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핫이슈] 국민이 굴종적 대북정책의 실험 대상인가
입력 2020-12-03 10:01  | 수정 2020-12-10 10:06

더불어민주당이 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른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의결한 것이다.
국민의힘, 국민의당은 법안 처리에 반대해 모두 퇴장했다.
개정안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을 향한 전단 살포 행위나 확성기 방송 등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하도록 했다.

민주당은 이르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야당에선 그동안 "이 법안이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반대해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처리가 시급하다"며 밀어붙였다.
여당 주장처럼 군사분계선 인근 접경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생계 위협, 환경오염 우려 등을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서해상에서 우리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피살된 지 불과 두달여 지난 시점에서 잔혹한 만행에 대한 북한의 공식 사과도 없는데 법안부터 강행한 것은 '북한 심기' 경호와 다를 게 없다.
더구나 지난 6월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삐라살포 행위가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자 정부가 4시간 만에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고개를 숙이고 여당이 일사천리로 이번 법안까지 처리한 것은 비굴하고 한심스러운 행태다.
김정은 정권의 도발위협과 북한주민 인권유린에 대해선 제대로 말도 못하면서, 대북전단을 살포한 탈북단체들만 법인설립을 취소하고 대표들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너무 졸렬하고 무책임한 처사가 아닌가.
이러니 야권과 다수 국민들 사이에서 "김여정·김정은에게 법안을 상납한 것 아니냐" "조공으로 대한민국 입법을 갖다 바친 셈" "북한 눈치보면서 우리 국민을 옥살이시키려 하나"등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국제인권단체들도 여당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해 "북한이 문제삼을 때마다 방송, 인터넷 등으로 통제하려는 대상이 확대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이 향후 한국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 및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을 억압하려는 또다른 위험한 시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여권에선 지난 2004년 6·4 합의 내용에 전선지역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선전활동 중지 등이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동안 한반도 평화와 남북 긴장온화를 훼손할 수 있는 군사도발과 개성연락사무소 폭파를 일삼으며 굳건한 한미 동맹을 위협해온 것은 바로 북한 김정은 정권이다.
5년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민간단체나 민간인의 대북전단 활동은 헌법상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남북 사이의 '상대방 비방·중상 금지' 합의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못박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북한의 협박을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북한의 부당한 요구에 부응해 우리 정부 스스로 인권침해 행위를 저지른 것과 같다는 지적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같은 국내외 안팎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술 더 떠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까지 단독 처리하면서 대북 유화정책에 애면글면 매달리고 있다.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해서라면 다수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도 뒷전으로 내팽개칠 태세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끝까지 보호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적보다 더 강력해야 한다는 것이 국가의 기본원칙이다.
적에게 굴종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는 평화는 평화일 수 없고,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오히려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될 뿐이다. (이춘군 '전쟁과 국제정치')
지금처럼 심각한 안보 공백 속에서 국민들이 위태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표현의 자유까지 위협받는다면 이것은 북한에 굴종적인 여권의 책임이 크다.
국민은 남북 교착을 뚫어보려고 여권이 밀어붙이는 대북유화정책의 실험 대상이 결코 아니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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