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남보다 못한 부모 많지만 `구하라법` 쉽게 못 나오는 이유
입력 2020-10-29 09:55 

지난해 가수 고(故) 구하라 씨의 사망 후 친모와 유족 간 상속 분쟁을 계기로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낸 부모가 유산을 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국회에선 관련 입법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9일 국회 및 법조계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는 상속 결격·제한사유 확대와 관련된 법률안 5건이 발의됐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가 '계속심사' 결정을 내리면서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는 사회변화에 따른 상속권 제도 정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부양의무의 현저한 해태(懈怠, 게을리함)'라는 개념이 모호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법조계의 지적 때문이다.
이른바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민법 일부개정안은 부모나 자식 등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할 경우 친족이라도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일본과 스위스, 중국 등 해외의 경우 상속권 박탈 사유에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경우'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개정안에 대한 법사위 검토보고서를 보면 "법적 불안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계·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돼 있다.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또 그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2017년 헌법재판소 역시 "가족생활 형태나 경제적 여건 등에 따라 부양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이나 정도가 다양하다"며 "이를 상속 결격사유로 본다면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현행법에도 상속 결격사유가 규정돼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직계존속 등을 고의로 살해하거나 피상속인의 유언을 방해하는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다.
때문에 현재의 상속제도 아래에서는 가출·이혼 등으로 피상속인인 자녀와 유대관계가 없는 부모가 재산을 상속받는 일이 종종 발생해 논란이 이어져 오고 있다.
따라서 유사한 피해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는 만큼 하루빨리 '구하라법'을 통과시켜 법적 공백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구하라 씨 오빠 호인 씨의 법률대리인인 노종언 변호사는 "아무리 법적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자녀 양육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사망으로 인한 재산은 다 가져가는 것은 정의와 상식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영덕 기자 byd@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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