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00㎏ 아들 살해했다는 노모에 판사 "내가 재연해 봤는데…"
입력 2020-11-02 08:33  | 수정 2020-11-09 08:36

지난달 20일 인천지법 324호 법정에서 76세 할머니는 살인을 자백했다.
피고인석 의자에서 일어난 이 할머니는 "최후 진술을 해보라"는 재판장의 말에 "희망도 없고 하는 꼴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술을 마셔 제정신일 때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라며 차마 말을 다 하지 못했다.
지난 4월 19일 밤 이 할머니의 아들(51)은 어김없이 술에 취해 있었다.
사업 실패 후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 양육비도 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채 매일 술로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에 따르면 아들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소주를 찾기 시작해 잠들 때까지 5병을 넘게 마셨다. 그날도 아들은 인천시 미추홀구 자택에서 침대에 걸터앉아 "술을 더 내오라"라고 어머니에게 소리쳤다.
아이의 엄마인 여동생은 "돈은 하나도 안 주면서 엄마한테 왜 그러느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끼어들었다.
오빠와 다툰 여동생은 짐을 싼 뒤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있는 경기 수원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1시께 112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들의 목을 졸랐어요" 신고자는 어머니였다.
5분만에 출동한 경찰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어머나는 경찰관에게 "소주병으로 아들 머리를 내리쳤다"며 "수건으로 목을 졸랐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집안 깨진 유리조각은 보이지 않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A씨는 구속돼 검찰로 송치됐고, 결국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이 사건을 맡은 인천지법 형사15부(표극창 부장판사)는 아들을 살해했다는 어머니의 자백을 의심했다. 어머니가 제삼자를 대신해 허위로 자백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아무리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더라도 76세인 노모가 체중이 100㎏을 넘는 거구의 아들을 살해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의심했다. 가로 40㎝, 세로 70㎝ 크기의 수건은 노끈과 달리 두꺼운데 목에 감았을 때 살해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표 부장판사는 지난 재판에서 "사무실에서 개인적으로 재연을 해봤다"며 "여성 실무관에게 수건으로 목을 조여보라고 했는데 피가 안 통하긴 했지만 아무리 해도 숨은 쉬어졌고 불편한 정도였다"고 말했다.
딸은 법정에서 "오빠가 양심이 있다면 그날 엄마가 그렇게 했을 때 자신도 죽고 싶어서 가만히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살기 싫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규 기자 boyondal@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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