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디지털 구독경제로 바꿨더니 일어난 변화 3가지
입력 2020-11-17 23:00  | 수정 2020-11-18 06:07

38년의 역사를 가진 3차원 입체 디자인 소프트웨어 회사 오토데스크는 2016년 2월 회사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린다. 이전까지 CD 등에 담아 패키지로 판매하던 제품을 포기하고, 대신 월정액을 받으면서 클라우드 기반으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후 회사의 매출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과거까지 CD에 담아서 팔던 제품은 장당 수천달러에 달했지만, 월정액 상품은 그보다 훨씬 싼 수백달러의 가격에 판매됐기 때문이다. 앤드류 아나그노스트 오토데스크 CEO는 최근 매일경제 등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사용하던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기존에 비해 4~5배 가량 제품구매 비용이 줄어든 고객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14~2015년 25억 달러 수준이었던 매출은 2016년 20억 달러로 급감한다. 2017년에도 매출은 20억 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5억 달러 가량의 매출이 날아간 것이다.
그러나 2018년 이후 반전이 시작됐다. 그해에 과거 수준이었던 25억 달러 매출을 돌파한 이후 2019년에는 사상 최대치인 33억 달러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2020년 올해에는 코로나 판데믹에도 불구하고 35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사업모델에서 디지털 구독경제로 전환한 것이 초반에는 급격한 매출하락을 가져왔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거대한 매출증대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아나그노스트 CEO는 "디지털 구독경제 형태로 전환하면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며 회사에 있었던 네 가지 일들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단기적으로는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가격하락 효과 덕분에 고객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는 "(2016년) 당시 200만명 가량이었던 고객기반은 현재 500만명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첫째, 고객들의 기대가 달라졌다. 이전까지 CD를 샀던 고객들은 구매 이후 A/S 등에 대해 회사에 많은 문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디지털 클라우드 형태로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고 나니 회사와의 대화가 많아졌다. 둘째, 그러다 보니 회사 내에서도 고객들과 디지털로 응대해야 하는 담당자들이 피곤해 지기 시작했다. 고객들의 반응이 더 많아지고 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고객들과 괴리돼 있었던 백오피스까지 서비스 품질을 높여야만 했다. 셋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문화와 마인드가 클라우드 퍼스트로 바뀌었다. 고객들이 모두 제품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개발자들도 더 이상 데스크톱 컴퓨터를 기준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결국 구독경제 형태로 바뀌면서 조직 자체가 고객 한 사람을 단기적으로 보지 않고, 장기적 고객만족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Andrew Anagnost, President and CEO, Autodesk.
지난 2분기 오토데스크는 코로나 판데믹의 영향으로 구독 소프트웨어 매출이 12%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의 걱정을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아나그노스트 CEO는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기에 구독매출은 더 감소했어야 마땅할 수 있지만 디지털 구독경제로 전환한 덕분에 감소폭이 적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체 매출이 2분기 9억 달러로 전년 동기 7억 2500만 달러에 비해 상승한 것을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그는 "이처럼 코로나 판데믹에도 강건한 실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 바로 구독경제가 가진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힘이라고 생각한다"며 "디지털 구독경제 덕분에 우리는 과거 어느 때 보다 강력한 회사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토데스크는 3분기 실적이 이전에 회사 측에서 전망한 9.45억 달러 이상이 될 것이라고 최근 밝혔다. 이 회사의 실적은 24일 발표된다.
아나그노스트 CEO는 회사의 향후 전망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강조했다. 그는 건설 제조업 등에서 디지털 3D 설계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고 대량생산이 아니라 소량생산 체제로 바뀌는데다, 글로벌 부품 공급망 또한 다각화되고 있기 때문에 탄력적 디자인과 탄력적 제조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제조 건설 등 산업환경에서 디지털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이 증명됐다"며 "그런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트윈'처럼 물리적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 가상의 현실을 만드는 작업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향후 몇 년 안에 둘의 경계가 흐려질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한국에서도 SK건설이 오토데스크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파주 화성 등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고체 산화물 연료전지 발전소를 짓기도 했다. 아나그노스트 CEO는 "(SK건설이 3D 설계를 통해) 25%의 시간을 절감했고, 10%의 비용을 줄였다고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런 회사들이 빠르게 디지털로 전환해 나가는 뛰어난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 신현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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