까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 자금조달입주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간 20~30대가 서울에서 구입한 주택 평균가격은 7억300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이 중 대출금은 4억2000만원으로 57%가 차입금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전체 주택가격의 50%가 넘는 금액을 대출받아 집을 산 것이죠. 특히 최근 가파르게 오른 집값을 생각하면 올해 구입한 주택가격은 평균 수치보다도 훨씬 높을 듯합니다.
또 다른 통계를 살펴볼까요. 지난 2일 부동산서비스업체 직방이 총 3087명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내년에 주택을 매입할 계획이 있다는 응답자가 69.1%로 나왔다고 합니다. 10명 중 7명은 집을 사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셈이죠. 집을 사려는 이유에 대해선 37.7%가 내 집 마련을 이유로 꼽았고 거주지역 이동(17.3%), 집 면적 변경(12%) 순이었습니다. 특히 내 집 마련을 이유로 집을 사려는 사람 비중은 2030세대에서 가장 높았는데요, 그만큼 20~30대의 내 집 마련 의지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임을 방증하는 셈이죠. 흥미로운 점은 아파트를 사겠다는 응답이 46.9%로 50%를 훌쩍 넘었던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의례 대학생 땐 자취방, 취업할 땐 오피스텔, 결혼할 땐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는 통념과 달리 2030세대의 주거 형태는 제각각입니다. 특히 집값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있는 요즘 매매든, 전세든, 월세든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 않고 아파트에 거주하려는 사람들과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로스트의 시 한 구절처럼 노란 숲 속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길 앞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한 신혼부부가 오늘 '빚내는 집, 빛나는 집'의 주인공 입니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11월 어느 날,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35년 된 구축빌라 앞에 도착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꽤 오래돼 보이는 빌라는 나이만큼 연륜을 뿜어냈습니다. 비록 주차장이 협소하고 엘리베이터도 없지만 계단을 타고 도착한 집 안에는 한 부부의 따스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들은 '소소부부'입니다. '소박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산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부부는 소소하게 하나씩 이뤄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매일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이렇게 얻은 정보나 삶의 방식을 소개하는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상 전공을 하지 않은 부부는 유튜브 역시 독학으로 '소소'하게 운영해갑니다. 부부는 주변에 이런 사람들과 자주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잘 없다고 말합니다.
2018년 결혼한 부부는 내 집 마련을 위해 테이블에 마주 앉았습니다. 처음 시작은 옥탑방이었습니다. 그러다 전셋값 때문에 떠밀려 외곽에도 살아봤죠. 이런 주거 불안정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부부는 현재에 안주하기보단 미래에 투자하기로 결정합니다. 특히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재테크 서적이란 서적은 다 읽어보고 열심히 공부해본 아내가 그 방향을 잡았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무조건 땅의 가치가 높은 집을 '사자'. 그것이 아파트든 빌라든 상관없이 말이죠. 하지만 결혼 당시 가지고 있는 현금을 아무리 따져봐도 아파트는 너무 부담이 됐습니다. 또 교통, 직장과 거리, 주변 환경 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만큼 이래저래 알아본 끝에 금액 부담이 그래도 적은 13평형대 구축 빌라를 매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방 두 칸에 거실. 남들이 보기엔 부족할지 몰라도 소소한 부부에겐 소소하게 좋았다고 합니다. 특히 해당 빌라는 '땅의 가치'가 크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땅의 가치를 판가름하는 '대지지분'이 높았기 때문에 향후 권리를 실현하는 데 훨씬 큰 이득이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소소부부는 '빚 없이' 스스로 모은 돈으로 내 집을 마련했습니다.
물론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아파트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공간 활용을 위해 수납의 묘를 발휘하고 신경도 많이 썼습니다. 냉장고도 결국 작은 방으로 들어갔지만 상관없답니다. 소소부부는 주변 도움 없이 본인들의 보금자리를 그것도 빚 없이 마련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입주 전 인테리어 비용도 최소화했습니다. 시공 단계별 전문가들을 세분화해 연락하고 조율하고 때론 직접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10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들여 집을 부부 가치관에 맞게 꾸몄습니다. 장점은 많습니다. 주변 큰 체육공원과 잘 조성된 상권 등을 싼 가격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주변에 아파트들도 꽤 있기에 동일 상권 속에 포함된 빌라만이 가진 장점이죠. 또 두 부부의 직장과도 멀지 않아 출퇴근 시간도 아낄 수 있어 좋다고 합니다. 최근엔 더 좋은 소식이 생겼습니다. 앞서 언급한 땅의 가치를 실현할 기회가 온 것이죠. 천리 밖을 내다보는 아내의 통찰력 덕이었을까요. 구축빌라에 재건축 제안이 들어온 상태라고 합니다. 아내는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이 결국 미래로 가기 위한 발판이 되고 밑거름이 된다면 충분히 만족한다고 미소지었습니다.
부부는 요즘에도 퇴근 후에나 주말에 공부합니다. 책상 겸, 식탁 겸, 사무실 겸, 카페로 활용하는 거실에서 말이죠. 지금은 협소한 이 곳이 많은 일을 해내는 곳이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교두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부는 새로운 길을 찾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마치 신혼이면 아파트를 가거나 신축빌라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 되는 것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언론에서도 그런 것을 부추겼다는 설명도 곁들였죠. 그렇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이 결혼하면 깨끗한 새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게 선택지가 더 좁아진 것처럼 보여 아쉽다고 합니다. 꼭 빚을 내서 집을 살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부부가 정답은 아니지만 각자 형편에 맞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소소부부에게 집이란 '다음을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부부는 2세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부는 미래에 태어날 새 생명을 위해 오늘도 공부하고 준비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소소하게 빌라에서 알콩달콩 예쁘게 살고 있지만 또 아기가 태어나면 그다음 단계로 한 발짝 더 나아갈 계획이라며 활짝 미소 짓는 부부. 소소부부가 아니라 미소부부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부부를 만나고 나오는 길, 공부에 게을렀던 스스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벼운 죄책감입니다. 되레 스스로 나 역시 당연히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살진 않았나, 주거 형태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평가하진 않았나 무거운 죄책감이 듭니다. 오늘도 여기저기 전국 곳곳에서 내 집 마련분투기가 현재진행형입니다. 평범하고 또 평범한 우리 주변 친구들의 내 집 마련 분투기. 다음엔 더 좋은 이야기로 찾아가겠습니다.
[추동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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