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상황극'이라는 말을 믿고 모르는 여성을 성폭행했지만,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남성이 항소심에서는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대전고법 형사1부(이준명 부장판사)는 4일 오모(39) 씨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강간 등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또한 80시간의 성폭행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강간 상황극이 아니라 실제 강간이라는 점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강간 상황극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시작과 종료는 어떻게 할지, 피임기구는 사용할지 등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주소 같은 개인정보를 알려줄 정도로 익명성을 포기하고 이번 상황극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간 과정에 피해자 반응 등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을 거라 보이는데도 상황극이라고만 믿었다는 피고인 주장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고인은 강간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충동 때문에 간음한 것"이라며 "상황극이라는 말에 속았다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성폭행하도록 오씨를 유도한 혐의 등으로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던 이모(29)씨는 징역 9년으로 감형됐다. 1심에서는 주거침입강간죄가 적용됐으나, 2심에서 법원은 미수죄만 인정했다.
이씨는 강간 유도 사건과 별개로 집 인근 주차 차량에서 다른 여성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뒤 20여차례에 걸쳐 음란 메시지를 보낸 혐의(통신매체 이용 음란 등)로도 기소됐는데, 이 사건 피해자와 일부 합의한 점도 양형에 고려됐다.
앞서 이씨는 지난해 8월 랜덤 채팅 앱 프로필을 '35세 여성'으로 꾸민 뒤 "강간당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황극 할 남성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 오씨가 관심을 보이자 그에게 집 근처 원룸 주소를 일러주며 자신이 그곳에 사는 것처럼 속였고, 오씨는 이씨가 알려준 원룸에 강제로 들어가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했다.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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