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자유냐 방역이냐` 중국발 코로나에 납치된 스페인…정부, 마드리드 비상사태 선포
입력 2020-10-10 12:21  | 수정 2020-10-21 13:22
지난 달 21일(현지시간) 페드로 산체스 총리(왼쪽)가 이사벨 디아즈 아유소(오른쪽) 마드리드 주지사와 만나 코로나19 긴급 방역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만난 모습. 중도 좌파 계열의 산체스 총리와 중도 우파 계열의 아유소 주지사 모두 봉쇄령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마드리드 주가 소극적 대응으로 확산세를 키우자...

연말 4분기에 접어든 10월,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가 다시 빠르게 퍼지면서 전세계의 한 해를 통째로 앗아가는 모양새다. 유럽 내 확진자가 가장 많은 스페인에서는 정부가 수도 마드리드에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지역 정부 반발에 이어 법원이 시민의 기본권을 이유로 '마드리드 봉쇄령'에 제동을 걸자 중앙 정부가 하는 수 없이 비상 권한을 발동한 것이다. 코로나19는 가슴 찌르는 통증과 돌이키기 힘든 대량 실업 사태만 낳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몰고 왔다.
9일(현지시간)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날 정오를 기해 수도 마드리드에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해당 지역 봉쇄에 들어갔다. 마드리드 봉쇄는 올해 봄 코로나19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전역을 휩쓸던 때 나온 후 이번이 두번째다. 봉쇄 조치는 이번 주말부터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를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 오는 12일은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을 기념하는 스페인 국경일이다.
중앙 정부가 비상 권한을 동원한 이유는 정치 갈등 탓에 바이러스 확산세가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앞서 2일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 마드리드 주지사는 마지못해 보건부 지침에 따라 수도 마드리드를 포함한 9개 구역 봉쇄령을 선포한 바 있다. 이미 스페인이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바이러스 확산 진앙지가 된 후 뒤늦은 조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드리드 주 정부는 보건부 지침에 반대해 마드리드 고등법원에 '수도 마드리드 봉쇄령' 집행 정지 소송을 냈고 7일 법원은 "시민의 기본권이 더 중요하다"면서 지역 정부 손을 들어줬다.
이달 스페인에서는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6000명 선을 오가고 있다. 9일 보건부 발표에 따르면 신규 확진자는 5986명이다. 주 별로는 마드리드(2256명)가 가장 많고 이어 두 번째가 아라곤(487명)이라는 점을 보면 마드리드 지역에 바이러스 확산세가 집중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 9월 27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마드리드 지역 내 14일간 감염률은 주민 10만 명당 560명으로 스페인 전국(256명) 보다 두 배 이상 많고 유럽 전체(113명)의 다섯 배가 넘는다.

스페인은 누적 확진자를 기준으로도 유럽 내에서 가장 피해가 크다. 9일 기준 총 86만 1112명이다. 마드리드 지역을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전국에 퍼지고 이어 이웃 나라로 확산되자 지난 달 옌스 슈판 독일 연방 보건부 장관은 "스페인의 코로나19 확산세는 통제 불가능 상황"이라면서 "독일 뿐 아니라 프랑스, 오스트리아 같은 이웃 나라들까지 덩달아 감염이 늘고 있어 매우 우려된다"고 우회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중앙 정부와 아유소 주지사가 이끄는 마드리드 주 정부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산체스 총리는 스페인이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 내 코로나19 재확산 진앙지가 됐다는 국제적인 비난 속에 피해만 커지자 하는 수 없이 이날 비상사태 선포에 나섰다. 9일 현지 엘문도 신문에 따르면 총리는 수도 마드리드 비상사태 선포에 앞서 '시간을 가지고 다른 대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한 아유소 주지사 측의 요구에 앞서 "이제는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면서 이날 정오 부로 보건부를 통해 조치를 발표했다.
다만 '봉쇄령'을 피하고 싶은 것은 중도 좌파 계열인 사회노동당(PSOE) 소속 산체스 총리나 중도 우파 계열인 국민당(PP) 소속 아유소 주지사나 별반 다르지 않다. 수도 마드리드를 봉쇄하면 기본권인 자유를 침해한다는 시민들의 반발 탓에 지지율이 떨어질 뿐더러 경제 활동도 위축되는 탓에 경제 회복 성과를 내세우는 것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도 '관광대국' 스페인 경제를 살리기 위해 휴가철 여름 방역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된서리를 맞았다. 스페인 내 신규 확진자 수는 지난 6월 방역 제한을 완화한 이후 7월 들어 1000명을 넘어섰고 8월 들어 5000명을 넘어서는 식으로 급증했다. 이 때문에 8월을 전후해 영국과 벨기에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은 스페인 여행 자제령과 더불어 스페인 발 입국자에 대해 2주간 자가 격리를 의무화하는 식의 대응에 나선 바 있다.
섣부른 방역 완화에 나섰다가 피해만 키운 탓에 경제 전망도 어둡다. 최근 스페인 중앙은행은 올해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10.5~12.6% 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관광업 의존도가 높은 자국 경제 구조를 생각하면 두 자릿수 감소율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에서다.
한편 9일 보건 비상사태 선포로 이날 정오 이후 마드리드 지역 내 수도 마드리드를 포함한 총 10개 구역이 2주간 봉쇄에 들어갔다. 지역 정부가 아닌 내무부가 파견한 국립 경찰 7000명이 봉쇄 구역과 통하는 고속도로와 공항, 기차·버스 정류장 일대에 배치돼 이동 단속에 나서는 점을 제외하고는 앞서 2일 발표했던 봉쇄령 조치와 동일한 내용이다. 해당 지역과 다른 지역 간 이동이 금지되고 예외적으로 필수적인 경우(업무·의료 등)에만 당국 허가를 받아 이동할 수 있다. 현지 신문 엘문도는 봉쇄 비상조치로 480만 여명의 시민들이 제한을 받게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밖에 6명 넘는 사교 모임이 금지된다. 술집·식당과 상점은 손님을 수용인원의 절반까지만 들일 수 있으며 오후 10시 이후 영업은 전면 금지된다.
다만 이번 비상사태 선포가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일례로 세계 보건기구(WHO)에서 보건위기대응국장으로 일했던 전염병 학자 다니엘 로페즈는 이날 중앙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대해 "우리의 발병률과 보건 시스템 과부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미 너무나 늦은 조치"라면서 "이런 조치는 적어도 2주 전에 나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번 비상사태 선포로도 신규 확진자 증가세가 누그러들지 않는다면 아예 전체 락다운(폐쇄)가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인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