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인공위성은 종합 과학 예술" - KAIST 명로훈 박사
입력 2009-06-02 18:19  | 수정 2009-06-03 09:10
【 앵커멘트 】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구 개발에 땀을 흘린 과학자들이 많죠.
'수요일에 만난 과학자', 오늘은 '인공위성의 개척자'로 불리는 카이스트의 명로훈 박사를 윤호진 기자가 만났습니다.


【 기자 】
다음 달 전라남도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될 '과학기술위성 2호'입니다.

우리나라가 만든 다섯 번째 소형 인공위성으로, 100% 토종기술로 제작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위성 설계와 제작에 꼬박 23년을 쏟아 부은 카이스트의 기술력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 인터뷰 : 명로훈 /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소장
- "위성의 발사 횟수가 네 번, 다섯 번을 거치면서 이제 설계부터 시작해서 제작, 시험검증까지 우리의 100% 힘으로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고…."

우리나라 인공위성의 역사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주공학에 대한 인식조차 희미하던 그때 명로훈 박사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카이스트에 몸담으며 위성센터 건립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정부도 기업도 당장 돈 되지 않는 사업에 선뜻 나서질 않았습니다.

▶ 인터뷰 : 명노훈 /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소장
-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인공위성 기술 개발이라든가 우주공학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던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것을 제안했을 때 어느 누구도 이걸 왜 하느냐 하는…."

결국, 3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1986년 국내 최초의 위성센터가 문을 열게 되고, 6명의 카이스트 학생들은 영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그리고 1992년, 마침내 국내 최초의 소형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탄생합니다.

▶ 인터뷰 : 명노훈 /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소장
- "성공을 했을 때 모든 수백 명의 학생이 모였을 때 박수치고 얼싸안고 울고 했던 그런 경험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척박한 국내 우주항공 산업에 '위성 1세대'의 씨앗을 뿌린 명노훈 소장.

이제 그는 '우주 강국 코리아'를 만들 후학 양성에 마지막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MBN뉴스 윤호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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