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단독] 친문들, 선별복지체계 구축 나섰다…관심끄는 이재명 견제론, 김경수 대망론
입력 2020-09-28 15:13  | 수정 2020-10-12 16:06

여권 내 친문 진영을 중심으로 선별복지를 위한 '소득·자산 통합관리 시스템' 마련에 착수했다. 이 시스템을 갖추면 가령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경제적 약자를 손쉽게 선별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당내에선 차기 대권구도와 얽히면서 묘한 관심을 끌고 있다. 소득·자산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그동안 강력하게 주장해왔던 정책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맞서 친문진영이 선별복지에 한발 더 다가선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사와 김 지사가 엮이면서 차기 대권구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평가까지 당내에서 나오는 이유다.

친문, '소득·자산 통합관리' 시스템 마련한다

28일 복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재선·인천 서구을)이 소득·자산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을 골자로 한 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신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마다 소득을 기준으로 계층을 '선별'해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국민의 소득·자산 파악이 잘 안되어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시스템을 잘 구축해 앞으로 또 현금성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게 될 때 제대로 된 기준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신 최고위원의 법안 준비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와의 공감대 아래 이뤄지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 6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보편, 선별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의 소득과 자산 파악 시스템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고, 관련 데이터를 관리하는 부처나 기관별로 분절적으로 관리하기 있기 때문"이라며 "세금 과세는 국세청이, 4대 사회보험 통합징수는 건보공단이 담당하고 있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이를 단일화 하거나 행정데이터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맞춤형 복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자 신 최고위원은 지난 9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김 지사의 제안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화답했다.


이재명 견제하고 김경수 띄우기?

친문 적자로 꼽히는 김 지사와 당내 친문 의원인 신 최고위원이 마치 사전에 손발을 맞춘 것처럼 소득·자산 파악을 위한 설계도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그 배경엔 여권 내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보편 복지론'에 대한 견제심리도 작동하고 있다는게 여권 내 해석이다. 소득·자산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은 결국 선별 복지를 위한 징검다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이재명식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복지 체제로는 전환하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잠재적 대권 잠룡인 김 지사 입장에선 이 지사는 경쟁자다. 김 지사는 오는 11월 '드루킹'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면 대망론이 불붙을 수 있다. 이럴 경우 김 지사가 선별복지를 정책간판으로 세워 이 지사의 기본소득과 차별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이재명 지사에 대한 견제구로 전국민고용보험 이슈를 선점하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라며 "김 지사 역시 이번 항소심에서 무죄만 받으면 대권 가도에 올라타게 되니 정책 간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이 지사를 비롯한 보편 복지론자들이 공격해 온 선별 복지의 최대 약점은 바로 선별을 위한 행정비용이 만만찮다는 것이다. 과거 국회가 아동수당 지급대상을 하위 90%로 결정했다가 결국 100%로 확대했던 이유도 '선별하느라 돈이 더 든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지사의 생각처럼 정부가 국민의 소득·자산을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면 선별복지가 가능해진다.
김 지사는 최근 당정청이 합의했던 전국민 통신비 2만원 일시지급까지 반대할 정도로 '선별복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김 지사의 반대로 실제 여당의 통신비 선별 지급 선회로 이어지기도 했다.

'김경수의 아이디어는 현실이 된다'

여권에선 김 지사의 구상이나 제안이 매번 정부 정책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점을 주목한다. 김 지사가 정치적 난맥을 푸는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사실상 친문 진영의 '김경수 힘 실어주기'란 평가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실제로 법안을 준비하며 김 지사와 보폭을 맞추고 있는 신 최고위원은 당내에서 이재명식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친문 권리당원의 표심을 얻어 최고위원에 선출됐다는 평가가 많다.
김 지사와 신 최고위원은 '싱크탱크'도 같다. 바로 여권 내 또 다른 친문 인사인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의장이다. 이미 지난 5월 더미래연구소는 '진보진영 복지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보고서를 발간하며 기본소득을 비판하고, 선별복지를 위한 소득·자산 통합 관리 시스템 구축을 주장한 바 있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의장은 통화에서 "김경수 지사에게도 이 같은 필요를 수차례 강조한 바 있고, 신동근 의원과도 만나 함께 구상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장은 김 지사와는 막역한 서울대 인류학과 선·후배 사이다. 또 신 최고위원이 소속된 당내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연구소가 김 의장이 주도하는 더미래연구소다.

김경수 지사의 분주한 발걸음

김 지사는 최근 들어 소득파악 체계·전국민 고용보험 관련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월 중순 경남도청에서 김 지사를 직접 만난 한 전문가는 "김 지사가 최근 내가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보고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며 "이미 사안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다. 김 지사가 움직이니까 관계 장관들이 녹실회의도 개최하면서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지 않나 싶다"고 전했다.
실제로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는 관계장관(녹실)회의를 열고 고용 보험 확대 등을 위한 소득 파악 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홍 부총리를 비롯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김대지 국세청장, 이호승 청와대 경제 수석,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 수석 등이 참석했다.
그간 정부는 12월까지 고용 보험 대상자를 특고(특수고용직)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진척이 없던 상태였다. 하지만 2주전 김 지사가 국민의 소득과 자산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을 정부가 구축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진행이 급물살을 탔다는 설명이다. 부처 내 이견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갔던 것인데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 지사가 움직이자 정부도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라는 얘기다.
[김태준 기자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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