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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文대통령 지지율 최저치…"3년 전 취임사 보니 이유 알겠다"
입력 2020-12-04 09:37  | 수정 2020-12-11 10:06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로 가라앉았다. 지난 3일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긍정 평가)는 37.4%에 그쳤다. 반면 부정 평가는 57.3%에 이르렀다. 못한다는 평가가 잘한다는 평가보다 무려 19.9% 포인트나 높게 나온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3년여 전 취임 초에 80%를 웃돌았던 지지율이 기억났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어떤 이들은 윤석열 검찰총장 해임 시도와 부동산 정책 실패 탓에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분석한다. 총장 해임 시도로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에 대한 믿음이 훼손되었으며, 집값과 전셋값 급등으로 민생을 챙기는 능력이 의심받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총장이나 부동산과 관련해 잘못된 의사 결정을 한 거라면 그렇게 된 근본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문득 그의 취임 때 약속들이 기억났다.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을 때 '초심'을 담아 썼던 취임사의 문구들이 머릿속에 아련히 떠올랐다. 당시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던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문구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공허하게 들리는 그의 여러 약속들이 내 가슴 한편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3년 7개월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그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까지도 섬긴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그의 취임일인 2017년 5월 10일은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까.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아니라고 답할 것만 같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거치며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해임되면 그 이상으로 나라가 분열될 것만 같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라며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라고 했던 그의 약속은 어디로 갔나. 겨울바람은 차고 세상은 공허하다.
어떤 이들은 야당의 발목 잡기를 탓하지만 이는 변명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선거의 승자다. 지금은 허망해진 남북화해의 희망을 타고 지방선거를 압승했다. 지난 총선은 코로나19 방역을 무기로 대승했다. 승자가 먼저 패자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분열의 정치를 막을 수 있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런 약속도 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언제 야당 인사를 만났는지 기억이 안 난다. 신문을 펼치고 TV를 켜면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이벤트에 대통령이 참석한 모습은 수시로 보인다. 그러나 야당의 주요 인사를 만나 국정을 논의하고 설득하는 장면은 극히 드물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라는 약속도 온데간데없다. 대통령의 언론 브리핑은 실종된 상태다.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일방적으로 자신의 뜻을 국민에게 전할 뿐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해 온 나라가 논란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한동안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지난 3일 검사 징계위원회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을 뿐이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라는 약속은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수사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를 최종 지휘하는 검찰총장 해임을 시도한 탓이 크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제시한 8개 징계 사유 가운데 총장을 중징계할 정도로 중한 게 있는지 의문이다. 8개 항목 모두 징계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믿는 국민도 많다. 살아 있는 정치권력에 칼을 겨누는 검찰을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라는 취임사 약속 그대로 검찰 개혁에 나선 거라고 반박하기는 한다. 그러나 윤 총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없다. 게다가 이미 검사를 수사할 권한을 가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을 위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상태다. 처장 인선을 놓고 교착 상태에 빠졌지만, 대통령이 취임 때 했던 약속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이를 맡기겠습니다"라는 말만 지킨다면 처장 인선도 극복 못할 난관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고 나니, 그의 지지율이 떨어진 근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그가 '초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나온 게 아닐까 싶다. 그가 자신의 반대자까지 섬긴다는 '초심'의 자세로 국정 현안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해 간다면 지지율이 다시 오를 것만 같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했던 그의 말이 퇴임 후에도 진실로 평가받기를 소망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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