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세법 개정에 골머리 앓는 부동산신탁사
입력 2020-11-15 17:04  | 수정 2020-11-15 22:54
"부동산 신탁회사가 세무사나 세무법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세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복잡한 세금 문제를 처리해야 할 텐데 본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부동산 신탁회사들이 정부의 부가가치세법, 종합부동산세법, 지방세징수법, 법인세법 등 세법 개정 작업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들이 통과되면 신탁사들은 복잡한 세법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돼 자칫 본업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부동산 신탁사는 주인에게 토지 등 소유권을 넘겨받아 관리·개발해 이익을 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지난해 대신증권이 대신자산신탁을 설립하는 등 증권사들이 속속 신탁업에 진출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부동산신탁 수탁액 규모는 316조3811억원으로 전년 대비 39조원가량 증가했다.
15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금융투자협회는 각종 세법 개정안과 관련한 부동산 신탁사들의 우려를 반영해 국회 상임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금투협 관계자는 "국회에 제출된 정부 법안 등에서 상당한 문제점이 발견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에 건의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매일경제가 입수한 건의서에 따르면 신탁사들은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며 국회에 제출한 지방세징수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신탁사들은 연간 수십만 건의 납세증명서를 발급받아 과세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개정안 시행 시 신탁을 해지할 때도 지방세 완납 증명서를 신탁사가 제출해야 하는데 온라인 발급이 안 되기 때문에 건마다 구청을 방문해 발급받아야 한다"며 "당장 내년부터 매년 30만건 이상의 소유권 등기마다 납세증명서를 첨부하라는 것은 비효율적인 행정규제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토지 소유자(조합원)가 1000명인 재건축 단지에서 300가구를 일반분양하는 경우 각 가구마다 소유권을 이전할 때 1000개의 납세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일부 조합원이 신탁한 재산에서 체납이 발생하면 신탁업자는 일반분양자에게 이전 등기를 할 수 없는 문제도 발생한다.

신탁사들은 부가세의 원칙적 납세의무자를 위탁자에서 수탁자로 바꾸는 부가세법 개정안이 신탁사 책임과 업무 부담을 과도하게 늘린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투협 관계자는 "법 시행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전면적인 개편 방안인 만큼 새 제도가 시장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7월부터 시행할 게 아니라 1년 정도 유예기간을 달라는 주장이다.
종부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신탁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개정안은 부동산 신탁 시 종부세 납세의무자를 수탁자(신탁사)에서 위탁자로 변경해 신탁을 통한 종부세 회피를 방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주택자가 종부세를 피하기 위해 신탁사에 부동산을 넘기는 악용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다.
신탁사들도 법 개정 취지에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다만 신탁재산 위탁자가 종부세 등을 체납하는 경우 신탁사가 위탁재산을 처분해야 하는 물적납세의무를 지게 되는데, 업계에서는 관련 인적책임이 배제되지 않아 책임범위가 불명확하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특정 신탁사업에서 발생한 체납이 다른 신탁사업 및 고유재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수탁자의 인적 책임을 배제하는 조항 신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회에 제출된 지방세법 개정안이 정부가 지난 7·10 부동산대책에서 발표한 '신탁재산의 재산세 납세의무자 변경'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종부세와 재산세는 조세 부과 체계가 유사한 부동산 보유세에 속하기 때문에 종부세처럼 재산세의 납세의무자도 위탁자로 환원하는 게 법 체계상 맞는데 이 부분이 누락됐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2014년부터 종부세와 재산세의 납세의무자가 신탁사로 변경되면서 과도한 납세협력 비용과 구조적 체납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다"며 "행정안전부는 신탁사에 일괄적으로 거두어 내도록 하는 게 편리하기 때문에 제도 개편에 소극적"이라고 밝혔다.
[문지웅 기자 / 문가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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