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제2 버진갤럭틱 찾자"…韓美 `스팩` 열풍
입력 2020-09-23 17:42  | 수정 2020-09-23 23:11
이른바 '백지수표 상장'으로 불리는 스팩이 미국에서 가장 핫한 투자처로 떠올랐다. 올 들어 미국 스팩에 몰린 투자금은 지난해의 세 배에 달한다. 풍부한 유동성을 타고 급증한 성장기업 투자 수요를 스팩이 흡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올해 스팩을 통해 상장한 기업 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편 전통적 방식의 기업공개(IPO) 문턱을 넘지 못한 부실 기업이 스팩 열풍을 틈타 증시에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3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해 미국 증시에 입성한 스팩은 107개로 지난해(59개)의 약 두 배로 뛰었다. 상장심사를 받고 있는 스팩 50개까지 고려하면 이 수치는 더 커질 예정이다. 이들 스팩으로 유입된 자금은 413억달러(약 48조원)으로 지난해(136억달러)의 세 배에 달한다. 올해 상장된 스팩 개수와 투자금은 모두 스팩이 미국 증시에 등장한 이래 사상 최대다.
스팩은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 '껍데기' 회사다. 상장 후 통상 2~3년 내에 가치 있는 회사와 합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때문에 스팩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스팩 자체가 아니라 스팩이 합병할 회사를 염두에 두고 투자한다. 스팩에 투자하는 것은 앞으로 이뤄질 특정 기업과의 인수·합병(M&A)에 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미국 스팩에 거액의 투자금이 밀려드는 것은 성장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상장하는 회사는 대부분이 수소차, 자율주행, 게임, 바이오, 헬스케어 등 성장주로 분류되는 업체다.

최근 잇단 구설에 휘말린 수소차 업체 니콜라도 지난 6월 스팩을 통해 상장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스팩을 통해 상장하면 일반적인 IPO보다 더 빠르게 필요한 금액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스팩 열풍을 놓고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IPO보다 허들이 낮다는 스팩의 특성상 부실 기업이 스팩을 통해 증시에 입성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드래프트킹스, 버진갤럭틱 등 성공적인 사례가 주로 부각되지만 미국 스팩 평균 수익률을 보면 마이너스"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내에서도 스팩 합병 상장이 큰 폭으로 늘었다. 올해 스팩으로 증시에 입성한 기업 수는 사상 최대치 경신이 예상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한 기업은 총 9개지만 합병심사가 진행 중인 곳(14개)까지 합치면 총 23개로 역대 최대였던 2017년(21개)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미 8개는 심사 승인이 났다.
스팩 투자의 핵심은 해당 스팩이 어떤 회사와 합병할 것인가다. 그러나 스팩이 합병 기업을 공시하기 전에 이를 미리 알 수는 없다. 통상 합병 대상을 물색하는 데 스팩 상장 후 1년 이상이 걸린다. 스팩이 합병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마냥 손해는 아니다. 국내 스팩은 상장 후 3년이 지날 때까지 합병하지 못하면 청산과 함께 액면가 2000원에 이자를 더한 돈을 돌려주기 때문이다.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주가 하락 위험이 일반 상장 주식보다 낮고, 합병에 실패해도 공모가 기준 원금과 예금 금리 정도의 수익을 받을 수 있는 '바닥이 막힌' 투자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홍혜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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